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관리를 따로 두지 않았던 모 회사로 이직한 경력직이 품질관리팀을 만든다.
품질관리팀 도입 전의 회사 불량률은 4%, 도입 후 불량률은 20%가 됐다.
이걸 갖고 품질관리팀 도입한 탓에 불량률이 증가했다고 까는 사람이 있더라.
좋게 보면 보고를 곧이 곧대로 믿는 순수한 사람인 거고, 솔직히 말해 이런 사람은 공장 운영을 하면 안된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회사를 키운 사장의 대부분이 이렇다는 게 모순이다.)
애초에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투입한다고 해서 불량률이 5배로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품질 관리팀 도입 이전에 불량률 4%와 도입 후 불량률 20%라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품질관리팀 도입 이전에 운영하던 불량품 적재 공간에 5배로 늘어난 불량품이 쌓여 당장 티가 났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도입 이후에도 적재된 불량품 수량은 비슷했다.
간단히 말해, 이건 보고되는 수치의 문제다.
20박스의 자재를 4박스라고 잘못 세기는 어렵지만, 4박스라고 쓰는 건 손가락만 까닥하면 될 일이다.
4%라는 보고서 수치 자체가 틀렸다고 보는 건 너무 당연한 추론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녹록치 않다.
품질관리팀 탓에 불량률이 증가했다고 까는 사람이 만약 사장이라면 어떨까?
애초에 왜 회사에 품질관리 부서를 따로 두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장이 품질관리팀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산에서 잘 만들면 왜 품질관리가 따로 필요하겠냐는 아주 아름다운 생각에서 비롯된 거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에 4%라는 보고를 곧이 곧대로 믿고, 더 나아가 20%라는 보고도 '보고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 4%라는 수치가 거짓이었다'고 곧이 곧대로 말한다는 건, 사장더러 '당신은 지금까지 속고 살아온 병신입니다'라고 욕하는 꼴이다.
보고 받는 사람이 사항에 관해 최대한 간략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는 것이 보고서의 기본이다.
일반 직원은 사실대로 따박따박 쓰기만 하면 된다. 오히려 그 이상을 고려하려고 하면 발라당 까졌다는 부정적 평가만 받는다.
하지만, '이제 좀 일 좀 한다'는 위치에 올라가면, 보고 받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보고에 관련된 사람이 면피할 재료까지 제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료를 가공할 수도 있다. (물론 수치를 조작하면 절대 안된다.)
위의 상황을 예를 들자면, "현재 불량률이 20%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품질관리팀 집계로는 현재 불량률이 20%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내용상으로는 동일하다.
공장 가서 죽치고 앉아 지켜보고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불량률 20%가 맞는지 안맞는지 단정할 순 없다.
집계된 자료를 토대로 만드는 게 보고서다.
딱히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보고서는 간략한 게 미덕이다. 하지만, 오히려 구구절절이 필요한 상황도 있다.
이 경우에는 '누가 그러는데 이렇다고 카더라'라는 뉘앙스가 주는 불확실성이 필요하다.
확실한 게 아니니 일단 빠져나갈 여지가 된다.
궁지에 몰면 반발한다.
어떠한 사안에 관해 보고 받는 위치의 사람이라는 건 결국 그 사안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실행하는 모든 일은 최종적으로는 사장이 동의한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서는 관련된 사람의 입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신랄한 보고 내용은 과장 좀 보태서, '사장 니가 똑바로 안해서 이런 등신같은 결과가 나온 거야'라고 사장 욕하는 셈이 된다.
별 조또 아닌 부분 같지만, 이런 부분이 되느냐가 "이 새끼 뭘 좀 아네"나 "이 새끼 또라이네"라는 평판을 듣게 되는 갈림길이고, 나아가 과장을 넘어 차부장급으로 올라가는 경계선이다.
한국의 회사 조직 문화는 조폭식 의리 문화라, 동료에 대한 밀고를 배척한다.
그러니 부정적인 부분을 매개로 본인의 유능함을 나타내려는 순진한 정의감은 버리는 편이 조직 생활하는데 낫다.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회사 들어간 건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