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161

게으른 게 아니라 철이 없는 거겠지

한인 식당이 새로 오픈했다. 사장이 젊다. 많아도 서른 초반이다. 주방 담당하시는 분은 모친인듯 하다. 전화로 주문했다. 사장이 받았다. 응대 친절하다. 그런데, 카톡이나 WA로 주문 달라고 한다. * WA : What's App 인니에서 가장 보편적인 메신저 앱 아마 한국인 사장이 전화를 받다 보니, 주소 받아 적는 게 힘든가 보다. 그래도 일단 전화 받았으니 이번은 그냥 주문 받을 만도 한데... 전화 끊고 카톡 찾아봤는데 없다. WA엔 식당 상호명으로 목록이 떠있다. 주문했다. 알았다는 답장 2분을 기다렸는데,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다시 전화했더니 확인해보겠다고 한다. 잠시 후 사장으로부터 주문 확인했다는 WA 답장이 왔다. 나는 메신저 주문은 내 주문을 확인했는지 즉각 피드백이 안되어 불편한..

인니의 연합 노조 = 비즈니스

인니의 연합 노조는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과 같은 비장함이나 자기 희생, 정의감 따위는 없습니다. 모든 건 철저한 비즈니스입니다. 회사와의 분쟁 해결에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자가 찾아 오면, 어서옵쇼~ 열성적으로 고객맞이를 합니다. 세미나실을 제공하고 교육을 제공한다거나 단합대회도 지원하며, 고객 유치에 공을 들입니다. 금속조노, 섬유노조 등등 분야는 따로 있지만, 자기들 산업 분야와 아예 상관 없는 업종의 가입도 받아줍니다. 그렇게 해서 회원으로 받게 되면, 조합원 회비를 짜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입원들에게 다른 미가입 직직 동료들이 가입하도록 포섭하기를 독려합니다. 이를 위해 포섭 요령도 가르쳐 줍니다. 근무시간에 노조 가입을 권하면 징계나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으니, 화장실에서 하라던가 하는 식이..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평범한 악인들

원래 나쁜 사람이어서 나쁜 짓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나쁜 짓은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다. 그래도 되니까. 만만하니까. 약속 시간 자기 편한대로 정하고, 자기 편한대로 변경하고, 잘 안지키는 사람이 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면 직장 사장이나 대통령이라도 잘 안지킬 거다. 그래도 될 만만한 사람에게만 그러는 거다. 벌금 낼 게 100% 확실한데도 직원 착취하는 사람 없다. 현지인 무시하고 깔보는 한국인 적지 않지만, 현지 경찰이나 공무원에게도 건방지게 구는 사람 못봤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 그래도 될 만만한 사람에게 그러는 거다. 인니 한국 회사들이 현지인 착취하고, 노동법 안지킨다고 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입사한지 1, 2년 사이에 돌변해서 현지인 직원들 수준이 낮다느니, 마인드가 글렀다느니 내려..

인니의 크리스마스 2021

2021년 크리스마스, 주택단지에 산타가 방문했다. 말 머리에 사슴뿔 장식이 빠진 게 좀 아쉽지만, 말도 취향이 있을테니... 교회에서 교민 집집마다 방문해서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하나 보다. 내가 사는 주택단지엔 외국인 거주 비율도 높고, 기독교인도 많이 살아서 상당히 열린 분위기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이런 행사하기 쉽지 않다. 종교로 텃세 부리는 걸 신앙심의 신실함을 보이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라 그렇다. 주택 관리 업체의 차량도 뒤따르고, 경비원도 동행하는 이유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다. 허가 받고 하냐고 시비 붙을 것도 방지하고.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쿨하게 떠나는 산타에게서 이 시대의 참 리더 상이 보인다. 부하들(?)은 다 반팔인데 혼자서만 땡볕에 고생하고 있다. 아닌가? 산타가..

비교하지 않으면 다를 것도 없다

"인니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다를 거 없다." 인니살이 초기, 10여 년 이상 산 한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고, 이젠 나도 그리 생각한다. 솔직히, 똑같을 리 있겠나. 문화, 기후, 환경, 역사가 다른데. 그럼에도, 인니에 계속 살다 보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느끼는 시기가 오긴 온다. 뭐 대단한 경험이나 깨달음 덕이 아니다. 자신이 아는 한국은 이제 너무 옛날이고, 무의식적으로 한국을 기준으로 두고 비교하는 습관이 흐릿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 한국은 이런데... 한국은 안그러는데... 원래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틀을 없애고, 그냥 현지인들 하는 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깨닫게 된다. 이 사람들도 그냥 살아온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희노애락 감사 배신 다 똑같다는..

