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231

슬픔에 총량이 있다면

만약 슬픔에 총량이 있다면... 키우던 고양이 양이가 만약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느낄 슬픔의 강도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위와 같았을 것 같다. 양이는 고양이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몇 년간 계속 아팠다.치유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픈 증상만 치료하며 연명해왔다.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간간히 병이 악화되어 힘들어 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미 제법 마음이 아팠었나 보다.마침내 그 날이 왔을 때, 의외로 슬픔은 크지 않았다.생전에 많은 인내가 있었고, 해줄 수 있는 건 해주려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에 미안함은 없었다.이제 고통에서 벗어나 편히 쉬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슬픈 감정의 대부분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상실감이었다. 그 역시 늘 준비하고..

단상 2024.08.23

마음의 총량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사람은 한 번에 하나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그래서 마음엔 총량이 있고, 그 양은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는 시간'의 길이와 같다. 총량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거나 신경쓰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대부분의 인간은 한 번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없기에,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이를 생각하지 못한다.여러 사람 두루두루 잘 지내고 안부 전화라도 한번씩 돌린다는 건 총량 관리를 잘하는 거지, 마음이 넓은 게 아니다.만나는 사람들 폭이 좁은 사람은 마음의 총량이 적은 게 아니라, 짧게 끊어서 골고루 나눠주는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떠오르면 툭하고 문자라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건없이 그런 거 못하는 사람도 있다.안부전화 같은 거 ..

단상 2024.08.22

적은 만들기 싫어도 생기게 마련

인생 선배들(요즘 젊으신 분들 말로는 꼰대들)이 말해주는 인생 교훈(요즘 젊으신 분들 말로는 꼰대질) 중 가장 중복되는 말이 바로 '적을 만들지 말라'다.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종자는 보통 갚아야 할 건 잘 잊어도 받아야 할 건 안잊는다.잘 해준 건 쉽게 잊어도 섭섭한 건 잘 안잊는다는 얘기다.그리고, 인간은 보통 믿어서 손해날 건 잘 안믿어도 손해볼 일 없는 건 잘 믿는다.누구 칭찬하는 말은 의심하면서도, 헐뜯는 말은 또 귀담아 듣는다.섭섭해서 험담하기 쉬운데 그 험담이 또 잘 먹히니, 인생 선배들은 '어지간하면 적은 만들지 말라'라고 하는 거다.별 것도 아닌 놈이라도 앙심 품고 주변에 평판 까내리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적은 만들기 싫다고 안만들어지는 거 아니다.예수 석..

단상 2024.08.19

다수결의 결론이 옳다면

다수가 정상이라면다른 나라들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은 비정상이다.강제 성착취 동원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비정상이다.그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으니까. 대다수, 보편적, 일반적...이런 표현을 쓰는 건 그저 대세에 편승하라는 강요일 뿐이다.자기 주장이 옳다는 근거로 쓰는 건 잘못된 사용이다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옳다는 건 아니다.

단상 2024.08.09

혀는 칼보다 더 무섭다

어떤 사람이 천하의 나쁜 놈이라는 소문이 퍼졌다.직접적 근거는 약하다'아'라고 한 것을 '어'라고 했다고 살짝 비튼다.거기에 다른 사람의 카더라를 양념으로 섞는다. 듣고 '완전히' 흘려 버리는 인격자는 매우 적다.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은' 믿는다.그럴듯 하니까.딱히 안믿을 이유가 없으니까.소문을 받아들이고 경계하는 편이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을 믿는 것보다 안전하니까. 피해자가 그 소문을 뒤집겠다고 나서봐야 거의 소용없다.누굴 붙잡고 해명해야 할지도 문제지만, 애초에 하지 않은 걸 안했다고 해명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짜증나는 일이다.게다가 이미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거의 사실일 거라고 받아들인 상태를 뒤집기 어렵다.사람은 원래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스스로 논리를 덧붙이는 ..

