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Judika의 Cikarang Bebek Bali 공연

명랑쾌활 2017. 10. 5. 11:19

리뽀 찌까랑 Lippo Cikarang 에 있는 베벡 발리 Bebek Bali 에서 주디카 Judika 의 공연이 있다는 현수막이 붙었다.


베벡 발리는 자카르타에도 제법 알려진 라이브 까페다.

주인장이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인데, 버카시 지역에서 제일 좋다는 워터파크 워떠르 붐 Water Boom 도 주인장 거랜다.

자카르타에 비하면 한참 변두리 지역인 찌까랑에 있는 라이브 까페치고는 공연 밴드들 퀄리티도 높은 편이고, 가끔 유명 가수 초청 공연도 열린다.

가게 매출로 봐서는 돈 벌자고 하는 짓 같지는 않고, 돈 많은 대중예술 애호가인 모양이다.

* 2017년 9월 기준으로 봐서는 이제 좀 돈 벌려고 하는 거 같다. 메뉴 가격이 30% 이상 뛰었다. =_=


주디카는 메이저급 가수다. 한국으로 따지면 김범수 정도?

Michael Learns to Rock 을 감탄시킨 가창력 동영상

노래는 무지 잘하는데 성격이 좀 '나댄다'고나 할까.

나랑 사귈 거 아니니 성격 따위는 상관 없고, 어쨌든 되게 유명한 가수라는 게 중요하다.


1주일 앞두고 예매하려니 거의 매진이다.

8만원 정도 하는 VIP석으로 예약했다.

3만원짜리 고기불판을 살까 말까 망설이다 아직까지 안사고 후라이팬에 고기 궈먹는데, 이런 데엔 푹푹 쓰는 거 보면 나도 참 웃긴다.

무작정 아끼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말자는 주의다.


입구에 경찰도 와있고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다.


한편에는 통신사 홍보부스도 있다.

뭔가 본격적이다. ㅋㅋ


7시 공연이라길래 7시 반에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 공연 시작할 기미가 안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너무 당연한 거고, 큰 공연은 다를 거라 생각한 나만 이상한 거다.

다른 곳에서 저녁 먹고 다시 오기로 하고 다시 나갔다.

베벡 발리에서도 음식을 팔지만, 차분히 음식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


8시 30분에 다시 왔다.


오프닝 밴드가 공연하고 있다.

나만 모르고 다들 아는듯, 빈 자리들이 훨씬 많다.


평상시 메뉴판이 아닌 주디카 공연 특별 메뉴판이다.

만들기도 간단하고 먹기도 간단한 술안주거리들이 간단치 않은 가격으로 채워져 있다.

주류는 그래도 양심적으로 20% 정도 더 비싸졌다. 좀도둑 수준의 양심적으로.

티켓 팔아 처먹어 돈 벌고, 메뉴 가격 올려 받기 2단 콤보가 날라왔다.

시즌에 후려치는 상도덕이야 한국에 살면서 섭섭치 않게 단련이 된지라, 별로 열받지는 않았다.

최소한 휴가철 숙박 요금이나 성탄절 술값 여관비 등등처럼 두세배 후려치는 날강도 수준은 아니지 않나.

이정도면 귀여운 솜털이 보송보송한 도둑새끼 아기도둑들이다.


9시 좀 넘은 시간, 테이블이 슬슬 차기 시작한다.

빈 테이블 위에 있는 재떨이를 보면 알겠지만, 인니 까페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인니에서 까페 Kafe 는 술을 파는 업소를 뜻한다.)

유명가수 공연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김범수 급의 가수 공연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흡연자의 천국이요, 비흡연자의 지옥인 나라다. ㅎㅎ


10시 반 쯤 되자 드디어 좌석이 다 찼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거다, 7시 공연 시작이 완전 개소리라는 걸. =_=


11시가 다되어 조명이 꺼지고 베벡 발리가 아주 훌륭한 업소라는 홍보를 하는 주디카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오프닝 반주와 함께 조명이 다시 들어오니, 주디카 반주 밴드가 짜잔~


사람들이 웅성웅성 무대 반대편을 보고...


