불한당 명랑쾌활

인도네시아 1113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외전 4. 그 때 그 사람

강찬승 부장은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전형적인 한국식 공장 관리자였다.베트남 근무 당시, 다른 직원들을 규합해 반항하던 깡패 출신의 직원을 공장 외부로 불러 맞짱 떠서 굴복 시켜 자신의 심복으로 삼았다는 일화를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성격의 사람이 새로 부임한 공장에서 적당한 대상 하나 잡아 본보기로 박살을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기강을 잡으려고 했을 건 뻔하다. 일반 직원 잡아 봐야 웃음거리만 된다. 짱을 먹으려면 그 지역 짱이나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애를 박살내야 한다... 뭐 그런 생각이었을 거다.그는 공장 내 배후 권력자들 중 생산 총괄을 타겟으로 잡았다. 생산 총괄은 오랜 한국 봉제 업체 경력을 인정 ..

관리자의 역설 - 일이 터지면 넌 뭐 했냐, 안터지면 넌 하는 게 뭐냐

관리자 업무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느꼈던 점인데,관리자는 일이 터지면 무능하다는 평가를, 일이 터지지 않으면 쓸모 없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입니다.일이 터지면 넌 뭐했냐는 소리를 듣고, 일이 터지지 않으면 월급 도둑놈 소리를 듣지요.그래서, 닳고 닳은 월급쟁이 관리자 중에는 해결할 수 있는 선의 일들은 터지도록 냅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별일 없어서 매일 유유자적 노는 것처럼 보이는 관리자가 가장 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덕분에 인니 첫 직장에서는 안정화가 된 이후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게 됐습니다만.물론 그 이유 하나 만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그런 점도 있었을 겁니다.워낙 회사에 별일이 없다 보니, 한국 본사에서 발령 온 부장이 보기엔 제가 하는 일이 만만해 보였겠지요.본인도 이제 인..

단상 2020.07.15

[고양이 이야기 IV] 7. 에필로그

직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됐다.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가구와 짐을 옮기자, 양이가 패닉에 빠졌다.우리에 넣으려고 안았는데, 엄청 깊게 할퀴었다.이럴 때 고양이는 확실히 개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주인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는 주인을 해치는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아, 그러고 보니 깜이와 양이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여자친구다. (난 그냥 먹을 것과 살 곳 내준 아저씨다.)그래서 할퀴었나 보다. 띵이는 6개월 전에 본 게 마지막이다.깔끔하고 예쁘게 생겨서 전부터 먹이를 주는 주민들이 몇 명 있었으니, 아마 새로운 주인을 선택했을 거 같다. (인니인들은 꼬리가 기형 없이 미끈하게 빠진 고양이를 더 예뻐한다.)어쩌면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영역을 옮겼을지도,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뭐 ..

etc 2020.07.13

Indo Mie Rasa Seblak Hot Jeletot 꽤 매운 인스턴트 라면

인도미 Hype Abis 시리즈의 새 제품이 나왔습니다. 라사 스블락 핫 즐르똣 Rasa Seblak Hot Jeletot Sebalak은 음식 이름이고, Jeletot은 순다어로 (놀라거나 화나서) 눈을 휘둥그레 뜬다는 뜻입니다.'눈이 휘둥그레 떠질 정도로 매운 스블락 맛'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블락은 2천년대 초반에 반둥에서 시작된 길거리 음식입니다. 초기에는 끄루뿍 Kerupuk (감자칩 비슷한 인니 과자) 중에서도 양파가 들어간 끄루뿍 바왕 Kerupuk Bawang 에 고추와 생강을 베이스로 한 소스와 볶아서 먹는 식이었습니다. 이후 인기를 끌면서 면, 바소, 닭발, 마카로니 등 별의 별 것이 들어가는 국물 요리로 발전했습니다. 국물이 없는 초기 버전의 스블락과 국물이 찰박찰박한 후기 스블락..

