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

시골 마을의 어느 평범한 저녁 모습

명랑쾌활 2014. 10. 3. 12:50

자카르타에서 50km 떨어진 지역이니 나름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시골 깡촌입니다.

비싸더라도 국가 지원으로 제대로 공업단지를 조성하여 입주하는 일본 기업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으니 무조건 땅값 싼 깡촌에 파고 들어가는 독립군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공장 내 기숙사라도 짓는다면, 꼼짝없이 오지 귀향살이가 됩니다.

치안이야 그닥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못함 ㅋㅋ) 나가서 뭐 할게 없습니다.

베트남 같은 곳은 주류 유통 제한이 없으니 현지 서민들이 애용하는 노상 술집에서 술 한 잔 하는 낭만이라도 있겠지만, 인니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딴건 기대할 수 없죠.

뭐 물론 깡촌 마을이라도 잘 찾아 보면 술 파는 곳이 숨어있긴 하지만, 그런 곳이야말로 근처 놈팽이란 놈팽이는 다 모이는 곳이라 위험하고요.

음주 금지가 보편적인 이슬람 마을에서 술을 마실 정도면 가벼운(?) 놈팽이는 아니죠. ㅋㅋ

 

아주 아주 드물게 바깥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워낙 게을러서 보통은 그냥 참고 마는데, 겸사겸사 모처럼 저녁 나들이 한 번 해봤습니다.

 

시골 마을의 평범한 길

그나마 가게라도 있어서 좀 밝다.

보통 가로등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개인집이나 가게의 불빛이 가로등을 대신한다.

이때 시간은 대략 오후 5시 반 쯤.

사시사철이 여름인 곳이라 해가 길거라 생각하지만, 큰 오차 없이 6시면 딱 해 뜨고 6시면 딱 해 진다.

 

열대지방이 해가 길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바로 한국적 사고 방식의 전형이다.

한국의 여름이 해가 길기 때문에, 1년 내내 여름인 열대지방은 해가 길거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물론 곰곰히 생각하면, 고위도로 갈수록 낮의 짧고 긴 편차가 심해져 극단적으로는 극지방의 백야 현상이 있다는걸 토대로, 저위도인 열대지방은 그 반대로 낮의 편차가 거의 없어 낮과 밤이 딱 12시간씩이겠다는걸 '추론'할 수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 굳이 생각없이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인식(고정관념)이라는건 의외로 강력하다.

인간의 뇌는 워낙 효율적이어서 모든 현상에 대해 규칙성을 찾으려 하고, 어느 정도 규칙성이 고정되어 예측할 수 있게된 현상에 대해서는, 굳이 뇌가 처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넘어간다.

고정관념을 깨는데는 당연한 일상을 벗어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일상을 벗어나면 자고, 먹고, 접하는 모든 활동을 일일이 새삼 생각해야 한다.

 

생각없이 사는게 편할지 모르지만 권태를 부르고, 권태는 자존감(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마모시킨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여행은 일상의 평범함이 사실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일상에 존재하는 나의 특별함을 충전시켜 준다.

 

금새 떨어져 버린 해

인가가 없는 곳은 빛이 없어, 그야말로 깜깜한 암흑이 된다.

열대지방의 일출과 일몰은 한국의 산골마을처럼 극적이다.

산골은 산에 있으니 주변에 비해 지대가 높아서 그렇지만, 열대지방은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지대가 높은 곳이다.

(높다 = 태양과 가깝다)

 

시골마을 읍내에 나와있는 사떼집에서 꼬치 포장을 주문했다.

 

사진은 당연히 허락 받고 찍었다.

 

사떼집 근처에는 거의 반드시 고양이가 있다. ㅋㅋ

 

시골 읍내 풍경

 

건너편 이발소에 사람이 제법 있다.

더운 나라의 주거 지역은 밤이 활기차다.

 

며칠 후, 이발소에 머리 깎으러 가봤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포즈까지 취해주시는 할아버지. ㅋㅋ

 

이발비는 1만 루피아 (약 1천원).

요상한 냄새가 나는 기름으로 뒷목과 어깨 마사지까지 해준다.

아, 물론 머리 감겨 주지는 않을 뿐더러, 아예 머리 감는 곳이 없다.

머리 감는건 의외로 물이 헤플 뿐더러, 급수나 하수 처리도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걸 새삼 깨닫는다.

수도시설 과감히 없애고 머리만 딱 깎는다면, 시설 투자비와 유지비가 극도로 줄어든다.

이발비 천원 받아도 답이 나온다는 얘기다.

물자 풍부하고 도시화된 한국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를 못할 거다.

상하수도 설비라던가, 이발소에 수도 시설이 없다는걸 상상조차 못할테니까.

고정관념이란게 그런거다.

 

아마 한국이라면, 수도시설 도입하고 인테리어 돈 들여 '서비스 차별화'라며 이발비를 더 올릴 것이다.

그럼 인근 업소들도 덩달아 경쟁할테고.

초기 투자 때려 부어 주변 경쟁상대 죽이고 최대한 빨리 투자금 회수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는 이미 당연한게 되어 버렸다.

한국인이라는 족속이 원래 탐욕스럽기 때문일까?

서비스업의 포화 상태와 치솟는 건물 임대료 때문에 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세울 수 없는게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국인은 원래 탐욕스러웠던게 아니라, 탐욕스럽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한국의 한국인들은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실업율과 부동산 경기 과열이 인간의 심성을 어떻게 바꾸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다른 물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서서히 끓이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는 물의 온도가 높아진다는걸 잘 느끼지 못하듯이.

모르는게 나을 수도 있다.

한국의 삶이라는게 얼마나 각박하고 끔찍한지를 깨닫게 되었지만 벗어날 수 없는 처지라면, 더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아, 일상을 벗어난다고 모두 다 긍정적으로 변하는건 아니다.

가령 근무기간 2년을 전제로 해외지사에 발령 온 모부장의 경우, 직원 의료보험에 가족은 제외하는 방법을 찾아 보라고 강요했다.

"한국은 다르다면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직장 의료보험에 부양가족 편입은 당연한거 아니냐. 이 사람들도 다 가족이 있고, 가족이 아픈데 돈 없으면 마음 아픈건 다 똑같다. 가뜩이나 이건 법적인 의무다." 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모부장은 "한국은 그게 당연한거고."라고 일축해버렸다.

모부장은 한국에 있는 처자식의 건강 걱정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은 사람 취급을 안하던 서양의 '교양있는 문명인'들과 다를게 뭘까?

요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다는 거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게 세상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