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회사 25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회사 간부의 뒷월급

모든 중소기업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합니다.중소기업 형편이나 사장 성격에 따라, 정말로 모든 직원 급여가 쥐꼬리인 회사도 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간부란 최소 차장급 이상, 사장의 총애를 받는 직원을 뜻합니다.과장은 직급명에 '장'이 붙지만 간부가 아닙니다.실무직 최고참일 뿐, 별 권한도 없고 대리와 급여도 별 차이 없어요. 월급이 적어서 불만인 부하 직원에게, 자기도 얼마 차이 안난다며 반 하소연조로 다독이는 스타일의 간부가 종종 있을 겁니다.거짓말입니다.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니 체념하고 받아 들이라는 기만하는 겁니다.그런 사기를 치면서도 양심은 전혀 찔리지 않습니다.실제로 '월급만' 따지면 일반 직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임금의 많고 적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끼리 ..

단상 2020.08.07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5/5

- 최차장님, 신규 고객사와의 계약 체결이 연기되었습니다. - 회사 사정 상, 부득이 2월 1일부로 최자장님의 무급휴가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 무급휴가 기간은 특정할 수 없으나 3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결정하고 지시했고, 누군가 지시대로 통보한다. 개인의 인생에게 중요한 결정을 한 무게와 죄책감은 두 사람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다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곳에 흡수된다. 회사는 실체가 없지만 사람들이 실제한다고 믿기 때문에 실제한다. 실체가 없지만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종교와도 흡사하다. 광신도가 사람 목을 산채로 베면서도 '신의 뜻대로'를 외치며 자신의 행위를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변환하듯, 회사원은 개인이라면 하기 힘든 일을 '회사 방침상'이라..

소오~설 2020.05.25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4/5.

"최 차장님, 이럴 때일수록 근태는 더 확실하게 지키세요. 최차장님 근태가 안좋으면 현지인 직원들은 어쩌겠어요."이호병 상무의 말에 당혹스럽긴 했지만, 최준영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 원래 최준영은 소유통운 입사 전엔 자카르타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찌까랑 지역에 살고 있었다. 소유통운 입사 후 임대 기간이 반 년도 더 남은 집을 포기하고 파견 근무지인 수방 지역으로 이사 갔다. 자카르타 반대 방향으로 1시간 반 더 간 시골이었다. 그리고 국순 수방과 소유통운 양사 간의 외주 계약이 끝나면서 소유통운 자카르타 오피스로 출퇴근하게 되었다.애초에 파견 공장 내 기숙사 거주가 근무 조건이었는데, 최준영이 외부에 살겠다고 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유통운은 기숙사에 거주한다면 발생하지..

소오~설 2020.05.18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3/5

- 최센터장님, 국순이 수방 공장 창고를 자체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올해 말까지 철수할 예정이오니 국순 측과 인수인계 일정을 잡아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 회사 사정상, 부득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점 양해 바랍니다. - 향후 근무처 관련하여 추후 통보 드리겠습니다. 최준영은 이메일을 읽고, 태연하려고 노력했다. 집이었다면 기쁨의 떰부링을 스물 세 바퀴 정도 돌았을 거 같은 기분이다. 파견 근무처가 사라져 일자리가 붕 뜨게 된 상황이지만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국순 수방 공장의 창고 외주 관리를 했던 지난 5개월은 그정도로 끔찍했다.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회사에서 멀쩡하게 일하던 직원이 그만 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새로 오픈하는 회사가 아닌 이상, 한창 운영 중인 회사가 후임을 급구하..

소오~설 2020.05.11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2/5

"안녕하세요, 최준영입니다." 최준영이 국순 수방 공장 창고 한 켠의 사무실에서 소유통운 입사를 위한 면접을 본 건 5월 중순경의 일이었다. 그의 앞에는 소유통운 한국 본사의 고객지원팀 이현재 팀장과 팀원인 최훈 차장이 앉아 있었다. 태연한 척 했지만 최준영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채용 공고를 보고 알아 본 소유통운에 대한 정보나 그 밖의 상황을 근거로 했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소유통운은 원래 한국 굴지의 대기업 산하 계열사였다가 오너 일가의 복잡한 다툼 때문에 분리되어 사명을 바꾼, 나름 규모가 작지 않은 물류회사였다. 그런 회사에서 '인니 지사 센터장'을 채용한다고 공고했으니, 최준영이 인니 지역의 센터 역할을 하는 물류 통합 창고를 관리할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수방 지역..