한인 마트 vs 일본 마트

한인 마트 일본 마트에 비해 싸다. (육류 제외. 냉동인데도 더 비쌈.) 신라면 같은 업계 과반 점유 품목 몇몇 말고는, 덜 유명한 비주류 브랜드를 취급하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취급 제품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입 단가여서 그런듯 하다. 공급가격이 가장 저렴한 브랜드 제품을 선택해서 적당히 싸게 팔아 이윤을 극대로 남기는 방식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교민들은 선택의 폭이 좁게 강제됐기 때문에 덜 유명하고 좀 후진 제품 늘어놔도 구매할 수 밖에 없으니까. 재고 관리 수준이 낮다. 현지 마트 수준보다 약간 나은 정도다. 매대에 붙은 가격표와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는 실제 판매 가격이 다른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경우는 대부분 실제 판매 가격이 더 비싸다! ..

기숙사 제공이 회사 복지 혜택?

인니 소재 한국 제조업 회사는 한국인 직원이 공장 내 기숙사에 사는 경우가 많다. 땅값, 인건비 싼 지역 찾다보니, 시골 깡촌에 공장을 세우는 게 보통이라 그렇다. 직원을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사고방식이 쌍팔년도에 멈춘 사장이 그렇다. (그냥 관용적 표현으로 쌍팔년도가 아니라, 정말로 1986~1988년도에 한국 최저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부산 지역의 많은 신발봉제 공장들이 인니로 옮겨왔다.) 그런 사장일수록 공장 내 기숙사에 거주해야 하는 걸 근무 조건으로 내거는 경향이 강하다. 처자식이 있고, 출퇴근이 가능한 사람도 예외 없다. 근무 '조건'이다. 웃기는 건, 그런 사장은 '출퇴근해봐야 헛짓거리에 돈 쓸텐데 얼마나 좋냐'는 소리를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

지체 높으신 한국인 사모님들

빨간 원피스 입으신 한국인 사모님 뒤에 뻔히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자기 끌고 왔던 카트 저렇게 방치하고 유유히 떠나신다. 뒤에 줄섰던 현지인이 밀어서... 자기 소형 카트와 함께 저렇게 밀어 놔버렸다.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저 꼬라지를 보게 된다.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회사 대단한 직급이셔야 꼴값도 저렇게 우아하게 떨 수 있을까. 웃기는 게, 현지 대형 마트에서 저 짓거리 하는 한국인 사모님은 본 적 없다. 한국 기업 직원들이 자기한테 조심하는 거 누리다 보니, 한인 마트 종업원들에게도 갑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예전에 한국문화원에서 했던 출판기념회에 여친과 참석했을 적에, 곱게 차려입은 싸가지 여사님들이 여친 현지인이라 무시하던 거 떠올라서 또 열받는다. 저러니 신분 높은 부인을 뜻하는 뇨..

인니 운전면허증 SIM 연장

운전면허증 SIM (Surat 서류, 문서 Izin 허가 Mengemudi 운전하다) 놀랍게도!!! SIM 연장은 주소지와 상관 없이 어느 지역에서든 가능하다. 인니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Satpas SIM Polres 가기 편한 곳으로 가면 된다. 준비물 연장할 SIM 원본 여권 원본 + 복사본 1장 ITAS 1장 STM 원본 + 복사본 1장 뭐만 하려면 제출하라는 지긋지긋한 Domisili 없어도 된다! 직접 할 경우 프로세스 (지역마다 약간 상이함) 1. 면허증 연장 Perpanjangan SIM 코너에 가서 접수 2. 건강 검진 35,000 루피아 - 시력 검사, 반응 검사 (왼손 올려, 손가락 접어 같은 거) 3. 보험 50,000 루피아 (뭔 보험인진 모르겠음) 4. 적성 검사 60,00..

쁨반뚜 Pembantu - 인니의 가정부에 대한 이해

pem : ~하는 사람, ~하는 도구 bantu : 돕다 pembantu : 가정부, 가사도우미 인니 처음 온 한국인들 대부분은 가정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색하다. 한국의 가정부처럼 대해야 하나 싶지만, 한국에서 가정부를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책으로 배운 연애에 개망신을 당하고, 군 경험 없는 놈이 군기 잡겠다고 하다 생사람 잡기 쉽다. 개념 잘 잘 모르는데 어떻게든 하려 하다보니, 가정부를 개념없게 대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식모'가 드물지 않았다가 88년 경부터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사라졌다. 그 급격한 인건비 상승 때문에 한국의 신발과 봉제업이 대거 인니로 진출했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은 사고 방식과 상식 기준이 모국을 떠난 시점에 멈춰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