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단상

명랑쾌활 2016. 5. 16. 10:11

어떤 마을이 있다.

촌장이 쌀을 걷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먹이려고 한다.


- 보편적 복지

쌀을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적게, 부자에게서는 많이 걷는다.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걷지 않는다.

그 쌀로 밥을 짓는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한 그릇씩 나눠줘서 다 같이 먹는다.

부자가 먹기 싫다면 그건 자기 마음이다.

억지로 먹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굳이 부자라고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 선별적 복지

쌀을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적게, 부자에게서는 많이 걷는다.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걷지 않는다.

그 쌀로 밥을 짓는다.

가난한 사람만 먹고, 부자는 먹지 말라고 한다.



딱 봐도 어느 쪽이 더 이치에 맞는지 나오지 않나 싶다.

부자도 엄연히 쌀을 냈다.

그것도 많이 냈다.

부자니까 그깟 밥 얻어 먹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먹지 말라고 하면, 열 받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누추한 집에 부자 손님이 왔는데, 식사 권하더라도 분명히 거절할 게 뻔하더라도 굳이 예의상 식사 권하는게 한국사람의 도리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만 먹으라고 한다면, 얼마나 가난해야 밥 먹을 수 있는지는 누가 판정하고, 그 판정은 얼마나 공정한가도 문제다.

가령 월수입 50만원 이하만 밥 준다고 하고, 한달 밥값은 10만원이라고 하자.

51만원 버는 사람은 고작 1만원 차이 때문에 한달 밥값 10만원 더 지출하게 되어 오히려 9만원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 불공평은 어쩔것인가?

열심히 해서 수입 10만원 더 늘면 복지혜택 못받아서 어차피 소용이 없는데, 누가 기를 쓰고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겠나.

수입을 숨기고 말지.


무엇보다도 그 밥 먹으려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게 참 추접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거지는 구걸질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심보인가?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복지에 투입되는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한정적인 자원의 대부분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는가 하는 도리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선택권을 주더라도 자의적으로 그 혜택을 사양하는게 보다 정신적 충족감을 준다.

하지만 선택권 자체를 박탈하고 강제적으로 혜택에서 제외한다면, 똑같은 결과라도 반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요컨데 믿음의 문제다.

부자가 돈푼 아끼겠다고 거지짓 해가면서 공짜밥 먹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비루하지 않은가?


세금은 우리 모두의 돈이니 허투루 쓰지 말고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는 좋다.

하지만, 그 '우리 모두'에는 부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컨데, 부자를 제외하겠다는 선별적 복지는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감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