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10. 직급이 높을수록 말에 무게가 있을까?

명랑쾌활 2014. 9. 24. 09:30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어떻게 부장씩이나 돼서 말을 바꿀 수가 있어!"

"사장님이 다들 듣는데서 한 말씀이라 믿었는데... 헐..."

이런 불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드물지 않다.

지위가 높을 수록 말에 무게가 있다는걸 너무 일반화 해서 벌어지는 착각이다.

 

자신의 말을 부정하거나, 신용받지 못함으로써 느끼는 수치심은 개인적인 양심의 범주다.

하지만 그 양심을 조직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회사를 위해 회사 조직의 일원으로서 한 발언이고, 철회하는 것도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라고 합리화 한다면, 개인적인 양심이 자극 받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을 인간 개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객체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을 조직 일원으로 객체화 시킨다면, 양심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와 진다.

그리고 조직에서 비중이 높은 사람일 수록 자신을 객체화하는 정도가 심하다.

따라서, 높은 직급의 인간일수록, 오히려 얼마든지 말을 번복한 가능성이 높다.

 

사장 명의가 바뀌느니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가 더 많은 한국과 달리, 발령에 따라 대표이사(법인장) 명의가 바뀌는 일이 드물지 않은 해외 지사의 경우, 전임 법인장이 직원들과 합의했던 사항을 후임 법인장이 자신과 한 약속이 아니라면서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해외지사의 현지인 직원들은 합의 사항을 문서로 남기고, 대표자가 바뀌어도 합의 사항은 승계된다는 내용을 꼭 기재한다. 현지인들도 바보가 아니다.)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느냐는건 인간적인 관계일 때 성립하는 얘기다.

상대가 '부장', 혹은 '사장'으로서 한 얘기는 인간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다.

김개똥씨가 한 말은 김개똥씨 책임이지만, 김부장이 한 말은 조직의 일원인 부장이라는 모호한 존재가 한 말일 뿐이다.

말을 뒤집었다 한들 누구한테 항의할건가?

회사의 일원으로서 한 말인데, 그럼 회사에 항의할 건가?

회사 누구?

책임져야 할 일에는, 회사는 실체가 없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에 무게가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버려라.

막연한 믿음은 지켜져봐야 당연한 거고, 지켜지지 않으면 배신감만 남긴다.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일은 문서로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