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여행을 떠날 짬이 생겼다.
한 달 이상을 계획했기 때문에 태평한 이 두 녀석들을 펫숍에 맡기는 건 좀 가혹했다.
여자친구 집에 맡기기로 했다.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였다.
낮에는 모두 일하러 가서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두 녀석들은 우리 안에 있어야 했다.
그동안 깜이가 시도때도 없이 양이를 덮쳤다.
심지어 양이가 화장실에 배변을 하려고 할 때도 덮치는 짐승 같은 짓을 (아, 짐승이 맞구나), 아니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따로 격리를 할 만도 한데, 여자친구의 식구들은 그냥 새끼를 갖게 되겠구나 하고 심상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문제는 깜이의 이상행동은 집 근처 다른 길고양이의 발정기에 반응해서 발정기가 아닌 양이를 덮쳤다는 점이다.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
깜이는 양이에게 수시로 들이댔는데, 예전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난폭해졌다.
목덜미를 너무 심하게 물어 늘어져서 피가 날 정도라 양이가 히스테릭한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여자친구 집에서 돌아온 이후로, 양이는 절대 고양이 모래에 배변을 하지 않게 됐다.
집안 구석 잘 안보이는 곳에 몰래 똥오줌을 눴다.
차라리 펫숍에 맡겼어야 했다.
'가정=따듯함'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쉬운데, 소홀한 가정은 전문적인 업체 보다 훨씬 안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
회사로부터 고용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가 왔다.
근무처 때문에 이사 온 집이다. 더이상 이 곳에 살 이유가 없다.
집 계약 기간은 아직 3개월 정도 남았지만, 별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 회사와 얽힌 모든 것이 악연이었다.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 살았던 집은 이미 다른 입주자가 살고 있었다.
같은 주택단지 내 다른 집을 알아 봤다.
운 좋게 괜찮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이사를 진행했다.
이사 당일, 젖소와 비슷한 무늬의 동네 고양이가 젖소가 떠났던 자리에 앉아 배웅한다.
다른 고양이들도 와서 배웅한다.
9개월 남짓 살았다.
올 때 가져 왔던 것들 전부 가지고 간다.
젖소만 빼고.
이 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젖소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