[고양이 이야기 IV] 6. 젖소

여자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에게 잡혔댄다.자기를 졸졸 쫓아 와서 부비고, 차 쌩썡 다니는 도로 건너 가는데도 쫓아 온댄다. 일단 데려 오라고 했다. 뚱띵이 키우면서 길고양이는 습성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일단 집안에서 키우고, 어느 정도 자라면 바깥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이름은 젖소라고 지어 주었다. 여친이 다음날 한 마리를 또 데려왔다. =_=이녀석은 극도로 겁에 질려 공격성을 보이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어미 잃은 녀석이 아니라 예뻐서 데러온 거 같아, 빨리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젖소는 붙임성이 있다기 보다는 뭐랄까... 겁을 느끼는 기관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새끼 고양이가 낯선 환경에 둘러 쌓이면 처음엔 주춤주춤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

etc 2020.07.06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외전 3. 권력 싸움이 훑고 지나간 자리

창업주 회장과 아들인 사장, 그 밑으로 치열하게 견제하는 부사장파와 상무파.스카웃된 해외파 부사장은 기업 운영의 선진화, 합리화를 지향.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파 상무의 반발.드라마에나 나올 너무 전형적인 패턴이지만, 바꿔 말해 전형적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흔한 법이다. 본사 부사장은 각 해외 공장들의 생산 관리를 현대화 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의 주먹구구식 자재 사용을 막아야 했다. 불량이 터져도 차후 생산 자재를 끌어다 써서 덮기 때문에 생산성과 불량률을 정학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창고 관리를 외주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창고 관리 직원이 같은 회사 소속이면 소용없다. 인사권도 없는 외주 업체의 통제를 직원들이 따를리 만무하다. 부사장은 창고 관리 직원까지 외주 업체 소..

원어민은 모국어를 잘 알 거라는 착각

인니에 사는 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인니어 관련해서 아리까리 하면 인니인에게 물어 보고, 그 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현지인인 내 아내가 그러는데... 현지인 대학생이 그러는데... 회사 현지인 직원이 그러는데...과연 확신할 수 있을까? 한국인이 한국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맞춤법, 띄어쓰기 같이 정답이 확실한 것도 100% 아는 사람이 드물다.'정의'나 '순수'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의 단어는 사람마다 이해하는 의미가 다르다.가뜩이나 한국 국민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과 학업 성취도도 인니에 비해 높은데도 그렇다.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그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때로는 언어를 저절로 체득한 원어민보다 그 언어를 따로 공부한 외국인이 더 정확하게 알 ..

미 스답 Mie Sedaap '대한민국' 얼큰한 국물맛

미 스답 Mie Sedaap 에서 한국 라면을 벤치마킹한 제품을 또 내놓았다.예전에 한국 양념 닭갈비맛 볶음면을 내놓았었다. (https://choon666.tistory.com/1319)이번엔 국물 라면이다.면도 두껍다고 쓰여져 있다.인니 라면은 한국 라면에 비해 일반적으로 면이 얇다. 이전 제품은 '한국'이라고 했는데, 이번엔 '대한민국'이라고 한글로 쓰여져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나날이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닛신은 한국 라면 그대로 배끼면서도 마치 일본 오리지널 제품인 것처럼 내놓는데, 미 스답은 그러지 않는다. 뚝배기까지... ㅋㅋㅋ 2,600 루피아, 200원 정도 가격이지만 내용물은 부족한 거 없다. (대신 76g임) 출시 초기라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이 한국 라면 비슷..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외전 2. 해외 진출 봉제업계, 그 험한 세계

사람은 자신이 다루는 것과 성격이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돌을 다루면 돌처럼, 쇠를 다루면 쇠처럼, 흙을 다루면 흙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천과 옷을 다루는 봉제업은 하늘하늘 부드럽고 따듯할까? 봉제 분야는 거칠다. 한국의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그렇다. 더 한 곳이라면 신발 정도일까. 80년대, 외국의 저임금 국가로 진출했을 당시의 사고 방식에서 멈췄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과 달랐고, 그 나라 정부 역시 외국인의 편은 아니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결국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다. 이후에 들어온 한국인들도 그런 사람을 윗사람으로 모시고 일을 배웠다. 윗사람의 방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발 붙일 수 없다. 최소한 선배와 비슷하거나, 더 지독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