단상 2024.08.07

기호(嗜好) - 쓸데 없음을 즐기는 쓸데 없는 짓

기호 : 즐기고 좋아함 담배는 기호품이다.흡연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담배가 있다.담배는 맛이 없다. 역하기도 하다.모두 맛이 없는데 그 중에 자신의 기호에 맞는 담배가 있다에쎄가 좋다느니, 말보로가 좋다느니, 비흡연자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소주 역시 기호품이다.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소주가 있다.공산품 소주는 맛이 없다. 역하기도 하다.모두 맛이 없는데 그 중에 자신의 기호에 맞는 소주가 있다.진로가 최고라느니, 처음처럼이 좋다느니, 소주 싫어하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기호는 중독과도 연관이 있다.끼니 때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한 것 같지 않다는 사람더러 밥 중독자라고 하진 않는다.밥을 먹는 건 생명 유지라는 명분이 있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담배나 소주는 중독으로 ..

단상 2024.08.02

자신의 하찮음에 대한 자각

군생활 가장 힘들었던 건 일과 시간 외 모든 내무반 생활이었다.훈련으로 한정한다면 흔히들 꼽는 유격이 아니라, 공지합동훈련이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에 남는다.공중 지상 합동 훈련, 말 그대로 공군과 지상군의 합동 훈련이다. 새벽 4시 기상4시 반 연병장 집결, 비닐 봉다리에 담긴 아침 짬밥 분배, 대대장 훈화5시 출발.50분 걷고 10분 휴식7시 아침 짬밥 식사 30분50분 걷고 10분 휴식12시 60 트럭으로 날라온 들통 점심 짬밥 배식50분 걷고 10분 휴식걷고 또 걷고...오후 7시 목적지 도착, 텐트 설치, 배식, 개인 정비총 14시간, 행군 거리 65km. 다음날 오전 6시 기상, 배식, 텐트 철수, 군장 준비7시까지 지정된 진지에 배치, 전투기 폭격, 탱크 포격 관람끗... 오전 8시 부대 복귀..

단상 2024.07.26

용기가 없다와 비겁하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용기가 없는 것과 비겁함은 다르다.비겁하다는 건 비열하고 겁이 많다는 뜻이다.용기가 없다고 해서 비열한 건 아니다. 겁이 많을 뿐이다. 일본 강점기, 일본의 통치에 굴복하고 따른 수많은 민초들이 모두 친일파는 아니다.대부분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그 시절 일본에 붙어 일신의 안전과 재산을 노린 자들이 친일파였다.그들이 비겁자다.

단상 2024.07.19

흔적 없이 떠나는 삶

내가 기억하는 작은 아버지는 키가 140cm도 채 안되고 머리가 큰 난장이 체형에 다리를 살짝 절었다.이미 심각한 알콜 중독이라 눈이 싯누랬다. 늘 술에 취해있어서 숨 쉴 때마다 술냄새가 났다.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소주만 마셔서 깡말랐다. 엄청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 마시는 것처럼 병채로 콸콸 마시는 모습도 종종 봤다.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민물고기 찜의 그 끔찍한 비린내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마 내가 생선 비린내에 민감해지게 된 탓에 일정 부분 작용했을 거 같다. 작은 아버지는 자기보다 더 작은 작은 어머니와 결혼했고, 부부싸움이 잦았다.작은 어머니에게 폭력을 썼다. 눈에 멍이 든채 동네가 떠나가라 바락바락 대들던 작은 어머니 모습도 기억난다두분은 결국 이혼하셨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

단상 2024.07.12

깔끔함 = 부지런? 지저분함 = 게으름?

흔히 깔끔한 사람 = 부지런하다, 지저분한 사람 = 게으르다 생각한다.꼭 그렇지만은 않다.밖에서는 엄청 깔끔한데, 집은 돼지 우리인 사람도 있다. 부지런하거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그냥 못참는 거다.타인에게 지저분해 보이는 걸 못참으니까 깔끔떠는 거다.집 더러운 걸 못참으니까 집 청소를 하는 거다. 부지런한 사람이 따로 있긴 하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는' 걸 못참아서 하는 범주에 속한다.그것 조차도 안하는 사람들 역시 참을 만 하니까 안하는 거고.

단상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