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시사

기초 노령연금 공약 파기. 그리고 진보와 보수

명랑쾌활 2013. 10. 23. 07:57

1.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한 노인회에서 "노인들이 기초연금만으로 월 20만원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선에 승리한 사람(?)은 이명박 후보였다.
이명박 후보는 대선을 일주일 쯤 앞두고 대한노인회 주최 토론회에서 "임기 안에 기초연금을 20만월으로 올리겠다."라고 즉홍 발표를 한다.
이 내용은 공약집에는 없으며, 물론 지켜지지도 않았다.

 

2. 2008년 4월 총선 당시 한나라당은 '기초 노령연금 9만원 -> 36만원'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아직까지도 기초 노령연금은 9만원이다.

 

3. 기초노령연금 관련하여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애초에 '대상자를 70%에서 80%로 확대, 2017년까지 점진적으로 2배 인상(9만원 -> 18만원)' 공약을 내놓았다.
박근혜 후보는 11월 5일 대한 노인회에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공약을 전격 발표했다.
당시 대선후보 TV토론 중에 문재인 후보는 새누리당(한나라당)측이 노령연금 관련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던 문제를 지적하며 이번에는 지켜지겠느냐 질문했고,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은 실행하려고 합니다."

 

4. 최근 공약 파기를 선언한 박근혜 후보가 다시 내놓은 대책은, '대상자 70%, 소득 별 10만원 ~ 최대 20만원 차등 지급'이다.
선거 당시에 상대 후보보다 후하게 약속했다가, 당선 후 뒤집는 전근대적 수법은 아직도 통한다.
새누리당 측은 야당 측 대권 후보의 공약 수준까지는 맞췄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복지 재원 마련의 방안으로 '부자 감세 철회'를 내세웠고, 박근혜 후보는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다.
TV토론회에서 "부자 감세 철회없이 복지 공약 실현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는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박근혜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당선된 후 박근혜 대통령은 '부자 감세 철회 불가'는 꿋꿋하게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서는 불가피함을 들어 원칙을 수정했다.

 


기초 노령연금 공약 파기에 대해, 어쩌면 저와, 저와 정치적 관점이 가장 극단의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골수 새누리당 지지 노인의 생각에서 동질성을 발견했습니다. ㅋㅋㅋ
저 : "개뿔 애초에 믿지도 았았다."
노인 : "어차피 내 살아오면서 공약이란게 지켜진 적이 별로 없었어."
그리고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 때문에 저와 노인은 극단으로 갈라집니다.
저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했으므로 사기다.'라고 생각하고,
노인은, '정말 실현하려고 했지만 재정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해하자.'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옳은가는 판정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번 공약 파기에 대해, 노인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고, 여전히 행복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엄청 기분 나쁘고 씩씩 거리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믿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어쨋든 기초 노령연금 9만원이었던 것이, 10~20만원으로 가긴 가는 모양입니다.
별 일 없다면, 다음 보수진영 후보도 이번 보수진영 후보보다 더 '진보적인 공약'을 낼 것 같습니다. ㅎㅎ

 

유시민 전 장관의 최근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 '대강'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책이 없어 기억에 의존합니다.)
"진보와 보수는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이 지는 승패의 관계가 아니다. '변화 하고자 하는 쪽'과 '변화 하지 않고자 하는 쪽'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 진영 후보가 당선되고 진보 진영 후보가 낙선됐다 하더라도 진보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이번 보수 진영 후보의 공약은 그 이전 대선 진보 진영 후보의 그것보다 더 진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