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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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01. 만남

명랑쾌활 2013. 9. 24. 03:36

공장 설립하고 초창기 무렵, 왠 놈이 하나 찾아왔다.

없던 건물 새로 지은게 아니고, 있던 건물에 들어왔으니, 외려 찾아온건 나일 수도 있겠다.

그닥 숫기 없는 녀석인지,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알아서 먹고 살았고, 나도 설립 초기라 이래저래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이때 당시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본사는 인니의 특수성에 한국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이해할 생각이 없었고, 나는 그걸 이해, 혹은 관철시킬 만한 권위가 없었다.

'한국은 이런데 인니는 왜 그래요?' 라는 멍청한 질문에 답도 못하고 '어떻게든' 한국 기준으로 맞추려 발버둥 치던 시절이다.

이젠 그런 병신같은 질문을 하면 하급자고 상급자고 아주 박살을 내는 또라이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그 때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오늘도 한국이 빛이요, 진리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멍청한 주제에 직급이 깡패인 한심한 인간들을 이해시키느라 열통 터지는 수많은 외국 주재 한국기업 직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한달 반 쯤 뒤, 왠 임신부가 떡하니 공장에 들어왔다.

책임지라고 그 놈 구역에 들어온 모양인데, 그 놈은 콧배기도 안보이는게 어디론가 튄거 같다.

하여간 수컷들이란... 참 대범하고 어지간한 일에 신경 안쓰는 자유롭고 진취적인 족속이다. -ㅂ-

 

버림받은(?) 임신부 고양이는 수컷의 집(?)에 쳐들어 온지 보름 쯤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보름 쯤 후, 왠 아이를 떡하니 안고 다시 찾아 왔다.

 

고양이는 보통 새끼를 서넛 정도 깐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녀석들은 죽었나 보다.

바로 옆으로 사람이 저벅저벅 지나가도 꿈쩍도 안하는 이 나라 고양이들과 달리, 꼬맹이는 유난히 겁이 많았다.

하긴, 새끼는 겁이 많아야 생존율이 높다.

 

다행히도 꼬맹이에겐, 최고의 놀이터이자 은신처이자 집인 팔렛 무더기가 있었다.

 

그래도 젖을 먹일 때는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서 먹이던 엄마 고양이도, 차츰차츰 아무데서나 퍼질러 누웠다.

그에 따라 꼬맹이도 굶지 않으려면 자연스럽게 세상과 가까워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