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2/5

명랑쾌활 2020. 5. 4. 08:34

 

"안녕하세요, 최준영입니다."

 

최준영이 국순 수방 공장 창고 한 켠의 사무실에서 소유통운 입사를 위한 면접을 본 건 5월 중순경의 일이었다. 그의 앞에는 소유통운 한국 본사의 고객지원팀 이현재 팀장과 팀원인 최훈 차장이 앉아 있었다. 태연한 척 했지만 최준영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채용 공고를 보고 알아 본 소유통운에 대한 정보나 그 밖의 상황을 근거로 했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소유통운은 원래 한국 굴지의 대기업 산하 계열사였다가 오너 일가의 복잡한 다툼 때문에 분리되어 사명을 바꾼, 나름 규모가 작지 않은 물류회사였다. 그런 회사에서 '인니 지사 센터장'을 채용한다고 공고했으니, 최준영이 인니 지역의 센터 역할을 하는 물류 통합 창고를 관리할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할 만도 했다. 수방 지역에 있는 국순이라는 회사로 면접을 오라고 했을 때만 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류 센터는 수방 지역에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이고, 부지 인근에 있는 거래처에서 장소를 빌려 면접을 보는가 보다 했다.

 

그래서 차 두 대 겨우 마주 지날 정도로 좁은 마을 진입로를 따라 들어와 사방에 인가 하나 없이 논밭으로 둘러싸여 오지의 고립된 섬 같은 공장을 봤을 때도 '어떤 멍청한 인간이 이런 곳에 공장을 올렸나. 깡패 몇 명만 길 막아도 꼼작마라네....'하며 심상하게 지나쳤다. 인니는 마을 진입로를 마을 소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적당한 구실만 있으면 길을 막고 통제를 해도 별 제재가 없다. 경찰이 출동해봤자 어차피 서로 뻔히 아는 사이라 옥신각신 시늉하면서 서너 시간 시간 끌다 해산해도 이미 목적 달성이다. 공장은 폐자재 매매라던가 인력 소개 등 돈이 나올 구석이 많은데, 가뜩이나 외국 기업 공장이라면 수탈을 애국의 명분으로 포장하기도 쉽다. '마을 청년회'니 뭐니 하지만 실상은 깡패 집단인 단체가 이권 사업을 독점 계약하자고 압박하고, 만약 회사가 거부하면 출근하는 직원들을 위협한다던가 드나드는 트럭이 못가게 막는 식으로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니에서 10년간 공장 총괄 업무를 하면서 별별 꼴 겪었던 최준영이 보기에 국순 수방 공장은 절대 선택해서는 안되는 위치에 있었다.

 

완전 엉망인 창고 구역 한 구석의 사무실에 들어 섰을 때까지도 최준영은 덤덤했다. 창고 완전 엉망이네, 이 창고 관리하려면 엄청나게 골치 아프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현재 팀장으로부터 만약 채용되게 되면 이 창고에서 외주 관리 업무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겉으론 태연한척 표정 관리하면서도 속으론 쌍욕이 절로 나왔다.

'아 시발, 센터장을 뽑는다면서!'

 

센터는 통상 하부 조직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에 붙이는 명칭이다. 더군다나 물류 업종에서 센터라고 한다면 그 뜻이 더 분명하다. 회사 내부나 거래처 사이에 자기들끼리 자위질 하느라 감투 명칭 그럴듯 하게 붙이는 거야 자유지만, 외부인한테 그러는 건 말장난이다. 수많은 지방 공장 중 한 곳에 딸린 자재 창고는, 그것도 자재만 받아서 공장에 공급만 하는 외주 위탁 관리 업무를 수행하는데 센터장라는 건, 요식업 체인점 매니저 뽑으면서 법인장 구인한다고 광고하는 격이다.

 

어떤 빌어먹을 언어의 마술사 색히가 구인 광고를 했는지 주먹으로 골통을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오는 걸 누르며 최준영은 면접을 계속했다.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되시는데, 저희 회사에 입사를 응시하셨는지요?"

이현재 팀장이 물었다. 경력직을 뽑을 때 절대 빠지지 않을 당연한 질문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퇴사해야 할 상황이거나 하진 않습니다. 다만 회사가 좀 어려운 상황이긴 합니다. 재작년부터 매출이 계속 줄어서 인원을 계속 정리해왔는데요, 제가 회사 총괄을 맡고 있어서 전면에서 해왔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황인데, 인원 규모가 줄었다 보니 한국인 직원도 두 명씩이나 있을 필요성이 적어졌습니다. 그 두 명 중 제가 직급이 높으니 급여도 더 많다는 점도 있고, 제가 구조조정 진행했으니 구조조정 하고 남은 직원들이 저에 대해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도 있고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욕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제가 욕 먹는 게 마땅히 맡아야 할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이라 가능하면 이직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회사는 계속 다니고 있으면서 이직할 자리도 계속 찾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잘리면 모를까, 회사 생각한다며 옮길 곳도 없으면서 지금 회사 그만 둘 생각은 절대 없고요, 만약 이번 면접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냥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계속 다녀도 큰 문제는 아직 없습니다."

