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229

삶에 꼭 의미가 필요할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양 굳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의 반려자,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친구... 스스로 찾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억지로 갖다 붙여서라도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우주가 보기에 인간과 들꽃이 뭐 그리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사는데 의미가 반드시 있어야 할까 없어도 지장 없다면 없으면 큰일 나는 양 결핍의 강박을 느끼는 건 자해일 뿐이다 산골짜기 외진 곳 이름 모를 들꽃은 굳이 의미가 없어도 별탈 없이 피고 진다 있어도 괜찮고 그딴 거 없어도 괜찮다

단상 2021.03.22

왜 난 그런 사람들하고만 엮일까?

"난 왜 맨날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할까? 다들 안좋게 끝났어." 흰 것이 있었어. 어느 날 흰 것 옆에 빨간 것이 가까이 왔어. 얼마 후 빨간 것이 검게 변하더니 흰 것으로부터 멀어졌어. 아마 빨간 것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봐. 그리고 또 어느 날 흰 것 옆으로 노란 것이 가까이 왔어. 역시나 얼마 후 노란 것도 검게 변하더니 흰 것으로부터 멀어졌어. 아마 노란 것에게도 빨간 것과 같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 후로도 분홍 것, 초록 것, 파란 것, 주황 것 등등이 때론 혼자, 때론 짝을 지어 흰 것에 가까이 왔어. 그리고 그들도 결국은 검게 변하면서 흰 것으로부터 멀어졌어. 흰 것과 나머지 다른 색의 것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내가 확실히 아는 건, 한 번 벌어진 일은 우연일..

단상 2021.03.15

악의 평범성 - 조직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명령에 복종한다'는 군인의 여러 덕목 중 하나다. 대부분의 군 훈련은 병사를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한다. 상관의 명령에 묻지도 따지지 않고 따르도록 반복을 거듭해서 신체와 정신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야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죽더라도 부대의 목표를 달성한다. 심지어 부대 전체를 희생하여 다른 부대들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도 한다. 명령을 하는 부대장도, 따르는 부대원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지시하고 따르는 것이다. 서로를 독립적 개체로 여긴다면 해서는 안되는 명령이고, 따르길 거부해야 할 명령이다. 집단이 목표를 달성해봐야 개인 입장에서는 죽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부대원 개개인이 자신을 부..

단상 2021.01.11

죽을듯이 징징거려야 챙겨준다

아기가 배고프다 젖을 달라고 방글방글 웃으며 귀염 떠는 걸 상상해 보자. 비현실적이다. 애가 배가 고프면 때와 상황 가리지 않고 빽빽 지랄지랄 우는 게 정상이다. 좋게 좋게 웃는 낯으로 월급 올려달라고 해봐야 소용 업는 게 바로 그런 거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질질 짜든, 아니면 관두겠다고 협박을 하든, 욕망을 곧이 곧대로 드러내라. 그 좆도 아닌 이미지 관리 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어필해라. 그러면 반응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별 미친놈 다 보겠다고 잘라 버리든, 진지하게 반영을 하든. 울지 않으면 젖 안준다. 그 대단하고 찬란하신 모성애로 무장한 엄마도 애가 배고픈 거 같이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애새끼는 체면 차리지 않고 울어 재낀다. 생존이 걸린 일이니까. 좋게 좋게 웃으며 달라고 하면 엄마가 ..

단상 2021.01.06

고정관념의 함정에 빠진 이해심

일주일에 두 번, 청소만 하는 것으로 계약한 가정부가 있었습니다. (인니니까요. 월 4만원 정도 했습니다.)전 혼자 살았고, 회사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와서 집청소를 하고 갔습니다. 가정부가 왔다 가면 세면대 선반에 놓인 칫솔, 비누, 헤어 왁스 등의 위치가 매번 바뀌었습니다.물건들을 순서대로 칼같이 정리를 해야 하는 강박 같은 건 없습니다만, 물건을 쓰면 있던 자리에 놓는 습관이 있습니다.그래서, 물건을 놓다보면 자연스레 제자리가 정해집니다. 물건의 위치 역시 자연스럽게 머리에 입력되고요.근데, 그 위치가 계속 바뀌니 은근 스트레스더군요.매번 원래 위치로 돌려 놓았지만, 가정부는 계속 물건의 위치를 바꿔 놓았습니다. 외국에 살다 보니, 사소한 일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익숙..

