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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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목 모임 깨졌던 이야기

명랑쾌활 2024. 6. 21. 07:51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친구들과 종종 모여 농구를 했다.

농구 게임이 끝나면 돈을 걷어 호프집이나 식당에서 식사겸 반주겸 하고 헤어졌다.

어느 날인가 의기투합이 되어, 친목 모임을 결성했다.

일곱 명이라서 이름은 칠붕(七朋). 참 촌스런 이름이었다.

'일곱 친구'라는 모임이지만 다 서로 친한 것도 아니었다.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 없어서 농구 말고는 공통점 없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학교가 다른 친구도 있었다.

중심 매개가 되는 한 명을 중심으로 중학교 때 친했던 사이 세 명과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친했던 세 명이 합친 모임이었다.

초대 회장은 당연히 중심 매개가 됐던 철부지가 추대됐고, 총무는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직장인이 맡았다.

매월 한 번 모이고, 회비를 내고, 식사하고 남은 회비는 적립, 불참시 벌금, 적립된 회비는 경조사에 보태기로 하는 등 회칙도 정했다.

 

초기엔 조금씩이라도 회비가 모인다 싶었다.

하지만, 동창이지만 나랑 별로 친하지 않은 얌생이의 부친이 재혼을 하게 되어 모인 회비 털리고 사비까지 보태야 했다.

다시 좀 모이려 하니 이번엔 초대 회장인 철부지놈이 1주년 기념으로 실내 체육관 빌리고 몇 팀 초대하잖다.

돈이 넘치는 것도 아닌데, 뭔 고작 동네 농구 동호회 1주년 기념 행사?

반대했지만 다수결로 밀어 붙였다. 10만원씩 추가로 각출하고, 총무인 직장인이 30만원 추가로 냈다. 물론 돌려줘야 할 돈이다.

1주년 기념 행사는 허접해서 잘 기억도 안난다.

모임 1년 만에 회비는 마이너스가 됐다.

 

다시 시간이 흘러 적립 회비가 겨우 플러스 되려는데 얌생이가 결혼을 했다.

적립 회비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소액이라 다시 각출을 해야 했다.

회칙 상 부조금은 순금 10돈 가격이었다.

얌생이는 참 살뜰하게 모임 회비며 도움을 챙겨 먹었지만, 정작 농구 모임에는 이런저런 일 핑계로 참석이 드물었던 녀석이라 아까웠다.

 

모임 결성한지 2년이 지나, 총무였던 직장인이 회장이 되고, 내가 총무가 됐다.

돈 안모으면 모임 깨지기 쉽다며, 뭐 하지 말라고 초치는 일이 잦으니 니가 한 번 해봐라 맡긴 모양이었다.

돈 꽉 쥐고 모아가는데, 이제 슬슬 애들이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얌생이는 결혼했으니 뜸해졌고, 나머지도 하나 둘 자기 일 바쁘기 시작할 때였다.

저조한 모임 참석율도 문제였지만, 회비와 불참 벌금도 내지 않기 시작한 게 더 심각했다.

모임일 마다 일일이 연락해서 회비 독촉을 했다.

처음 한두 달은 미안하다는 소리라도 하던 친구들은 전호도 피하기 시작했다.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내 돈 받자고 이러는 건가. 나도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모임은 3년차에 와해 조짐이 시작됐다.

 

모임 3년차 봄, 이번엔 소심이가 결혼했다.

적립 회비는 당연히 부족했고, 각출해야 했다.

소심이는 친하기는 커녕 아예 다른 학교 출신이다. 철부지와 얌생이의 중학교 동창이었고, 철부지가 밀어붙여 모임 멤버가 됐다.

소심이는 우리 말고 다른 쪽으로는 인맥이 없어서, 신혼차량이나 부조금 접수, 식권, 웨딩카 등등 잡일은 모임 멤버들이 해야 했다.

