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15. 사실은 그냥 당신이 미워서 그런 거야

명랑쾌활 2018. 2. 23. 12:00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직원 A가 개인 사유로 토요일에 연차를 쓰겠다고 금요일에 부서장에게 보고했다.

부서장 B는 갑작스런 사유를 제외한 모든 연차 신청은 미리 해야 한다고 예전에 얘기했는데, 또 다시 전날 갑자기 보고한 부분에 대해 질책을 하고, "니 마음대로 해!" 라고 했다.

A는 토요일에 결근을 했다.

부서장 B는 월요일에 본사 관리부장 C에게 와서 다짜고짜 "A가 무단결근을 했다"라고 말했다.


C는 양쪽의 입장을 듣고 정리해본다.

직원 A의 입장

1. 연차는 개인의 권리로서,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장되어야 한다.

2. 미리 보고할 기회가 없었다.

부서장이 월요일 본사 주간회의, 화요일 거래처 미팅 때문에 출근하지 않았고, 수요일 역시 거래처 미팅 후 퇴근시간 30분 전에 출근하여 밀린 업무 및 지시사항을 부서원들 각각에게 전달하느라, 목요일 역시 오후에 한 부서원과 퇴근시간 넘어서까지 장기 면담을 하느라 보고할 기회가 없었다.

문자로 연차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서장 B의 입장

1. 연차가 개인의 권리는 맞지만,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2. 문자로라도 미리 전했어야 하며, 기회가 없었다는 건 핑계다.


C의 입장

1. 연차가 개인의 권리가 맞다면, 부서장의 승인(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은 모순이다.

허락을 맡아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2. A는 문자로라도 미리 전했어야 한다.

부서장이 명확히 지침을 내린 사항을 본인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예의 문제를 근거로 따르지 않은 셈이다.

회사 조직에 있어서 명확한 규칙은 모호한 예의에 우선한다.

문자로라도 부서장이 내린 지침을 따랐다는 근거를 남겼어야 한다.


C의 판정

관리에 책임자의 감정을 개입시키는 잘못을 저지른, 전형적인 관리 실패 사례다.

연차 사용 권리는 사유와 관계가 없다. 근로자는 쉴 필요가 있을 때 쉴 수 있다.

갑작스런 사유로 갑작스럽게 결근을 하든, 갑작스럽지 않은 사유로 갑작스럽게 결근을 하든,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이 갑작스럽게 결근했다'는 사실만 중요하지, 사유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는 감정이 없다. 직원 부모가 죽어도 회사 업무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부친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결근을 했다고 그 직원이 해야 할 업무가 없어지는 거 아니고, 3개월 전부터 계획했던 발리 여행을 갑작스럽게 떠났다고 해서 그 직원이 해야 할 업무가 회사에 심각한 손실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부친상, 동생의 결혼, 야간대학 시험, 가족 여행, 동호회 활동 등등 모든 결근 사유에 대한 참작은 전적으로 회사를 대변한다는 당위성을 등에 업은 관리자의 감정일 뿐이다.

그럴만 하다는 판단은 관리자의 납득에서 나오며, 관리자의 납득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리자의 가치관을 근거로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 직원의 결근 사유와 회사 사정은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갑작스런 사유를 제외한 연차 신청은 미리 해야 한다'는 규정은 개인의 연차 사용 권리 보장과 상충하는 개념이다.

두 개념이 양립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연차 신청 의무 규정보다 연차 사용 권리가 우선한다는 전제다. 서로 상충하는 개념을 동등하게 두면 충돌은 필연이다. 서로 충돌할 경우 어느 쪽이 우선한다는 차등을 둠으로써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연차 신청 의무 규정에 대한 정당성이다. 상위 개념에 반하는 하위 개념을 규정하는 근거는 상위 개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목적성에서 비롯된다. 위의 연차 문제의 경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사에 미리 알려야 한다는 합리적 목적이 명분이 된다. 그 명분에 의해 연차 사용자는 실제로는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자기 개인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는 규정에 동의한다.

'회사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부서장 B는 허가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근거가 자신이 내린 지침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억지일 뿐이다.

지침은 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함이라는 목적으로 성립됐다.

회사의 손실과는 무관하게, 그저 자기가 내린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저 자기 권위의 발로일 뿐이다.

그 순간 부서장 B의 지침은, 지침의 목적이 아닌 지침 자체가 정당성의 근거로 변질됨으로써, 연차 사용 권리 보장과 상충되면서 그 근거를 잃게 된다.

부서장 B는, '토요일에 당신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 업무에 큰 지장이 있으므로', 연차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어야 한다.

만약 회사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면, 갑작스런 연차 신청에 대해 질책함으로써 규정을 상기 시키고, 연차 사용은 허가했어야 한다.