단상 2020.12.09

한국-외국 커플 유튜브 채널들을 보다 느낀 묘한 점

최근 한국-외국 커플의 유튜브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워낙 많아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형성되었을 정도다.한-외 커플 영상은 크게 '이미 결혼한 사이'와 '이제 결혼할 사이'로 나눌 수 있다.이미 결혼한 부부의 영상 컨텐츠들은 대체적으로 소소한 일상 위주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라 밋밋하지만 안정적이다.당연하다. 부부가 함께 사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이다.가끔 여행지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생활이 주다.이런 컨텐츠들은 정상적이고 평범하다. 반면, '이제 결혼할 사이'라는 한-외 커플 영상 컨텐츠는 좀 다르다.뭐랄까... '여행 + 예쁜 현지인 여성 + 가상 결혼 페이크 다큐'랄까?여행 관련 컨텐츠는 좋지만, 이제 차고 넘쳐 식상하다.노출도 높은 의상을 입은 늘씬하고 예쁜 현지인 여성이 수시로 나오는 ..

단상 2020.12.02

개떡의 적반하장

"니가 그랬잖아.""내가 언제 그랬어?" "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들어!" 흔히 벌어지는 말다툼이다.발뺌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모호한 표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을 할 때, 사람은 모호한 표현을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 쓴다.가령 '그 사람 깔끔한 편이야'라는 표현을 예로 들자면...말한 사람은 듣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깔끔한 정도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깔끔하다'는 건 모호한 표현이다.1부터 10까지의 레벨로 나눠진 정확한 기준 따위는 없는, 상대적 표현일 뿐이다.내가 봐서 깔끔하면 깔끔한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 기준으로 말해야 한다.말하는 사람이 '그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양쪽을 알고 있으니, 듣는 사람의 기..

단상 2020.11.18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간단합니다.타인이 싫어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타인이 싫어할 걸 알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런 사람을 가리켜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라고 하는데 사실 별 의미 없는 말장난입니다.누가 머리에 총구 겨누면서 강요하는 거 아니고, 다 자기 이득 때문에 타인이 싫어할 짓을 선택한 겁니다.뭐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적당하겠네요. 타인이 싫어할 짓을 고의로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관심 받으려고 그러든 그냥 쾌감 때문에 그러든 뭐 나쁜 사람 맞지요.이런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이런 사람은 최소한 타인이 싫어할 짓이 뭔지는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나쁜 ..

단상 2020.11.04

그 사람이 그런 걸 왜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 해야 하지?

모 블로그에서 인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고, 현지인 직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인니 한국 기업에서 일한지 얼마 안되는 한국 청년의 블로그였다.글 내용중 '한국 기업들의 불법적인 처우에 대해 우리 한국인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본인이야 정의감에 불타올라 그랬겠지만 글쎄... 10여년 전 UI의 인니어 어학당 다니던 인니 생활 초창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20대 초반 한국 여학생들, 한국인 신분을 이용해 현지 여성들을 삼다리 사다리로 후리던 남학생들의 행태를 보며, 한국 망신 시킨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은 나쁘지 않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

단상 2020.10.28

별 거 아닌 그 일이 어떤 사람에겐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싱가폴에서 당일치기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새벽 첫 비행기로 싱가폴에 가서 대행사에 여권과 서류를 맡겨야 한다.취업비자가 처리된 여권을 돌려 받는 건 대략 오후 4~5시 쯤이다.그 때까지는 알아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대부분 대행사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간혹 싱가폴 관광을 하는 사람도 있다.그 중에는 반드시 머리를 깎아야 한다며 몇 번이고 미용실이 어디 있는지 묻던 청년이 기억에 남는다. 20대 후반 정도였던 그 청년은 수마트라 수력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거의 모든 한국 업체들이 그렇듯, 그 청년도 일단 임시 비자로 인니에 입국하여 수습 겸해서 2개월 정도 근무를 하다가, 취업비자 허가가 난 후 싱가폴에 왔을 게다.수마트라 수력 발전소 공사 현장이라면 완전 깡촌 시골이다.바리깡으로 깎는 시골 이발..

단상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