사진 중앙 검은색 등판에 흰 글씨가 쓰여진 옷을 입은 아기자기한 키의 사람이 주디카다.

이때부터 나는 스마트폰 보급의 폐해를 실컷 관람할 수 있었다.


가수를 보고 손을 드는 게 아니라, 모두들 자기 스마트폰을 든 손을 들고 화면을 통해 가수를 보고 있다.


스마트폰을 든 손을 내리면, 시선도 따라 내려와 잘 찍었나 결과물을 본다.


가창력도 좋고, 무대 장악력도 좋고, 키도 작다.


읭? 중간에 행사도 한다.

관객 중 두 명의 지원자를 뽑는다고 하니, 덜 젊은 아가씨와 덜 늙은 아주머니가 용감하게 나섰다.

아주머니는 질밥을 썼다는 점만 다를 뿐, 뭐 상품 준다고 하면 알든 모르든 무조건 들이미는 한국의 용감한 아주머니와 똑같았다.

주디카 신곡 제목 알아맞추고, 노래 따라부르기였는데, 아가씨는 척척 맞추고 노래도 잘 불렀지만 (아마도 팬클럽에서 온듯 했다), 아주머니는 제목도 모르고 주디카가 선창하는 노래도 음을 제멋대로 따라 불렀다.

하지만,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씩씩하고 밝았다.

이런 일에 익숙한지, 주디카는 당황하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행사를 유도했다.

당연히 둘 다 상품을 받았고, 당연히 상품은 주디카 신곡 시디였다.


노래 부르는 가수 뒷편의 흰옷 아가씨는... 관객이다. +_+


손을 번쩍 올리는 포즈를 취하고 찍기도 하고...


일행들이 좋다고 같이 웃는다.

공연 초반에 봤던 스마트폰질이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인니를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거다.

그 정도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상식적 수준이다.


이제 불이 붙었는지 여기저기 슬금슬금 관객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수와 자기 얼굴이 같이 나오게 셀카를 찍느라, 정작 가수한테는 등을 진다. ㅋㅋㅋㅋㅋㅋ


무대 왼편이 주디카, 오른편 여성 두 명은 관객이다.

한참 클라이막스 부분을 열창하고 있는 가수 옆에 딱 붙어 포즈를 취한다.

이런 경험도 많았는지, 주디카는 전혀 당황하지도, 찡그리지도 않고, 계속 노래했다.


매진 임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망설임이 사라지듯, 마지막 곡이라는 맨트에 관객들이 올라와 노래 부르는 주디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 시작한다.


ㅋㅋㅋㅋㅋㅋ 난리 났다.

흥에 겨워 춤추러 올라온 사람들 아니다.

셀카 찍겠다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인니인들이 한국인과 참 많이 다르구나 싶은 광경이었다.

사진을 보면, 끝까지 점잖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다시피, 물론 다 저러는 건 아니다.

이런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인니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히 다른 부분은, 한국은 저런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나머지 다수가 표출하지만, 인니는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섯번째 곡을 마지막으로, 주디카는 휑하니 사라졌다.

앵콜 따위 없고, 관객들도 앵콜 따위 바라지도 않는 분위기다.

나중에 듣기로는 1곡당 3천만 루피아 (3백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베벡 발리측은 공연표 팔린 것만 해도 일단 수익이 났을 거다.


더 복잡해지기 전에 후딱 출발했다.

통제도 제대로 하지 않을 뿐더러, 통제해봐야 도무지 따르질 않기 때문에, 자칫 아수라장에 갖힐 수 있다.


주디카가 나온 알맹이만 따지면 10시 50분 쯤에 시작해서 11시 40분 쯤에 끝났다.

유익한 공연이었다.
공연 시간에서 고작 30분 늦게 나온 순진함과 그러고서도 고작 1시간 뒤에 다시 찾아 온 멍청함을 반성할 수 있었던 보람찬 공연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등신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교훈을 얻었다면, 1시간도 안되는 공연 보자고 8만원을 쓰고, 두시간 반을 기다려서, 고작 관객들의 광란 셀카질이나 보는 정도는 썩 나쁘지 않은 병신짓이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