회사 업무에 큰 지장이 없고, 해야 할 일은 모두 마무리 지었는데도, 갑작스럽게 보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차 사용을 불허한 것은 부서장 B의 감정적 독단일 뿐이다.


부서장이 부서원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의 당위성, 이른 바 '권위'는 전적으로 회사의 손익 여부를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서장(혹은 상급자)은 권위가 회사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므로, 그 권위가 손상을 입는 것은 회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마치 왕과 귀족의 권리가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으로, 그 권위에 대한 도전을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던 야만의 시대의 논리와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 권위에 대한 손상은 곧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이므로, 어떠한 기본 권리보다도 우선시 된다.

따라서 급기야, 회사 손익 여부와는 전혀 관계 없는 사항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유형 아닌가?

그렇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우리는 권위주의적 인간이라고 한다.

부서장 B는 자신의 권위가 손상을 받았다는 개인적 감정을 공적인 문제로 혼동하여, 자신이 강제할 수 없는 사항을 강제하려 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불합리한 판단은 상급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부서장 B는 개인 감정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



뒷이야기, 그리고 C의 수습

사실, C는 위와 같은 일이 있기 전에 이미, 부서장 B가 '어떠한 형태로든' A에게 적대적 감정을 표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A는 최근 이직을 고려 중인데, 부서장 B가 소개해준 괜찮은 직장을 거절했다.

문제는, 부서장 B는 A가 그 괜찮은 직장을 거절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못했다는 점과 A에게 직장을 소개시켜 준 이유가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 부서장 B에게도 활용할 이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A가 그 직장을 거절한 이유도 부서장 B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서장 B는 회사에서의 직책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강하며,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한다.

평소 패턴으로 보아, 부서장 B는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 A에게 적대감을 갖게 될 것이고, 그 적대감을 조절하지 못할 게 뻔했다.

딱히 연차 신청이 늦은 일이 아니었어도, 다른 일로 어떻게든 깨졌을 거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예측이었고, 그 예측이 실제로 벌어졌을 뿐이다.

자신의 호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적개심을 품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기 위해 순수한 호의로 포장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전형적인 자기확신형 권위주의적 인간이기 때문에, 본인의 판단이 도덕적으로든 회사 윤리적으로든 옳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만약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면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적대감을 표출한다.

(간단히 말해, 자기 말이 무조건 옳고, 반론은 반항이라는 얘기다.)

이런 경우, 냉정하게 사실을 지적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권위주의적 인간이 원하는 바는 자기 권위에 대한 충족이다.

높은 권위와 그에 걸맞는 사려깊음을 인정하며, 당면한 사건은 그 높은 권위에 비해 하찮기 그지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면 자연스럽게 풀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도 매우 하찮은 일이다.)

C는 부서장 B가 취한 행동이 옳았다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회사와 A를 위한다는 부서장 B의 진정성에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아직 미숙한 A에 대해 윗사람으로서의 아량을 보이길 권했다.

또한, 그 부서장 B의 그 아량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유용할 윗사람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의 박탈'이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A에게 응징을 가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부서장 B는 그 응징을 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C는 이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A와 부서장 B의 문제는 A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부서장 B가 A를 미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리고 부서장 B는 자신의 A에 대한 미움이 회사 조직 관점에서 '정당하고 옳은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A에 대한 미움을 거두지 않은 한 A에 대한 질책은 필연적으로 다시 벌어질 일이다.

자신의 미움이 옳은데, 미움을 거둘 일이 있겠나.



정리

많은 회사 관리자들이 개인 감정이 개입된 부당한 지시와 강요, 질책을 권위로 포장하여 하급자에게 내린다.

당신의 상급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당신을 질책한다면, 그건 그냥 당신이 미워서 그런 것이다.
미움이라는 비합리적 요인에서 비롯된 현상인데 합리성을 찾으려 하니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게 당연하다.
만약 당신의 상급자가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한다면, 그건 다 나중에 갖다 붙인 거다.

상급자 스스로는 거짓이나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그건 다 나중에 만들어 낸 이유다.

잘못된 일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실 미움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 아닌가?

'바람직한 직장 상사라면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당신의 기대는 기대일 뿐, 옳은 일의 척도도 아니고, 심지어 매우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요컨데, 당신이 직장 상사에게 실망하고 환멸하는 원인은 당신의 기대다.

인격은 나이와 상관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인격을 높여주진 않는다.

소위 회사의 윗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 나이도 불혹을 넘겨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유치할 수 있다.

기대하지 말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고 납득하려 억지로 이유를 만들지 마라.
그냥 자기 바라는대로 따르지 않는 당신이 미워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진실에 근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