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좋게 생각해 버릇하면, 좋게 생각하는 버릇이 든다.

명랑쾌활 2018. 11. 9. 10:56

운동선수의 놀라운 플레이는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만번 연습한 결과가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온 것이다.

시속 300km 이상의 배드민턴 공을 받아치면서 어디로 떨어뜨릴지까지 정하는 건 절대 계산으로 할 수 없다.

심지어, '어디로 떨어뜨리면 좋을까' 조차도 판단의 영역일 뿐 생각이 아니다.

성격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평소 '생각해 버릇한대로' 반응이 튀어나오는 거다.


온화한 성격과 사나운 성격을 비교해보자.

예를 들어 운전을 하는데 다른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 온화한 사람은 '급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납득을 해버린다.

하지만, 사나운 사람은 '저 새끼가 날 무시하나'라고 생각을 하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말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를뿐더러, 확인할 수도 없으니 중요하지도 않다.

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온화한 사람은 평소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 배려해 버릇하기 때문에, 사나운 사람은 그 반대로 생각해 버릇하기 때문에 똑같은 돌발적 상황에 반응이 다른 거다.

배려하는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배려하는 태도가 버릇이 된 사람은 자기 몫이 좀 적어 보여도 그닥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반면,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몫이 좀 커도 작다고 느낀다.

평소 자기 갖고 싶은 만큼 가져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으니, 어떻게 나눠도 만족보다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느닷없이 화를 벌컥 벌컥 내는 성격의 최강, 다혈질은 어떨까?

모든 감정이 그렇듯, 화도 느닷없이 쉽게 펑~하고 커지는 감정이 아니다.

격렬한 감정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고, 생물은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물컵 좀 쏟았다고 세상 다시 없는 무능한 인간인 것처럼 버럭 화를 내는 건 비정상이란 얘기다.

보통 화는 증폭 과정을 거쳐 점점 커진다.

작은 말다툼으로 시작하다가, 주고 받는 말이 점점 심해지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급기야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주먹다짐까지 가는 상황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양말 아무데나 던져 놓지 말라고 했잖아 ->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 자기만 피곤해? -> 그만 하자. 뭐 그런 거 갖고 예민하게 구냐 -> 내가 예민한 거야? 양말 빨래통에 넣는 게 그렇게 어려워? 자기가 애야? -> 뭐 그딴 거 갖고 애취급을 해? 그렇게 아줌마 티를 내야 겠냐? -> 아줌마? 누구 탓에 이렇게 됐는데?

(여기서 다른 집하고 비교하거나 시댁처가 부모 언급하는 순간 폭탄이 터지게 됨)


이런 증폭은 자기 마음속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앞에 운전할 때 끼어들기를 예로 들었다시피, 당면한 상황을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얼씨구, 물을 엎질러? -> 아 씨바 바지 젖었네 -> 아 씨바 꼭 오줌 싼 것처럼 젖었네 -> 이게 뭔 망신이야, 저 새끼 때문에 -> 평소에도 어리버리 한 놈이 아주 지랄이구만 -> 정신을 딴 데 뒀나 -> 내가 만만한가? 내가 만만하니까 정신 딴 데 판 거야? -> 하여간 이 새끼, 지랄을 해야 정신을 차리지


물컵 좀 쏟았다고 버럭 화를 내는 사람 머릿속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증폭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워낙 순식간에 이루어진터라, 남이 보기엔 그야말로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증폭의 신속함은, 평소에 수도 없이 그렇게 생각해 버릇해온 숙달의 결실이다.

마치 한석봉 어머니가 불 꺼놓고도 가래떡을 파바박 썰듯 하는 그 숙달 말이다.


뭐든 자주 하면 늘듯, 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배려나 온화함, 미소 등등도 마찬가지다.

좋게 생각해 버릇하면, 좋게 생각하는 버릇이 든다.

내 차를 난폭하게 추월해가는 차를 보며, '아이, 저 운전 아름답게 하는 씨발놈의 새끼는 사람은 분명히 뭔가 급한 일이 있어서 저 지랄을 행동을 하는 걸 것이야. 급한 일이 아니었으면 얌전히 운전하는 개새끼였겠지 사람이었겠지.'라고 생각하면 한결 낫다.

어차피 끝까지 쫓아가서 들이 받고 패줄 것도 아니고, 내일쯤 다시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평생 함께 살 것도 아니지 않나.

기분 상한 상태를 자신의 삶에 채우는 것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편이 더 이득이다.

이득이면 안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아, 귀찮으면 안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