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28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3. 여직원의 퇴사

내가 입사할 당시, 한국인 여직원이 있었다.작년에 고문이 내 입사를 반대를 하면서, 그 대체로 케빈을 보조하라고 뽑은 신입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땐 이미 근무 5개월 차였는데도 업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교육을 해도 진척이 너무 느려요. 회사 생활에 대한 기본도 안되어 있고요. 가르쳐보긴 했는데, 도저히 업무를 맡길 수준이 안돼서 그냥 생산 쪽에 굴리고 있어요. 어째야 할지 몰라서 방치 상태죠 뭐."영업부 소속이니 전 관리부장은 터치를 안하고 있었고, 가르쳐야 할 케빈은 손을 놓은 상황이었다.케빈은 한국인 여직원의 교육도 내게 부탁했다. 며칠 지켜본 결과, 케빈도 문제가 있었다.케빈은 상대를 본인 기준으로 재단하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내게는 깍듯했기 때문에 몰랐던 면이었다. 위..

소오~설 2024.10.24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2. 새 직장

그 해 말, 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됐다.귀국하기 전 선배형과 송별식 겸 해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 케빈도 왔다. 첫 만남에서 6개월이 지났지만, 케빈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선배형에게 생활비로 야금야금 빌려간 돈이 1만 달러가 넘었고, 여자친구 집안에서는 능력없는 외국인과는 헤어지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케빈은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며 조언을 구했다.하나는 한국의 중견 업체로부터 투자를 받아 인니에 사무실을 내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원래 일했던 분야의 다른 업체에 입사하는 거였다.투자 좋지. 개척도 좋고. 업체 대표 명함 폼나고. 성공하면 큰 돈 만질 수 있겠네.근데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어서 선배형에게 돈 빌려서 생활하는 처지에, 어느 세월..

소오~설 2024.10.17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1. 만남

케빈을 처음 만났던 건 10년 전, 리뽀 찌까랑의 한 이자까야에서였다.평소 아주 가깝게 지내는 선배형과 둘이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자리였는데, 선배형이 케빈을 데려왔다.똑똑한 친구인데 일이 잘 안풀려서 좀 어렵게 지내고 있다며, 서로 알아두면 도움이 될까 해서 불렀다고 했다.선배형은 성격이 까칠했고, 명석하지 못하거나 셩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사적으로 벽을 세우는 사람이다. 나와는 마음이 맞아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시간 맞으면 두세 번일 정도로 자주 만났지만, 모르는 사람을 소개시킨다고 데려온 적은 처음이었다.꽤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캐빈과 인사를 나눴다. 케빈은 친화력이 매우 뛰어났다. 나보다 세 살 밑이었는데,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말을 놓지 않는 내가 처음 만난 그 날 호형호..

소오~설 2024.10.13

어느 인력 교육업체의 취업율 100% 비결

회사에서 신입을 뽑기로 했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사장이 책정한 급여 수준이 워낙 박해서 적당한 사람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인원 충원이 자꾸 미뤄지자 사장은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해외 취업 인력 교육 알선 업체에게 채욜을 의뢰하라 지시했다. 인사 담당인 나는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우리가 원하는 급여 수준으로는 인력을 소개시켜주기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 월급으로 사람 뽑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엿이나 드십시오.'라는 뜻이고, 내게 아주 정중하게 엿을 먹였다는 얘기다.) 사장에게 '그쪽 기준으로는 연봉이 최소 00달러 이상은 되어야 소개시켜 준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우리 회사 월급이 그렇게 짜다는 얘기야, 사장놈아'라는 뜻이다.) 사장은, "그래? 하긴 그 정도는 줘..

소오~설 2023.12.27

[그 회사 이야기] 4. 후일담

퇴사 후 간간히 그 회사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굳이 알아본 건 아니다. 한인 사회는 좁다. 내 대체로 들어온 현지 채용은 사내 현지인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문제가 되어 1년도 안되어 해고됐다. 공장은 꽤 먼 곳으로 다시 이전했다. 땅값과 인건비가 엄청 싼 대신 엄청 시골인 지역이다. 회사에 순종적이던 간부 직원 일부를 선별하여 급여 인상과 주거비 지원을 조건으로 새 공장에 데려갔다고 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너 매제가 방법을 알려줬을 거다. 원래 공장은 들어간 돈의 두 배 차익을 남기고 매각됐다. 그 이익은 회사 매출로 인한 이익금이 아니라, 오너의 투자 수익이다. 매년 납품 단가를 후려쳐서 힘들지 않은 적이 없다는데도 왜 모두들 대기업 하청을 하..

