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아집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영역

명랑쾌활 2017. 10. 14. 11:21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아주 좋습니다. 몇 백개의 업체와 몇 백명의 사람을 외우고 있었고, 관련 사항을 물어보면 즉시 대답이 척척 나오곤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머릿속에 입력하기 위한 요령이기도 해서, 그 메모를 들춰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머릿속에 다 넣어두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나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머릿속에 입력해 둔 기억이 즉각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간혹 머릿속에 입력이 안되고 빠뜨리는 것들도 생깁니다.

문제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없었던 일이거나, 이미 해결했기 때문에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소거했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 예전 같지 않은게 자연스러운 이치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 들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이전에 이미 우기거나 윽박지르는 행동이 앞서 버립니다.


아집이 강한 사람의 대부분은 어떤 분야의 능력이 평균 이상인 사람입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다고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확신을 강하게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서투릅니다.

자기 확신은 자존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건 자기 부정이기도 합니다.

자기 부정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자기 부정을 시도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하는 상대에게 적대적 감정을 분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의 아집은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된 거라, 논리로 깨트리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입니다.


제가 아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아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데, 그 사람이 했던 "자기가 틀렸어도 아무 소리 말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다양합니다.

당근이 죽어도 싫다는 사람도 있고, 누린내 때문에 돼지고기 못먹는 사람도 있는데요.

자기 틀렸다는 말 듣기가 그렇게 싫은 사람도 있는가 보죠.

그냥 그러려니 두는 편이 낫습니다.

상대방이 내 자식도 아니고, 자식이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으면 못고치는 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