신혼 여행을 다녀온 소심이는 모임 멤버들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모임 와해의 결정타는 이 집들이였다.

일정을 받았고, 멤버들끼리 차량 두 대 준비해서, 몇 시에 어디서 모여 어떻게 간다 약속 다 정했다.

그런데 당일 아침, 초대 회장 철부지가 집들이 취소됐다고 전했왔다.

그런갑다 하고 모두 안갔다.

저녁이 되자 소심이 쪽이 왜 안오냐고 난리가 났다.

하루종일 음식 준비하고, 신혼집에서 가까운 친정에서도 음식 돕고, 아주 떡 벌어지게 차렸는데, 아무도 안왔다는 거다.

이 일로 소심이는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게 됐다. 부인이 모임이라면 치를 떤다고 했다.

소심이 부인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화낼 일 맞다. 그게 팔 걷어 부치고 결혼식 도운 사람들이 상종도 못할 인간들로 평가가 바뀔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았다는 부채감을 털어버릴 핑계로는 꽤 유용하긴 하겠다)

철부지가 도대체 왜 집들이 취소됐다고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

훗날 몇 번 물어 봤지만, 그 때마다 '내가 그랬던가?'하는 의미없는 대답만 했다. 자기가 한 일을 남 얘기처럼 얼버무리긴 하지만, 그래도 자긴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지는 않을 정도의 양심은 있는 녀석이다.

 

우습게도, 사건의 원흉인 철부지, 얌생이와 나머지 한 명은 시간이 지나서 소심이 부인과 감정 풀었다고 한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 관계다.

원래 그렇게 네 명이 친했으니, 오해가 있어도 쌓인 우정으로 풀 수 있었을 거다.

별로 안친했던 나와 나머지 두 명만 병신이 됐다.

친하지도 않은데 부조는 부조대로 하고, 결혼식장 가서 뭣빠지게 돕고, 웨딩카 꾸며주고, 집들이 한다길레 시간 빼고 다 준비했던 건데, 죽일 놈들 된 거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몇 달 쯤 지나 모임은 끝났다. 적립 회비 남은 것도 없어서, 해단식이니 뭐니 모이지도 않고 흐지부지, 그야말로 초라하게 끝났다.

철부지를 제외한 저쪽 세 명과는 서로 연락이 끊어졌다. 딱히 미운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모임 때문에 억지로 연락하는 것에서 해방된 거다.

연락 끊고 나니 섭섭한 점 한 톨 없이 아주 시원했다. 아마 그녀석들도 그렇게 느꼈을 거다.

우정을 쌓는 시기가 안맞은 사람들이 만남을 가져봐야 소용 없다는 걸, 애초에 모임을 할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철부지 새끼, 직장인, 나머지 한 명은 그 후로도 종종 모여 농구를 했다.

1달에 1번 출석일 따위 정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었다. 모임이라는 걸 만들기 전엔 원래 이러고 놀았었다.

저쪽 멤버들은 그 후로 한두 번인가 오긴 했지만, 당연히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 반갑다. 잘 지냈냐?"하는 텅빈 안부인사하고, 술자리 같이 하게 되면 그냥 그저 그런 얘기 나눴고.

집들이 사건이 있었던 소심이가 '너희들이 큰 잘못을 해서 아직도 아내 눈치를 본다'며 넋두리하는 식으로 앙금을 비쳤던 게 기억에 남는다. 왜 그리 친구가 없는지 알만 했다.

그렇게 다시 2년 지나고는 그쪽 친구들과는 소식이 아예 끊겼다. (이쪽(?) 친구들과는 여전히 친구다.)

준 건 있어도 빚진 게 없으니 마음에 걸릴 것도 없고,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다.

잘 살고 있다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딱히 아무렇지 않다.

 

친해질 사람은 노력 안해도 친해지고, 아닌 사람은 모임을 만들든 어떠든 노력해도 소용없다.

원래 섞일 부류가 아니라면 무리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 땐 나도 마음은 이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