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229

아집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영역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아주 좋습니다. 몇 백개의 업체와 몇 백명의 사람을 외우고 있었고, 관련 사항을 물어보면 즉시 대답이 척척 나오곤 합니다.대화를 하면서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한 요령이기도 해서, 그 메모를 들춰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머릿속에 다 넣어두었으니까요.아무리 그래도 나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중년에 접어들면서 머릿속에 입력해 둔 기억이 즉각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간혹 머릿속에 입력이 안되고 빠뜨리는 것들도 생깁니다.문제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없었던 일이거나, 이미 해결했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소거했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겁니다.나이가 들면 예전 같지 않은게 자연스러운 이치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 들이지 못해서 그렇..

단상 2017.10.14

어떻게 될지 아무 말 안해주는 건 호의일 수도 있다.

신입이 들어왔다.3개월 수습 후, 적합 판정시 정식 채용 조건이다.(참고로, 인턴이나 수습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후려치진 않는다.)이미 알고 있다, 부적합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걸.게다가, 만성 적자 구조라 1~2년 내에 폐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회사다.설령 폐업하지 않더라도 별 좋을 꼴 못보고 회사 나가게 될 확률이 높다.회사 처우가 열악하기도 하지만, 회사에서 인정 받을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대략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인다고 하면, 사람 일을 어떻게 아냐고 항변하겠지만, 이건 인생에 대한 예지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대한 예측을 뿐이다.미래를 예측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변수가 많아서다.작은 회사 규모로 한정한다면 변수가 그리 많지 않다.사장이나 임원들 성격, 회사 전망, 자금 ..

단상 2017.10.11

자신이 별 거 아닌 사람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어디서 일을 하든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다음에 다시 오라는 소리 듣는 게 '제대로 일한 것'이라는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그 소리 듣고자 좀더 열심히 했다.그런 소리 못들으면 부끄러움을 느꼈었다.일을 잘한다는 평판이 곧 바람직한 인간이고, 열심히 일하는 게 삶의 의의라고, 국가와 사회가 내게 주입시킨 노동윤리 때문이었을까?아니면 내 빈약한 자존감 때문이었을까?그들에게 내 존재를 인식시킴으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못한다는소리도, 잘한다는 소리도 듣지 않고, '딱히 별 문제 없는' 정도만 한다.오늘부터 내가 직장에 보이지 않아도 별 감흥 없고, 나에 대해 별 기억도 없는 정도가 딱 좋다.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그들의..

단상 2017.09.29

차라리 돈 때문에 그러라고.

직원 관리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데 조직 전체 관점에서는 문제가 되는 면면들을 볼 때가 있다. "전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저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는 겁니다."당연한 말이다. 인신공격이나 도에 지나친 무례는 어떠한 경우에도 옳지 않다.하지만, 개인에 대한 예의와 직급에 따른 예의를 혼동하는 경우엔 오히려 가소롭다.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건 좋은 덕목이지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사장이나 상급자, 하급자, 경비나 운전기사, 청소부 등 위치에 따라 대하는 바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다.어느 회사 부장이 사장에게 90도로 인사하듯 경비에게도 90도로 인사한다면 어색한 일이다.운전기사에게 '기사 아저씨'라고 부른..

단상 2017.09.26

권위주의적 인간은 동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권위주의적 인간은 동등을 인정하지 않는다.권위주의라는 말 자체가 위계서열과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니 당연한 말이긴 하다.자신이 복종해야 할 사람과 자신에게 복종해야 할 사람, 오직 상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권위주의적인 인간이다.하지만 자신과 동등한 지위거나, 자신과 다른 위계에 속한 사람과의 협업은 어떨까?응당 동등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되면, 권위주의 인간은 협업의 테두리 내에서 또 다른 위계를 확립하려고 한다.자신이 무조건 우두머리를 맡겠다는 뜻이 아니다.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보다 높은 권위을 가진 다른 사람이 우두머리를 맡겠다면 기꺼이 인정한다.권위주의 인간에게 위계가 없는 관계는 불완전한 관계다.자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권위를 내세울 의사가 없는 상..

단상 2017.09.23

부정적인 보고에 필요한 처세의 기술

품질관리를 따로 두지 않았던 모 회사로 이직한 경력직이 품질관리팀을 만든다.품질관리팀 도입 전의 회사 불량률은 4%, 도입 후 불량률은 20%가 됐다.이걸 갖고 품질관리팀 도입한 탓에 불량률이 증가했다고 까는 사람이 있더라.좋게 보면 보고를 곧이 곧대로 믿는 순수한 사람인 거고, 솔직히 말해 이런 사람은 공장 운영을 하면 안된다.(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회사를 키운 사장의 대부분이 이렇다는 게 모순이다.) 애초에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투입한다고 해서 불량률이 5배로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품질 관리팀 도입 이전에 불량률 4%와 도입 후 불량률 20%라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품질관리팀 도입 이전에 운영하던 불량품 적재 공간에 5배로 늘어난 불량품이 쌓여 당장 티가 났을 거다.하지만 그런..

단상 2017.09.20

사람 성격을 혈액형으로 재단하는 거 엄청 무식해 보여요...

"야, 저번에 왔었던 네 친구, 왜 그리 소심하냐? 맞춰주기 힘들더라.""그 친구가 A형이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라." "와, 확실히 O형이라 성격이 둥글둥글 하구만." "내가 B형이라 좀 그런 면이 있잖아." "완전 전형적인 AB형이구만." 그럼 세상에 성격이 네 종류 밖에 없다는 소린지, 피 종류가 인간의 감정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긴지.혈액형으로 성격 규정하는 게 얼마나 무식한 건지 좀 알았으면 한다.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에 뭘 그리 진지하냐고 항변하는 사람에겐, 본인 판단의 합리성의 근거로 내세우는 게 웃자고 하는 짓이냐고 말해주고 싶다.그렇게 웃기고 싶으면 이빨에 김이나 끼우던가.

단상 2017.09.15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로서 알려주는 입사응시서류 팁

일단 공채는 논외로 합니다. 죤만한 중소기업의 인사 업무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적을 뿐입니다. 공채는 응시해 본 적도 없어요. 하지만 업무 관점에서 보면 비슷하기 때문에 짐작 정도는 가능합니다. 채용 면접이라는 게 응시자 입장에서는 인생이 걸린 일이라 되게 신중하고 중요한 무슨 절차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인사 담당자 관점에서는 그냥 업무일 뿐이니까요. 쉽게 말해, 응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은 입사 응시서류지만,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그런 서류가 몇 천장, 몇 만장인 겁니다. 제 짐작에는 응시서류(앞으로 그냥 통칭해서 이력서라고 하겠습니다)가 많다면, 스펙이나 적성검사 점수 등을 기준으로 정하고 거기 못미치면 아예 읽지도 않고 그냥 떨궈버릴 겁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업무라서 그래..

단상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