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고양이 46

고양이 이야기 04. 이별

어느덧 꼬맹이와 만난지 4개월이 지났고, 제법 친한 사이가 됐다. 녀석의 야생성을 해치지 않으려고 먹을 것은 조금만 주었고, 녀석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도마뱀 등을 사냥해 먹으며 부족한 식사량을 보충했다. 그래도 녀석에게는, 내가 실수로 떨어뜨리는 참치캔의 내용물이 가장 맛있는 음식인듯 했다. 가끔 뒷마당에 담배 한 대 태우러 가면, 어디 있다가도 뽀르르 달려와 내 발을 툭툭 치며 야옹 거렸다. 가끔 컨디션 좋을 때는 의자에 걸터 앉은 내 등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앉기도 했다. 한편, 꼬맹이가 어느 정도 크자, 엄마 고양이는 점점 행동반경을 넓혀 갔다. 망설이며 구역을 떠나지 않던 꼬맹이도 차츰 엄마 고양이를 따라 나들이를 갔다. 나들이 시간은 날이 갈 수록 점점 길어지고, 나중에는 하루 종일 보이..

etc 2013.10.08

고양이 이야기 03. 낮잠

8층짜리 대저택에 산다. 하지만 잠을 꼭 집에서만 자라는 법은 없다. - 한국 유부남 협회 왈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자기도 하고, 젖 먹다가 잠들기도 한다. 발치에서 자다가, 엄마 궁둥이에 붙어서 자다가, 엄마 팔베개하고 나란히 자다가, 엄마 머리맡에서 자기도 한다. 때론 엄마와 같은 자세로 자기도 하고, 엄마의 쿠션이 되어 드리기도 한다. 가끔 큰 길을 막고 한가운데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자기도 한다. 인생 정말 행복했던 순간은 뭐 그리 대단했던 때가 아니다. 그냥 그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롭게 누군가와 같이 있었던 그 날 그 때. 지금 버는 돈 절반을 벌더라도 엄마 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엄마도 좋아하실 거다. 하지만 이렇게 독립해서 그닥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것도 엄마는 좋아하실 거..

etc 2013.10.04

고양이 이야기 02. 친교

원래는 이렇게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반야생인 동물이 사람과 가까와진다는 것은 그만큼 봉변을 당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연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던 때라, 무엇이 됐든 관계를 맺는게 꺼려졌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는건 길들여진다는 것. 태어난지 두 달인 이 녀석에게, 생애의 4분의 3 동안 자기 구역에 하루에도 몇 차례 들락거리면서도 자기에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나는, 그다지 위협적인 생물이 아닌 것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거기다 가끔 실수로(!) 참치캔 뚜껑을 따다 엎지른다던가, 살이 포동포동 붙은 닭튀김 조각을 흘린다던가 하는 꽤 괜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처다보기만 해도 순진한 마을 처녀가 불한당 보듯이 숨던 녀석이 무려 이정도까지 접근을 해도 그냥..

etc 2013.09.26

고양이 이야기 01. 만남

공장 설립하고 초창기 무렵, 왠 놈이 하나 찾아왔다. 없던 건물 새로 지은게 아니고, 있던 건물에 들어왔으니, 외려 찾아온건 나일 수도 있겠다. 그닥 숫기 없는 녀석인지,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알아서 먹고 살았고, 나도 설립 초기라 이래저래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이때 당시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본사는 인니의 특수성에 한국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이해할 생각이 없었고, 나는 그걸 이해, 혹은 관철시킬 만한 권위가 없었다. '한국은 이런데 인니는 왜 그래요?' 라는 멍청한 질문에 답도 못하고 '어떻게든' 한국 기준으로 맞추려 발버둥 치던 시절이다. 이젠 그런 병신같은 질문을 하면 하급자고 상급자고 아주 박살을 내는 또라이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그 때 떠올리면..

etc 2013.09.24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예전엔 개는 좋아해도 고양이는 정 없어서 싫었다. 지금은 고양이의 정 없음이 좋다. 그렇다고 개를 싫어하게 된건 아닌데, 낯선 내게도 선뜻 다가오는 개의 선량한 눈초리가 부담스럽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에게 정 붙이고, 그리워하는 개가 부담스럽다. 그래, 가볍든 무겁든, 맺어지는 인연의 무게가 부담스럽다. 지구에 소풍 와서 재미있었다 하고 훌쩍 돌아가고 싶다.

단상 2013.02.20

UI 대학 고양이들, 개, 그리고 찌짝

인니 사람들은 길거리 동물에게 관대합니다. 음... 관대하다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겠군요. 그냥 못살게 굴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일단은 더 정확하겠습니다. 그들이 왜 동물을 괴롭히지 않는지 속내를 모르니까요. 적어도 많은 한국인들처럼 가만히 있는 동물 쫓아가 겁주고 돌 던지면서 낄낄 거리는 정신이상자 같은 인간들은 없는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태국의 길거리 개들도 참 느긋한 모습이었죠. 아마도 먹을 것이 풍족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 척박했던 나라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괴롭히면서 낄낄거리는 행태 만은 이해가 안됩니다. 쫓기만 하면 될 일이지... 미친 놈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니의 고양이, 개들은 그닥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양이들이 그렇습니다. 개는 이슬람에서 부정한 짐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