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26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11. 각서로 돌려막기의 장인

케빈이 퇴사할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은 즉시 케빈과 관련된 대금 미수금 건들을 조사했다.케빈 입사 후 1년 간 발생한 미수금 건들을 연말 회계 마감 때문에 완결 지으라 지시한지 2년이 다 되도록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어져 왔고, 오히려 그 후 몇 건이 더 추가된 상황이었다.사장은 그 동안 케빈의 보고만 믿고 기다렸던 건들을 직접 거래처에 확인했다.사장은 참담한 얼굴로 그 결과물을 내게 보여줬다. 가장 눈에 띈 건, 케빈의 자필 변제 각서 복사본이었다.글로벌 업체 납품 위탁 생산을 했던 업체의 회사 공식 용지(레터지)에는 만난 장소, 시간, 참석자가 명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항목별로 변제 이유와 금액, 변제 약속 기한이 케빈의 자필로 적혀 있었다.항목 중에는 '케빈의 잘못'이라고 분명히 명시된..

소오~설 2024.12.15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10. 뱀의 심장

나는 사장과 면담 자리에서, 케빈을 사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장 역시 기다렸다는듯, 그렇다면 확인을 좀 하고 싶은게 있다고 화답했다.내가 케빈이 추천해서 입사한 사람이다보니 그동안 묻기 꺼려졌던 모양이었다. 사장은 라이언이 도대체 누구인지 아냐고 물었다.공장장이 직통으로 오더를 주고 받았다니, 누구인지 궁금할 게 당연했다.케빈의 전 직장 출신이라고 말했다.사장은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덧붙여, 케빈이 내년 초 쯤에 사직할 생각인 것 같다고 말헀다. 다음 날, 고문에게도 사장에게 말한 내용들을 밝혔다. 아울러 사직 의사도 밝혔다.나 추천한 사람 모함해서 살 길을 도모하는 모양새로 비쳐지고 싶지 않으니, 사직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고문..

소오~설 2024.12.12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9. 그럼 나도 참을 이유가 없지

그대로 뒀으면 진실은 묻히고 끝날 이야기가 범인의 설레발로 인해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일은 꼭 영화의 과장만은 아니다.물론 범인도 그런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다.  직원 파업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난 이후의 첫 주간회의였다.여러모로 어수선한 시점이라 사장은 특이사항이 없다면 보고서를 서면 제출하고 회의를 끝내자고 했다.케빈은 굳이 반드시 보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며, 반쯤 일어난 사람들을 다시 앉게 했다.케빈은 최근 발생한 로컬 신규 오더 품질 불량 건을 지적하며, 이 건 때문에 로컬 시장 쪽에 회사 이름이 안좋게 퍼져 자신이 진행하는 신규 오더는 커녕 받은 오더도 취소 당하고 있다고 했다.'내가 영업 실적 낮은 건 니들 본사 잘못이야' 라고 맥이는 거다. 사장 면..

소오~설 2024.12.08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8. 협정 파기

지사는 골칫덩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글로벌 업체와 연계했던 사업은 품질 기준을 확 낮춘 제품을 떠넘기듯 납품한 이후로 틀어졌고, 대금 문제로 위탁 생산 업체와 분쟁 중이었다.신규 오더도 장담했던 것처럼 늘지 않았다. 케빈은 오더를 따와도 본사 생산이 대응을 제대로 못한 탓에 떨어져 나갔다고 했지만, 샘플 단계에서 통과를 못하고 틀어지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새로운 매출을 일으켜 1년 내에 임대료, 관리비 지출을 자급하고 이익 구조로 돌아서겠다는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고, 본사는 계속 자금 지원을 해야 했다. 케빈은 새로 들여온 설비에 맞는 최소 10만 달러 단위의 큰 오더를 이제 곧 따오네 마네 하며 버텼다.지사 직원들의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출근해도 할 일이 없어서 멍하니 있는 일이 잦았고, 사기는 밑바닥..

소오~설 2024.11.27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7. 파탄

전 직장 총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와 가장 오래 교류해온, 가장 신뢰하는 현지인이다.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에 오더를 연결하고 싶다고 했다.영업은 내 소관이 아니었고, 총무는 내 개인적 인연이다. 오해 받을 조금의 빌미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일단 사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했고, 전 직장 총무에게 케빈을 소개했다.둘이 있는 자리에서 비즈니스로만 상대하고, 내 친분 때문에 양보할 필요 없다고 했다.그 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전 직장 총무가 가져온 오더는 재활용 원료를 섞어서 만드는 신규 제품이었다. 재활용 원료는 공장에서 폐기물 처리하고 뒤로 풀리기 때문에 수급이 들쑥날쑥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취급한 적 없었다.케빈은 오더 규모가 매우 커질 수 있다며 진행을 건의했고, 재활용 원료 ..