소오~설 2023.12.20

[그 회사 이야기] 3. 처세의 달인, 그 부장

사택 제공이 입사 조건 중 하나였지만, 일 시작한 두 달 간은 임시로 남의 회사 기숙사에 얹혀 살았다. 전무가 한국에서 발령 온 후에야 그 기숙사를 나와 주택에서 살게 됐지만, 전무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전무 가족이 따로 나올 때까지 임시로. 전무는 직장 상사인 자신을 아버지처럼 여기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부하직원을 머슴처럼 대했다. 오너는 아직은 시험 운영 기간이니 일단 그대로 지내고, 공장 새로 짓기로 결정하면 그 때 사택을 따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입사 1년 후, 회사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처음 공장 건축 설계도에는 없던 기숙사가 수정된 설계도엔 들어가 있었다. 오너 매제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다. 그는 '직원들 퇴근해봐야 헛짓거리나 하고, 출퇴근 오고가는 게 시간낭비 돈낭비이며, 평일 일..

소오~설 2023.12.13

[그 회사 이야기] 2. 든든한 한국인 뒷배를 둔 그 현지인 총무

법인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법인장이지만, 외국 법인의 외국인 법인장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인니에서는 외국 법인이더라도 인사 총무는 반드시 자국민이 맡아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고, 외국 법인에 대해 모든 현지인들은 그 현지인 총무를 실질적인 대표자로 간주한다. 관공서 공무원, 회사 주변 주민, 하청 현지 업체, 사내 직원 등 모든 현지인은 총무를 상대한다. 법인장은 회사의 최종 사인을 하는, 즉 뭔 일 터졌을 때 책임지는 사람일 뿐이다. 그 회사 총무는 오너 매제가 박아넣은 사람이었다. 오너 매제 회사 경리장의 남편으로 이전엔 카센터 사무실에서 일했다고 한다. 관련 경력이 없으니 총무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문제는 나도 초짜였다는 것이다. 좆도 모르는데 존심만 센 놈 둘이 붙어 있으니 늘..

소오~설 2023.12.06

[그 회사 이야기] 1. 가족이 위계 조직이라던 그 전무

입사 당시 그 회사는 한국에 본사와 공장이 있었고, 이제 막 인니에 법인 설립을 진행 중이었다. 회사 오너의 매제가 인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권유에 따라 인니에 생산 공장을 지으려는 상황이었다. 현지 사전 준비는 오너 매제가, 본사에서는 원청 대기업에서 낙하산으로 들어온 상무가 컨트롤했다. 입사하고 나서 초기에 한국 본사의 상무에게서 가장 자주 닥달을 받았던 건 '수입 허가가 언제 되느냐'였다. 설립 허가 프로세스를 시작한 3개월 정도 경과한 시점이었다. 인니 관청 행정 업무가 한국에 비해 얼마나 엉망인지, 언제까지 되는지는 아무도 특정할 수 없고 특정해주지도 않는다는 걸 아무리 설명해도 상무는 이해를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언제 되는지도 알 수 없다니, 그런 ..

소오~설 2023.11.29

그 두 사람 이야기의 끝

https://choon666.tistory.com/966 에서 4년의 터울을 건너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선배형이 갑작스럽게 귀국했다. 이미 귀국하고 나서 연락을 해와서 알게 된 거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2022년 12월 6일일 거다. 기력이 없긴 했지만, 덤덤한 말투로 사업 마무리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인니에서 평생 살기를 바랐다. 뒤늦게 발견된 대장암 말기, 다니던 회사에서 한국 본사로 발령내주고 치료도 지원한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달에 한 번 한국을 왕복하면서까지 인니에 있으려 했다. 6차까지 받으며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간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더 지체하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서둘러 떠났다고..

소오~설 2023.11.24

당신이 없어도 세상엔 별일 없더라

2018년 4월 어느 날, 리까가 죽었다. 서른 한 살인가, 서른 두 살인가. 외동딸이었고, 양친은 10여년 전에 교통 사고로 떠났다. 자식을 갖기를 두려워했다. 자신처럼 혼자 남게 될까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가끔 말했던대로,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리까 죽었다, 사흘 전에." 선배형과 둘이 저녁 먹던 자리였다. 술을 마시려 잔을 드는 내게 그가 툭하니 말을 뱉었다. 마치 누가 감기라도 걸렸다는듯. 그녀 나이를 대충 기억할 정도였으니, 그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순간엔 너무 마음 아프지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요?" 고작 이렇게 대답하고, 멈칫했던 술잔을 털어넣었다. 선배형이나 나나 30분쯤 별말 없이 간간히 안주..

소오~설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