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tc 71

친목 모임 깨졌던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친구들과 종종 모여 농구를 했다.농구 게임이 끝나면 돈을 걷어 호프집이나 식당에서 식사겸 반주겸 하고 헤어졌다.어느 날인가 의기투합이 되어, 친목 모임을 결성했다.일곱 명이라서 이름은 칠붕(七朋). 참 촌스런 이름이었다.'일곱 친구'라는 모임이지만 다 서로 친한 것도 아니었다.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 없어서 농구 말고는 공통점 없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학교가 다른 친구도 있었다.중심 매개가 되는 한 명을 중심으로 중학교 때 친했던 사이 세 명과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친했던 세 명이 합친 모임이었다.초대 회장은 당연히 중심 매개가 됐던 철부지가 추대됐고, 총무는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직장인이 맡았다.매월 한 번 모이고, 회비를 내고, 식사하고 남은 회비는 적립, 불참시 벌금, 적립..

etc 2024.06.21

무속에 관한 기억

사촌형의 외할머니는 아주 유명한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꾸준히 있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찾아가 뵐 정도로 가까운 촌수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세배를 하게 되면 세뱃돈이 아주 후하셨다. 사촌형도 용돈이 꽤 풍족했었던 걸로 보아, 영험하다는 소문은 있던 모양이다. 방학 때 사촌형 집에 있는데, 사촌형이 산기도 하시는 외할머니 모시러 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나섰다. 밤 11시였던가, 새벽 4시였던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흔히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었다 봉고차를 끌고 산자락을 올라갔다. 인왕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산동네는 깜깜했지만, 아주 외진 곳은 아니었다. 더이상 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좁아진 곳에서 차에서 내렸다. 판판한 바닥보다 계단이 더 많은 시멘트 공구리 길을 따라 다시 10..

etc 2024.03.22

3중 자각몽

출입구가 두 곳인 넓은 집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찾았다. 눈에 띄어 잡아보면 내가 찾는 새끼 고양이가 아닌 것을 반복했다. 들어온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는데 내가 신고 온 슬리퍼가 없었다. 다른 출입구 쪽으로 가니 아이들이 앉아서 마당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연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사이에 많은 슬리퍼들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내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잡으려고 가까이 가니 어느 틈에 아이 하나가 그 위에 깔고 앉아 있다. 아이 뒤편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가 일어났다. 그런데 내 슬리퍼가 아닌 비슷한 색깔의 다른 슬리퍼가 있었다. 그 순간 지금 꿈속이라는 걸 느꼈다. 꿈에서 깨어 일어났다. 잠들기 전 기억한대로, 옆으로 누워 잠든 상태 그대로였다. 플로레스 섬의 전통 마을 큰집..

etc 2024.01.31

[고양이 이야기 VI] 3년간의 근황 짧게

고양이 이야기 5시즌 이후로 만 3년이 지났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고양이 이야기는 그냥 내 만족이더군요. 자기 고양이가 아닌데 뭔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공감할 구석도 거의 없고, 귀여운 거 보는 거야 사진보다는 영상이 낫지요. 유튭에 널리고 널린 게 그런 영상들입니다. 올려둔 포스팅들이 있으니 근황 소개나 가끔 하겠습니다. 뭔 얘길 꺼냈으면 결말이나 후일담, 뒷 얘기 이런 거 맺어야 마음 편해지는 성격이라서요. 5시즌 말미에 새로 합류했던 된장은... 아주 시크한 성묘가 됐습니다. 간식 달라거나 지 아쉬울 적에나 와서 툭툭 건드리고, 보통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더군요. 다른 고양이가 지분 거리는 것도 질색을 하며 화를 냅니다. 냄새도 전혀 안나고, 흔히 '고양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습성 그 자..

etc 2023.09.15

1920년대 자바 관광 홍보 포스터

구글링을 하다 주은 그림입니다. 1920년대 만들어진 자바 관광 포스터네요.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이니 네덜란드나 서양 어떤 나라가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브로모 화산(포스터 중앙)과 보로부두르 사원(좌측 상단)이 그 당시에도 가장 볼만한 구경거리였나 봅니다. 싱가포르에서 '38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문구도 인상적입니다. 민간 여객기가 등장하기 전 시대의 해외여행이란 상당한 체력과 인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사실이 느껴지네요.