 

최준영은 평소보다 더 솔직하게 얘기했다. 면접 하는 입장을 하도 많이 겪어 봐서 면접 받는 입장인 게 별로 긴장이 안되기도 했지만, 내심 채용에서 탈락되는 편이 속편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촌 시골에서 돼지치기를 하는 건 각오한 바지만, 돼지와 레슬링 하는 게 업무라면 전혀 다른 얘기다.

 

"만약 같이 일하시게 된다면, 여기 공장 내 기숙사에서 지내셔야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그 건 좀 곤란합니다. 사실 제가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 결혼할 예정이거든요. 지금도 따로 집을 임대해서 살고 있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면 제 짐들도 문제가 되고요. 어디 맡길 곳도 없고 그렇습니다."

"그럼 어쩌죠? 저희는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원칙인데요."

 

'조또 그럼 애초에 구인 광고에 그렇게 적었어야지.'

최준영은 다시 한 번 구인 광고 언어의 마술사 색히에게 마음 속으로 욕을 했다. 구인 광고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인니에 사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기숙사 거주나 사택 제공 등 조건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설령 가족이 있더라도 반드시 기숙사에 거주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있는 회사도 있기 때문에, 기숙사 거주를 해야 한다면 구인 조건에 명시를 하는 게 보통이다. 명시하지 않았다면 강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가 구인 광고를 냈는지, 최준영은 어째 소유통운이라는 회사 돌아가는 꼴이 미덥지 않아 쌔한 느낌이 점점 더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자택에서 한 시간 거리인데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여기 인근에도 외국인이 지낼만 한 주택단지가 있는데요, 대략 40분 정도 거리입니다. 거기서 출퇴근하면 될 거 같습니다. 정 기숙사 거주가 반드시 해야 할 사항이라면 전 어쩔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최준영은 절대로 기숙사 생활을 할 생각이 없었다. 예전 회사의 기숙사 생활은 지옥이었다. 옛날 사고 방식의 표본과도 같았던 전직장 상사는 퇴근 후에도 지가 무슨 웃어른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직장 상사란 직장에서는 상사고, 직장 밖에서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라고 면전에 대고 타이르듯 말할 정도였다. 나이는 10살도 차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 기숙사는 첫 직장보다 더 끔찍할 거라는 게 뻔히 보였다. 그나마 도시라고 할 만한 찌까랑까지 최소 한시간 반, 두시간 거리의 오지에서 감옥 생활이다. 게다가 다른 회사, 그것도 원청인 회사 직원들이 전부인데 혼자 껴서 눈칫밥 먹고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따로 없다. 최준영은 차라리 이현재 팀장이 탈락 시키길 바랐다.

 

실망스럽게도 이현재 팀장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 회사 강제 사항은 아니라서 따로 나가 사시는 건 별 문제는 없지만, 회사에서 따로 지원은 못드립니다. 전임 센터장님도 여기 몇 년 간 일하시면서 계속 기숙사에 지내셨거든요."

"나가서 살 곳은 제가 알아서 구하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는 곳도 회사에서 따로 해준 게 아니라, 제가 다 알아서 구하고 계약하고 했습니다. 제 차가 따로 있으니 차 지원하실 필요도 없고요."

 

이후 실무 면접이 이어졌고, 30분 정도 지나 면접이 끝났다.

회사를 나서는 최준영의 기분은 복잡했다. 사회 생활 20년, 그중 법인 총괄 경력이 10년이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원청 공장 창고 외주 관리라는 게 맡은 일만 똑바로 하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최준영은 순진하지 않았다. 창고장(센터장은 개뿔)이라지만 실제로는 원청 갑질 욕받이가 주업무일 게 뻔했다.

 

그렇다고 조건이 안맞는다고 걷어차기도 곤란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사장의 최준영에 대한 신뢰는 굳건했지만, 상부의 신뢰라는 건 항상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최준영에게는 어려운 회사 상황에 따른 고통 분담이 그 대가였고, 반년 전부터 월급이 1~2주씩 늘어지는 게 누적되어 어느덧 3개월치가 밀린 상황을 감수하고 있었다. 신뢰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나마 미혼인 덕분에 버티기는 하지만, 한국에 계신 은퇴하신 부모님께 정확한 날짜에 돈을 부쳐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냥 느긋하긴 어려웠다.

