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정조에 대한 가치 부여 정도와 남녀평등 수준의 상관 관계

명랑쾌활 2017. 5. 26. 10:00
문화권에 따라 정조에 대한 가치 부여 정도가 다른데, 이는 그 문화권의 남녀평등 수준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조에 대한 가치가 높은 지역은 여성성(혹은 순결)이 우대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가치가 높게 부여되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제약과 억압을 받는다.

가치가 높은 존재는 취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정조를 잃게 되면 가치가 파괴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불이익 역시 심하다.
따라서, 그 귀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 타의에 의한 강제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 귀중한 가치를 몸에 품었기 때문에, 아무데나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마치 귀중품과 현금을 많이 가진 부자가 뒷골목에 가면 위험하지만, 일반 서민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여성은 점차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수호를 담당하는 사람(남자)에 대비해 수동적 위치에 처하게 된다.


반면에 성에 대해 개방적인 지역에서는 순결이 크게 중요하진 않다. (하찮다는 뜻이 아니다.)
정조에 대한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보호의 필요성 역시 강하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성적 폭압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형이상학적으로 과대하게 평가되는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성에 대한 개방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순결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에 따라 제약과 억압도 줄어든다.

여성 역시 여성성이 아닌,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며, 남성 역시 여성의 가치를 성적인 측면이 아닌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남녀평등 수준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순결이나 여성성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품고 있는 남자일수록 가부장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켜야 할 존재'라는 건 곧 '쟁취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능동과 수동의 관계 설정일 뿐이다.


남녀평등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스스로 남녀평등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순결이나 여성성에 대해서 과도한 환상을 품거나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여성성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