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당신이 없어도 세상엔 별일 없더라

명랑쾌활 2022. 12. 31. 16:09

2018년 4월 어느 날, 리까가 죽었다.

서른 한 살인가, 서른 두 살인가.

외동딸이었고, 양친은 10여년 전에 교통 사고로 떠났다.

자식을 갖기를 두려워했다. 자신처럼 혼자 남게 될까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가끔 말했던대로,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리까 죽었다, 사흘 전에."

선배형과 둘이 저녁 먹던 자리였다. 술을 마시려 잔을 드는 내게 그가 툭하니 말을 뱉었다. 마치 누가 감기라도 걸렸다는듯.

그녀 나이를 대충 기억할 정도였으니, 그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순간엔 너무 마음 아프지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요?"

고작 이렇게 대답하고, 멈칫했던 술잔을 털어넣었다.

선배형이나 나나 30분쯤 별말 없이 간간히 안주를 집어 먹으며 술을 마셨다.

 

그녀는 난치병이 있었고, 인니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서 싱가폴에 치료하러 몇 차례 다녀왔었다.

이번 치료도 별 일 없겠거니, 변변한 이별도 없이 싱가폴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 거다.

그녀와 몇 년을 사귀었고, 생애 마지막 시기에 가장 각별한 사이였던 그.

그녀가 세상에 유일하게 바랐던 일은 그와 결혼하는 거였고, 그도 그럴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그 하나를 이루지 못한 그녀와 그 하나를 이뤄주지 못한 그,

그에 어울리는 애달픈 작별 의식이나 유언도 없이, 허무하게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아마 선배형의 애써 덤덤한 말투 때문이었을 거다.

이런 식으로 속절없이 올 줄은 몰랐잖을 거잖아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술집 안 사람들이 흘끔거려도 멈추질 않았다.

물수건으로 눈을 꾹 누르고 꽤 한참을 있었다.

 

 

그날 술자리 이후로, 그나 나나 그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올만 하면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죽었지만, 내 하루하루는 그냥 계속 된다. 그의 하루하루도 그냥 그랬고.

가끔 문득 그녀가 떠오르면, 인생의 속절없음과 세상의 무심함에 괜히 마음이 먹먹해지곤 했다.

세상은 정말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서.

하긴, 떠난 사람들에게도 세상 따위는 이제 별 상관 없는 일이긴 하다.

 

사진도 찍히기 싫어해서 - 아마 사진으로 세상에 남는 것조차 싫어한 게 아닐까 싶다 - 유일하게 갖고 있는 한 장을 올려 본다.

아마 내가 본 그녀 모습 중 가장 즐거워했던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가 안다면 그딴 거 뭐하러 갖고 있냐고, 지워버리라 하겠지.

 

그녀에겐 이미 별 상관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도 별 상관 없고.

그래도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녀의, 작은 흔적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 사람이 나 밖에 없기도 하고... 그래서 썼다.

이 글을 공개할지는 모르겠다. 선배형이 있고, 그의 가족이 있으니.

공개하더라도 아주 한참 후가 되겠지.

 

        - 20018년 5월 3일 새벽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