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악의 평범성 - 조직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명랑쾌활 2021. 1. 11. 08:50

'명령에 복종한다'는 군인의 여러 덕목 중 하나다.

대부분의 군 훈련은 병사를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한다.

상관의 명령에 묻지도 따지지 않고 따르도록 반복을 거듭해서 신체와 정신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야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죽더라도 부대의 목표를 달성한다.

심지어 부대 전체를 희생하여 다른 부대들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도 한다.

 

명령을 하는 부대장도, 따르는 부대원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지시하고 따르는 것이다.
서로를 독립적 개체로 여긴다면 해서는 안되는 명령이고, 따르길 거부해야 할 명령이다.
집단이 목표를 달성해봐야 개인 입장에서는 죽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부대원 개개인이 자신을 부대의 일부로 도구화 한다는 의미가 있다.
스스로를 명령권자의 도구로서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조직의 도구화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역사적으로 군인이 명령에 충실히 따라서 발생한 비극들은 무수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 광주의 비극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기 투입한 일반 부대가 진압에 미온적이자, 특수부대(공수부대)를 투입했다는 점이다.

일반 부대가 못하니까 '더 뛰어난' 특수부대를 투입했다는 뜻인데, 어떤 점이 더 뛰어났을까.

우선 전투력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일반 부대가 특수부대에 비해 전투력이 떨어지더라도 상대는 민간인들이다.

민간인들도 무장을 했다지만, 정식으로 중무장한 군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특수부대를 투입한 이유는 전투력 때문이 아니라 복종심 때문이다.

특수부대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부대'인데, 군대에서 특수하다는 건 대부분 위험하다는 뜻이다.

부대 성격상 늘 위험한 상황을 접하기 때문에 보다 높은 복종심을 갖도록 훈련 시킨다.

복종심은 스스로의 도구화다.

일반 부대는 스스로의 도구화가 약했기 때문에 상대가 민간인이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특수부대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명령에 충실히, 아니 충실함을 넘어 열성적으로 따랐다.

흉기가 없는 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걸 서슴치 않았다.

 

복종에 따른 비극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악의 평범성>에 잘 나타나있다.

나찌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유대인은 6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온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매우 지적이었다.

그는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고, 불행히도 근면하고 유능했다.

조직의 관점에서 그는 훌륭한 조직원이다.

 

 

한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은 어떨까?

상대와 상대의 가족을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뜨릴 결정을 실행하면서, 회사 조직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집에 가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처자식 아끼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평범한 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스스로를 위한 변명일 수는 있어도, 상대를 납득시킬 이유는 되지 못한다.

조직은 어쩔 수 없게 만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 건 자신이다.

조직은 가책을 대신 느껴주지 않을 뿐더러, 인사 고과와 임금으로 대가도 지불했다.

어쩔 수 없이 했어도 한 건 한 거다.

자기 합리화를 하든, 망각을 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