밀린 월급의 금액이 점점 커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적은 금액이 짧게 밀렸다면 사장 입장에서도 압박감이 크겠지만, 장기간 계속 되다 보면, '그 돈 없어도 그럭저럭 버티는 거 보니 괜찮은가 보네'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처음에야 1주일 밀리는 게 큰 일처럼 느끼지만, 한 달 밀린 상황에 1주일 밀리거나, 6개월 밀린 상황에 한두 달 밀리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별 거 아닌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무뎌지다 보면, 정작 밀린 월급을 정산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마치 공돈을 주듯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사람은 결국 상황에 따라 바뀐다. 자기 가족 수술비 필요한 상황에도 남에게 갚아야 할 돈 손 안대는 사람은 드물다. 내 사정이 급하면 선택지는 좁아진다. 개인도 그런데, '회사의 부득이한 여건'이란 건 죄책감 덜기에 얼마나 편리한 핑계인가.

그가 생각하는 한계점은 3개월이었다. 3개월 이상이 되면 금액이 커서 받기 쉽지 않고, 받더라도 기분 좋게 받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회사 자금 흐름을 알고 있는 최준영은 이대로라면 두 달 쯤 후엔 밀린 월급은 4개월치로 늘어날테고, 큰 전환점이 없는 한 점점 악화가 가속될 확률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장과 자신의 월급을 없는 셈치고 회사 손익을 계산해봐도 약간 마이너스인 상황인데, 밀린 월급의 액수가 줄어들 리가 없다. 하긴, 애초에 최준영이 이직을 결심한 이유도 그 계산을 해봤기 때문이었다.

 

 

1주일 뒤, 최준영은 이현재 팀장으로부터 채용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준영은 알겠다고 했지만, 기쁘진 않았다. 채용 합격 여부에 따라 마음을 정하자고 선택권을 넘기긴 했지만, 내심 떨어지면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장 신임을 받으며 회사를 총괄해온지 3년, 회사 생활만 놓고 보면 불편할 게 없었다. 이직하게 되면 이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원청 회사 말단 직원보다도 낮은 위치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원청 회사 현지인 직원들도 깔아 뭉개려 할 게 뻔했다. 원래 인니인들은 서구식 마인드라 원청과 하청 관계라도 지키는 선이 있지만, 유독 한국 업체에서 일하는 인니인들은 갑질이 지독했다. 익숙해진 업무 환경에 안주하며 금전적 문제를 뒤로 미룰 것인가, 아니면 힘든 업무 환경을 감수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끝에 최준영은 결국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그 대가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혹독하다는 사실을 머지 않아 알게 되지만 그건 훗날 일이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밑바닥에 굴러도 죽지는 않겠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 못받는다. 최준영은 결국 이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급여는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높았지만, 주택 지원도, 차량 지원도, 운전기사도, 하다 못해 유류비도 지원이 없었다. 이현재 팀장은 애초에 기숙사 거주가 기준 조건이기 때문에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라고 했다. 처우 조건 따져보면 실제로 받는 액수는 지금 다니는 회사 급여와 몇 십 달러 차이였다. 이현재 팀장도 나름 알아보고 계산해서 이전 직장보다 낫지는 않는 선에서 최저로 책정했을 것이다. 그런 일 하라고 회사에서 월급 주는 것일 터였다.

 

최준영은 합격 통보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다니고 있는 회사 사장에게 퇴직 의사를 밝혔다. 사장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붙잡지는 못했다. 회사 사정상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르는 회장에게는 월급이 밀려서 옮길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았다. 사장에게 불벼락이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서운해 하며 최준영이 배신이라도 한 양 화를 냈지만, 결국 허락했다. 아무리 경영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황을 아예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밀린 월급은 최준영에게 지급된 회사 차량의 소유권을 넘기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중고 시세가 밀린 금액에 비해 부족하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도 나았다. 금전적 빚이 있으면 사람 관계도 껄끄러워지는 법이다. 주면 주는대로, 못주면 못주는대로 그렇다. 인간 관계에서 돈이 조심해서 다뤄야 할 맹수라면, 빚은 흉악한 괴물이다. 한국에서 채권 추심 관련 일을 했었던 최준영은 빚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현재 팀장은 즉시 출근할 수 없냐고 했지만, 최준영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알바도 아니고 (아니, 알바라도), 회사 총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인수인계도 없이 회사를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현재 팀장도 그런 룰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자기 '회사의 부득이한 여건' 때문에 찔러나 본 걸 거다. 하지만 개인 대 회사도 아니고, 회사 대 회사의 '부득이한 여건'이 충돌하는 상황이니 강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준영은 한 달의 말미를 받아 인수인계를 하고, 회사 인근 마을에 새로 집을 임대하여 이사를 갔다. 원래 살고 있는 집은 아직 5개월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지만 포기했다. 월세로 계산하면 150만원 정도를 포기하는 셈이지만 개인 사정일 뿐이다.

7월 초, 최준영은 국순 수방 공장으로 출근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좋은 상황은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 않고, 나쁜 상황은 예상보다 더 나쁜 법이다.

출근 첫날 만에, 최준영은 자신이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지옥같은 상황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