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외전 2. 해외 진출 봉제업계, 그 험한 세계

명랑쾌활 2020. 6. 24. 11:06


사람은 자신이 다루는 것과 성격이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돌을 다루면 돌처럼, 쇠를 다루면 쇠처럼, 흙을 다루면 흙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천과 옷을 다루는 봉제업은 하늘하늘 부드럽고 따듯할까?


봉제 분야는 거칠다. 한국의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그렇다. 더 한 곳이라면 신발 정도일까. 80년대, 외국의 저임금 국가로 진출했을 당시의 사고 방식에서 멈췄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과 달랐고, 그 나라 정부 역시 외국인의 편은 아니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결국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다. 이후에 들어온 한국인들도 그런 사람을 윗사람으로 모시고 일을 배웠다. 윗사람의 방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발 붙일 수 없다. 최소한 선배와 비슷하거나, 더 지독하게 해야 살아 남는다. 거친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거친 판을 살아 남은 사람들만 있는 거다. 점잖은 사람은 간혹 있어도, 순한 사람은 절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버티는 판이다.


봉제 업체의 이익은 인건비에서 나온다. 인건비가 싼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인건비가 싼 인력은 교육 수준이 낮다. 낙후된 지역의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어려움은 일반적인 한국인이 상상하는 바를 뛰어 넘는다. 국가 법률보다도 마을 전통법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 흔하다. 휴식 시간 후 작업 시작 종이 울리기 전에 작업 위치에 대기해야 한다는 규칙조차도 아무리 가르쳐도 자꾸 어긴다. 당연하다. 초등학교에서 이미 몸에 익혔어야 할 것들인데,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말도 안되는 일감을 쳐내야 하는데, 당연히 기본으로 알아야 할 것까지 가르쳐야 한다면 말이 곱게 나올리 없다. 그렇게 점점 거칠어져 간다.


해외 곳곳에 다수의 공장을 둔 업체는 본사 오너와 임원들은 각 일선 공장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앞얘기는 보고를 통해, 뒷얘기는 첩보를 통해 '전해 들어' 파악한다. 전해 듣는 얘기는 전하는 사람의 사견과 사감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모함과 뒷말, 불신이 판을 친다. 누군가의 험담이 한 임원의 귀에 들어가면 해명할 방법이 없다. 그냥 그런 사람으로 낙인 찍혀 버린다. 그래서 봉젯밥 10년 이상이면 어지간한 인간 본성의 바닥은 다 보고 겪는다. 멍청해서는 그 판을 살아 남을 수 없다. 직장 동료에게 섣불리 속을 드러냈다가 언제 모함의 비수로 등에 꽂힐지 모른다. 해외에 나와 고생하는 같은 처지의 한국인으로의 전우애, 동료애 같은 건 순진한 소리다. 가장 조심해야 할 존재는 현지인이 아니라 같은 한국인인 직장 동료다.

한국의 회사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의 회사는 퇴근하고 사적 관계의 사람들을 만나 속이라도 풀 수 있다. 하지만, 해외 근무는 그런 탈출구도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해외 공장들은 퇴근하고도 다 같이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야 한다. 자기 뒷통수를 쳤던 사람과 겉으로는 웃으며 부대껴야 한다. 어쩌다 회사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교민 사회는 좁고, 봉제업계는 더 좁다. 속으로 삭혀야 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모두가 잠정적인 적인 생활을 몇 년 지속하다 보면 내면이 황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봉제업은 거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