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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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04. 이별

명랑쾌활 2013. 10. 8. 08:08

 

어느덧 꼬맹이와 만난지 4개월이 지났고, 제법 친한 사이가 됐다.

녀석의 야생성을 해치지 않으려고 먹을 것은 조금만 주었고, 녀석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도마뱀 등을 사냥해 먹으며 부족한 식사량을 보충했다.

그래도 녀석에게는, 내가 실수로 떨어뜨리는 참치캔의 내용물이 가장 맛있는 음식인듯 했다.

가끔 뒷마당에 담배 한 대 태우러 가면, 어디 있다가도 뽀르르 달려와 내 발을 툭툭 치며 야옹 거렸다.

가끔 컨디션 좋을 때는 의자에 걸터 앉은 내 등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앉기도 했다.

 

한편, 꼬맹이가 어느 정도 크자, 엄마 고양이는 점점 행동반경을 넓혀 갔다.

망설이며 구역을 떠나지 않던 꼬맹이도 차츰 엄마 고양이를 따라 나들이를 갔다.

나들이 시간은 날이 갈 수록 점점 길어지고, 나중에는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다음 날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엄마 고양이와 꼬맹이는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가 내 곁에 있어야만 행복이 성립되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대책 없는 소유욕과 자기 기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연애의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런 집착과 대책 없음에 화려하게 걷어 차이며 연애는 끝났지만 말이다.

요즘엔 이 정도 말할 정도는 된거 같다.

"딱히 내 곁에 없어도 니가 행복하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도 좋아."

참 멋진 말 같지만,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욕심과 의지가 없으니,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그닥 마음이 없다.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을 만나도, 이미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에 내 곁에 있다고 딱히 더 행복할게 없을거 같아, 그냥 지나칠 것 같다.

내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듯한 상대도, 그 도움들이 그에게 족쇄가 되어 불행해질까 확신이 없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어줍잖은 오만인지 깨달은 지금의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육체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그 때의 나 자신보다 월등히 괜찮은 사람이 된 지금의 나는, 오히려 연애와 멀어졌다.

당시 그 사람이 바랬던 모습에 모든 면이 거의 충족됐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이런 나와는 연애를 하지 않을거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는게 참 덧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뭔 연애를 하겠는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걸 잘 알지만, 그래도 그 고양이 모녀가 나보다 더 자주 실수로 참치캔을 뒤엎고, 더 자주 닭튀김 조각을 떨어뜨리는 누군가를 만나 거기에 눌러 앉았기를 바란다.

"그 사람과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