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렇게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반야생인 동물이 사람과 가까와진다는 것은 그만큼 봉변을 당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연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던 때라, 무엇이 됐든 관계를 맺는게 꺼려졌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는건 길들여진다는 것.
태어난지 두 달인 이 녀석에게, 생애의 4분의 3 동안 자기 구역에 하루에도 몇 차례 들락거리면서도 자기에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나는, 그다지 위협적인 생물이 아닌 것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거기다 가끔 실수로(!) 참치캔 뚜껑을 따다 엎지른다던가, 살이 포동포동 붙은 닭튀김 조각을 흘린다던가 하는 꽤 괜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처다보기만 해도 순진한 마을 처녀가 불한당 보듯이 숨던 녀석이 무려 이정도까지 접근을 해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본다.
친해지다 보니, 내 탈 것 갖고 놀다가 나한테 뒤지게 혼나기도 한다.
괜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저런 생쑈를 하면서 젓을 먹는게 아니다.
아직 두 달 밖에 안됐는데 어미가 이제 젓을 슬슬 떼려는지, 정면으로 들어가면 발로 한 대씩 맞기 때문이다.
역시 애덜 독립심 키우는데는 용돈 끊고 굶기는게 최곤가 보다.
언젠가는 집 떠났던 대범한 수컷이 왔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빠라는걸 느낀 꼬맹이는 대범이의 영역 순찰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깝족거리다...
제대로 한 대 후드려 맞고 도망친다.
수컷에게는 부성애라는게 없다.
자식도 결국 경쟁자일 뿐이다.
그래도 다시 쫄래쫄래 다가가 아빠가 쓰레기통을 검색하는 늠름한 모습을 훔쳐본다.
그래도 다시 패진 않는거 보니, 깝족거리지만 않으면 그냥 내비둘 정도의 부성애는 있나 보다.
그렇게 무정한 대범이는 처자식을 버리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