소오~설 2024.11.21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6. 맹신 - 눈먼 믿음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다

지사를 오픈할 수 있었던 명분이었던 글로벌 업체로의 시험 납품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위탁 생산 업체의 생산 결과물 중 품질 기준을 통과할 만한 제품의 수량이 너무 부족했다. 초도 생산임을 감안해서 목표 수량의 3배를 생산했음에도 그랬다.추가 생산은 할 수는 없었다. 납품 기한이 촉박한데다 위탁 업체 측도 이미 부담이 컸다.케빈은 해결책으로 이미 탈락한 제품들을 품질 기준을 낮춰 재검사해서 물량을 채워 넣는 방법을 택했다.한달 간 누적된 탈락 제품을 1주일 내에 전량 재검사하는 작업이었다. 가뜩이나 연말 휴가까지 겹쳐 검사원 3분의 1만 특근에 동의했다. 나까지 달라 붙어야 했다.12월31일에 케빈과 나, 단 둘이서 회사에 남아 철야 작업까지 했지만, 수량을 맞출 수 없었다.나는 며칠간 본사로 출근했다. ..

소오~설 2024.11.14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5. 드러나기 시작한 본색

인니 사람들은 추문을 좋아한다. 한국도 안 그런 건 아니지만 인니는 유독 심하고 노골적이다.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인건비와 땅값 싼 곳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깡시골에 공장을 세우기 마련인데, 한국도 그렇듯 인니 역시 시골 뒷소문이 더욱 극성스럽다.한국인 직원과 미혼인 현지인 경리가 읍내의 큰 상점에서 회사 비품을 구입하는 모습이 눈에 어쩌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 날 안에 마을과 인접 마을 일대까지 추문이 퍼져서, 다음날에는 공장에 역수입되는 경우는 일은 대단할 것도 없다.대단한 건, 어째서 읍내에서 둘이 같이 갔었는지 아는 직원들조차 그 추문에 편승해서 같이 씹고 뜯고 즐긴다는 점이다.한국은 그래도 뒤에서 수근거리는 행위가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정도의 선은 있다. 하지만 인니인들에게는 그런 윤리도 희박..

소오~설 2024.11.08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4. 지사 오픈

회사에 산적한 문제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갔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잘해서가 아니라, 이전에 워낙 개판이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영업 부서는 소소한 시스템 개선만 진척됐을 뿐, 근본적 문제의 개선은 벽에 부딪혔다.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인 영업부 최고참 현지인 직원 야니에 대한 조치 만큼은 사장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사장은 야니에 대한 신뢰가 비정상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굳건했다. 야니와 공장장이 업무상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심각한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자, 사장이 공장장을 해고했던 적도 있었다. 10여년을 근무해온 사람이었다.이후로 야니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생산 현장 상황을 무시하고 자기가 컨트롤하는 오더 위주로 생산 지시를 내렸다. 생산 부서 직원들은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언젠가 사장..

소오~설 2024.10.31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3. 여직원의 퇴사

내가 입사할 당시, 한국인 여직원이 있었다.작년에 고문이 내 입사를 반대를 하면서, 그 대체로 케빈을 보조하라고 뽑은 신입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땐 이미 근무 5개월 차였는데도 업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교육을 해도 진척이 너무 느려요. 회사 생활에 대한 기본도 안되어 있고요. 가르쳐보긴 했는데, 도저히 업무를 맡길 수준이 안돼서 그냥 생산 쪽에 굴리고 있어요. 어째야 할지 몰라서 방치 상태죠 뭐."영업부 소속이니 전 관리부장은 터치를 안하고 있었고, 가르쳐야 할 케빈은 손을 놓은 상황이었다.케빈은 한국인 여직원의 교육도 내게 부탁했다. 며칠 지켜본 결과, 케빈도 문제가 있었다.케빈은 상대를 본인 기준으로 재단하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내게는 깍듯했기 때문에 몰랐던 면이었다. 위..

소오~설 2024.10.24

[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2. 새 직장

그 해 말, 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됐다.귀국하기 전 선배형과 송별식 겸 해서 저녁을 먹는 자리에 케빈도 왔다. 첫 만남에서 6개월이 지났지만, 케빈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선배형에게 생활비로 야금야금 빌려간 돈이 1만 달러가 넘었고, 여자친구 집안에서는 능력없는 외국인과는 헤어지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케빈은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며 조언을 구했다.하나는 한국의 중견 업체로부터 투자를 받아 인니에 사무실을 내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원래 일했던 분야의 다른 업체에 입사하는 거였다.투자 좋지. 개척도 좋고. 업체 대표 명함 폼나고. 성공하면 큰 돈 만질 수 있겠네.근데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어서 선배형에게 돈 빌려서 생활하는 처지에, 어느 세월..

소오~설 20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