etc 2021.05.10

코로나-19와 뎅기열의 공통점

코로나는 걸려 본 적 없지만, 제가 뎅기열은 두 번이나 걸려봤잖아요, 엣헴~ ㅋㅋ(https://choon666.tistory.com/382, https://choon666.tistory.com/432) 코로나 관련 기사를 보다 보니 뎅기열과 공통점이 많은 거 같아서 꼽아봅니다. 1. 백신과 치료제가 '아직' 없다는 점황열병, 말라리아는 백신이 있지만, 뎅기열은 아직까지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습니다.다른 두 병과 달리 뎅기 바이러스는 4종류의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백신 개발이 어렵다고 하네요.하지만, 요즘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속도를 보니, 그냥 '돈이 그다지 안돼서' 자본과 기술력 투입이 적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뎅기열은 모기가 전염 매개체라 전파력이 그다지 높지 않고, 상대적으로 경제 수준이 ..

etc 2021.01.01

[고양이 이야기 V] 5. 에필로그 - 이런 된장, 너 젖소 아냐?

여자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지인에게서 새끼 고양이를 분양 받지 않겠냐는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여자친구는 깜이와 양이의 2세 계획을 포기한 이후로 새로운 녀석을 들이고 싶어 했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자꾸 가는 검정 노랑 얼룩이로 하자고 했다. 돈이 목적이 아닌 분양이었기 때문에 따로 돈을 지불하진 않았다.대신 직접 와서 데려가야 했고, 백신도 아직 맞지 않았다고 한다. 따만 미니 Taman Mini 근처인 지인의 집까지는 1시간 거리로 만만했지만, 막판 약 500m 구간은 1.5차선 너비의 양방향 길을 지나야 해서 심장 쫄깃했다.다행히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맞은편 차량 운전자는 이런 일이 일상이라는듯 익숙하게 사이드 미러를 접고 최대한 벽에 붙였고, 나 역시 따라 해서 겨우..

etc 2020.08.31

[고양이 이야기 V] 4. 깜이의 땅콩 수술

이사온 집은 쾌적했다. 고양이들도 안정을 찾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양이의 발정이 시작되자 깜이가 다시 흉포해졌다.보는 대로 떼어 놓기는 하는데, 밤이면 대책이 없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양이는 심각한 귓병이 생겼고, 잇못에도 병이 생겼다.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건 여전했고, 사람의 손길마저도 움찔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구석으로 숨었다. 아무래도 깜이의 땅콩 수술을 해야 하겠다.원래 둘 사이의 새끼를 보고 나면 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깜이가 제대로 맞추질 못하고 엄한 곳에 문대기만 해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두고 보기만 하는 건 깜이나 양이 둘 다에게 너무 가혹했다. 깜이가 안쓰럽다.이제 더이상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깜이는 수술을 마치고 하루 입원한 뒤 돌..

etc 2020.08.24

[고양이 이야기 V] 3. 시골을 떠나다

장기 여행을 떠날 짬이 생겼다. 한 달 이상을 계획했기 때문에 태평한 이 두 녀석들을 펫숍에 맡기는 건 좀 가혹했다.여자친구 집에 맡기기로 했다.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였다.낮에는 모두 일하러 가서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두 녀석들은 우리 안에 있어야 했다. 그동안 깜이가 시도때도 없이 양이를 덮쳤다.심지어 양이가 화장실에 배변을 하려고 할 때도 덮치는 짐승 같은 짓을 (아, 짐승이 맞구나), 아니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따로 격리를 할 만도 한데, 여자친구의 식구들은 그냥 새끼를 갖게 되겠구나 하고 심상하게 넘어갔다고 한다.문제는 깜이의 이상행동은 집 근처 다른 길고양이의 발정기에 반응해서 발정기가 아닌 양이를 덮쳤다는 점이다.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깜이는 양이에게 수시로 들이댔는데, 예..

etc 2020.08.17

[고양이 이야기 V] 2. 마음이 척박한 나라

새 직장의 파견 근무처는 빈말로라도 좋은 곳이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할 곳이었다.어지간한 인성 밑바닥은 다 봤다고 생각한 내 자만을 훌륭하게 박살내주었다.혼자 파견 나왔으니 아군은 단 한 명도 없고 모두 적이었다.매일 아침 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어디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때면, 오늘 하루는 또 얼마나 길지, 무슨 욕을 먹거나 봉변을 당할지 우울했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임신했는지 배가 빵빵하다.사방이 논밭으로 둘러 쌓여, 가장 가까운 민가가 200m 떨어진 이 공장까지 와서 자리 잡기까지 나름 사연이 있을 게다.뭐 먹을 거라도 주려나 온 거겠지만, 위로라도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나왔다.힘든 시기가 계속 되다 보니 동물에게 내 좋을..

etc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