소오~설 2020.05.04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1/5

- 팀장님, 저 너무 힘들어요. 사람 좀 뽑아 주세요. 파견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예요. 소유통운의 한국 본사 고객지원팀 소속인 최훈 차장은 이현재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인니 수방 지역에 소재한 고객사 국순에 파견 나온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의 일이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의 봉제업체가 보통 그렇듯 수방 지역 역시 인건비가 저렴한 시골 깡촌에 있었다. 여가 생활은 커녕 인프라나 치안 수준이 낮은 지역이라, 한국인 관리자들은 공장 부지 내 한 켠의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파견 나온 최훈 차장 역시 꼼짝없이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국순은 세계 최대의 생산 규모를 가진 가방 제조업체다.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 본부가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베트남으로 처음 진출하여..

소오~설 2020.04.27

나도 그렇게 같잖아 보였을까?

갑인 거래처의 서른도 안된 신입직원의 눈빛이 참 좋다.봉제업계가 워낙 센 사람들만 살아남는 거친 판이다 보니, 직장상사가 얕보이지 말라고 단단히 잡도리를 했을 거다.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주어진 업무를 자기 인생이라도 걸린듯 아등바등 하며, 회사에서의 위치가 곧 자기 자신의 위치라도 된 듯, 충성심으로 불타 오르고 있다.한국과 달리 부하직원들을 통솔하는 관리자 역할이 시작부터 주어지다 보니, 어깨가 무거워져서 그런지 상체가 점점 뒤로 젖혀지고 있다.관리자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부하직원의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지 않는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한다.수습 기간 3개월까지 합쳐, 갓입사한지 이제 5개월된 신입직원이.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다.몸담은 조직..

단상 2019.04.22

처우는 안좋지만 의리는 있는 회사라는 개드립

처우는 다소 떨어지지만 대신 사람 쉽게 자르지 않는 회사라는 건 입에 발린 말이지요.그 안좋은 처우를 감수하면서 자기 몫을 하는 사람이 드무니, 딱히 자를 이유가 드문 겁니다.대체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도 않을테고요.게다가, 절대 자르지 않는 게 아니라면 별 의미도 없습니다.쉽게 자르지 않는다는 건, 상황이 더 심하게 안좋으면 결국 자른다는 뜻이죠. 그냥 차라리 처우를 좋게 하고, 일 못하면 자르세요.최소한 위선은 아니니까.하지만, 그렇게는 또 못하겠죠?그럼 최소한, 처우는 좀 안좋지만 의리는 있는 회사라느니 하는 개드립은 치지 맙시다.애초에 의리가 있다면, 처우 조금이라도 좋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앞뒤가 맞는 얘기죠.

단상 2019.03.15

[언어로 인한 생각의 전환] 01. Boleh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밴저민 리 워프는 '언어는 사고 체계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세웠다.최고의 단편SF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표현하는 인류의 언어 체계와 달리, 통시적으로 표현하는 외계 언어를 습득한 언어학자가 현재를 보면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게 되는 사고체계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 이야기의 토대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외국어를 깊게 이해한다는 건, 그 사고 방식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외국어에 대한 배움이 점점 깊어지면서 사고방식이 바뀌게 되는 건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한국어와는 다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사고와 관점의 영역을 넓혀준 단어에 대해 끄적여 보려 한다. boleh 의 한..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15. 사실은 그냥 당신이 미워서 그런 거야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직원 A가 개인 사유로 토요일에 연차를 쓰겠다고 금요일에 부서장에게 보고했다.부서장 B는 갑작스런 사유를 제외한 모든 연차 신청은 미리 해야 한다고 예전에 얘기했는데, 또 다시 전날 갑자기 보고한 부분에 대해 질책을 하고, "니 마음대로 해!" 라고 했다.A는 토요일에 결근을 했다.부서장 B는 월요일에 본사 관리부장 C에게 와서 다짜고짜 "A가 무단결근을 했다"라고 말했다. C는 양쪽의 입장을 듣고 정리해본다.직원 A의 입장1. 연차는 개인의 권리로서,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장되어야 한다.2. 미리 보고할 기회가 없었다.부서장이 월요일 본사 주간회의, 화요일 거래처 미팅 때문에 출근..

단상 2018.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