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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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IV] 7. 에필로그

명랑쾌활 2020. 7. 13. 09:07

직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됐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가구와 짐을 옮기자, 양이가 패닉에 빠졌다.

우리에 넣으려고 안았는데, 엄청 깊게 할퀴었다.

이럴 때 고양이는 확실히 개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주인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는 주인을 해치는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깜이와 양이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여자친구다. (난 그냥 먹을 것과 살 곳 내준 아저씨다.)

그래서 할퀴었나 보다.


띵이는 6개월 전에 본 게 마지막이다.

깔끔하고 예쁘게 생겨서 전부터 먹이를 주는 주민들이 몇 명 있었으니, 아마 새로운 주인을 선택했을 거 같다. (인니인들은 꼬리가 기형 없이 미끈하게 빠진 고양이를 더 예뻐한다.)

어쩌면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영역을 옮겼을지도,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뭐 사람 인생도 마찬가지다.


띵이가 보이지 않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뚱이도 영역을 넓혔는지 찾아 오는 게 점점 뜸해졌다.

이틀이나 사흘, 가끔 나흘 만에 찾아 오는 걸로 보아 먹이를 주는 다른 집을 찾은 거 같다.

이사 가기 이틀 전 찾아 온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다.


옆집은 주민들의 민원을 받았는지 더이상 개들을 밖에 풀어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줄을 묶어 산책을 시키지도 않고, 가둬 놓고 먹이만 주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개들이 짖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잦아졌다.

결국 내가 이사가기 1달 전 쯤, 그들은 다시 어디론가 이사 갔다.

운이 좋아서 마당 넓고 집세도 싼 집을 얻어 갔기를 바란다. 개들을 위해.


목욕과 산책을 시키는 수고를 감수하지 못할 사람은 동물을 키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불행이다.


회사에 살던 촌닭은 6개월 전, 묘령이 1년도 안됐는데 임신을 했다.

너무 일찍 임신을 해서 길어야 3~4년 이상 살기 힘들 거다.

길고양이 인생이다.


그 후 통 안보였는데, 3주 쯤 후 공장 창고에서 발견 됐다.

그동안 밥 챙겨 준 의리도 잊고 잔뜩 경계한다.


창고에 숨어들어 새끼들을 키웠나 보다.

회사 마당에 있는 정도는 괜찮지만, 창고 안에 자리를 잡는 건 묵인할 수 없다.

직원들 시켜 회사 바깥으로 쫓고 창고에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그 후로 새끼들도, 촌닭도 다시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인가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가난한 편이라, 다 크지도 않은 고양이가 막 출산한 새끼들과 살아가긴 힘들 거다.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월급 받고 사는 처지인 이상,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선이 있는 법이다.


백바지도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만 살아 남은 모양이다.

내가 주는 사료를 안받아 먹을 정도로 자립심 강한 녀석인데, 새끼에게도 쓰레기통 뒤지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건 중요하다.

먹이 잘 주는 인간이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월급 잘 주던 회사가 언제 갑자기 닫을지 모른다.

사는 게 다 그렇다.


1년 반 전에 얼굴에 난 상처가 썩어 들어가 얼마 못살 것 같아 보였던 좀비는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살려고 한다.


왜 사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진 게 아니니까.

삶의 목적이나 이유는 각자 알아서 정하든 말든 할 일이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의미에 너무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죽음에 천착하게 된다.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하는 행동들 중에서도 목적과 이유를 갖고 하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아 가는 것도 괜찮다.

쓸모를 따져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그럴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