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제 1 외국어? 혹은 제 2 모국어?

명랑쾌활 2011. 11. 10. 11:14

인도네시아어 읽기 교재 5학년용
노란색 글씨는 " 손이 지금 뭐하는 거지?"

그 결과... <출처 : 인터넷>
사실상 이슬람국가이다보니 남녀의 신체접촉에 엄격하다.


예전 BIPA 다닐 때 썼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 인니국문학과 대학생들이 아닌 다른 학과 대학생들은 BIPA 중급 수준의 질문도 제대로 대답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인니국문학과 대학생도 곧바로 대답 못하고 나중에 알아 봐서 대답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인니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 수준이 낮은 모양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진행자가 서투른 영어로 외국인 게스트에게 말하는 것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관객들이 나오는 어떤 TV 토크쇼 프로를 보고, 인니는 한국과 달리 모국어에 대한 보호 정책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는가 라는 안좋은 논조의 글을 쓴 적도 있었다.
여행 중, 인니어 쓰는 것보다 영어 쓰는게 더 대우 받는다고 비꼬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상황은 맞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고찰은 매우 경솔하고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저런 일을 보고 듣고 겪다 보니, 성급한 짐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니어의 위상은 ' 제 1 외국어, 혹은 제 2 모국어'가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사례1)
 우리 회사 수출입 담당에게 가끔 아리까리한 단어를 물어보면 한참을 끙끙 생각하다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종족이 자와족인 그는 자와어로는 알겠는데 인니어로는 모르겠다고 한다.
사례2)
 순다족인 지인과 대화하다 보면 당최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어가 튀어나오고는 한다.
 잘 모르겠으니 다시 얘기해 달라고 하면 역시나 한참을 끙끙 거린다.
 인니어로는 그런 단어가 없단다. (없을리가... 모르는 거겠지.)
사례3)
 예전 BIPA 다닐 때 아파트 주인 아줌마는 나와 대화하다 막히면 영어를 썼다.
 미국에 몇 년 살았다더니 영어 안다고 뻐기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사례4)
 발리의 게스트 하우스인 로까하우스의 주인 아줌마는 나와 대화할 때 더듬거리는 거 같았다.
 그리고 내게 인니어를 진짜 잘한다고 그랬다. 아하하...
사례5)
 또바 호수의 삐끼 중 한 명은 바딱족이었는데 나와 대화하는데, 좀 천천히 말해 달라고 했다.
 자기는 인니어가 서투르단다...
사례6)
 또바 호수 숙소 건너편의 레스토랑 주인 아줌마는 내가 자와족인줄 알았단다.
 족자 여행 때 산 자와 전통복장 바지를 입은 데다가, 인니어를 너무 잘해서 그랬단다.
 나랑 대화하는데, 솔직히 내가 더 유창하다는 느낌이 들긴했다...
 그러나 주인 아줌마는 발음이나 억양이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했었다.

공통적으로, 난 이들이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못알아 듣겠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종족어로 대화하면서 커왔다.
국가 정책으로 인해 학교 과정으로 인니어를 배운다.
물론 TV프로에서는 인니어를 사용하지만, 알아 들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실제로 편하게 사용하는 것은 어릴적부터 써왔던 종족어다.
언어는 듣고 이해하는 수준보다 사용하는 수준이 더 상위이다.
인니어가 유창함으로써 사회적 지위 향상에 잇점이 있다면 좀더 보편화가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한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그런 개연성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풍조는 상류층에도 뚜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잘 사는 집 자제들은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다.
비즈니스로 상대하는 대상도 대부분 외국인이다 보니, 세계 공용어나 다름없는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인니어나 영어나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언어가 아니라 배워야 하는 언어라면, 영어가 차라리 낫다.
영어는 확실히 돈이 되는 언어다.
한국인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인에게 한국어는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언어다.
하지만 인니인에게 인니어도 그럴까?
인니는 원래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던 다른 종족들이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공통의 과거에서 비롯되어 하나의 국가로 아울러진 나라다.
지금의 인니어는 인도네시아 군도와 말레이반도, 필리핀 남부 지역의 교역인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던 지역어가 모체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인니어를, 한국인에 있어서의 한국어와 동일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니인에게 있어 인니어는 제 1 외국어, 혹은 제 2 모국어가 아닐까?
또다시 성급한 고찰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 생각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