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근황

시답잖은 꿈 이야기이긴 한데...

명랑쾌활 2012. 2. 18. 13:26
어젯밤에 꾼 꿈이 참 시덥잖으면서도 가슴에 남는다.
깨나 생생한데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도 우습고 대충 줄거리만 쓰자면...

3일 정도 짬이 나서 자카르타에서 근처의 어떤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어떤 나라인지는 까먹었다.
아마도 부루나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젠장.
그 나라 공주를 만났는데 만나자 마자 서로 푹 빠져 버렸다.
(너무 욕하지 마라. 나도 겸연쩍어 죽겠다. 나잇살 처먹고 초중딩 꿈이라니... ㅋㅋㅋㅋ)
일정은 3일인데 1박도 아니고 당일로 다시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일정이다.
(꿈이 다 그렇듯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이별을 하며 다시 오겠다고 하고 다른 나라를 갔다.
그리고 귀국길에 다시 그 나라를 들러서 궁전(?)으로 무작정 갔다.
공주 만나기 직전에 깼다. 젠장젠장젠자앙~~ -_-;;

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직껏 버리지 못한 마초적 환상이라던가,
아직껏 결혼에 대해 그닥 조급함을 못느끼는 이유의 저변,
어제 본 인터넷 기사의 서로를 그리워하며 30년을 결혼도 안하고 기다려 결국 결혼한 베트남 남자와 북한 여자 이야기가 기억에 잔류함,
시간 되면 이제 슬슬 근처 국가도 여행 가야겠다는 생각,
돈 많이 벌어서 섬 하나 사서 왕 되는 것도 좋지만, 어디 공주랑 결혼하면 지참금으로 섬 하나 정도는 받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망상,
' 니가 그래도 장가 갈 마음이 없진 않나 보구나.'라는 엄마의 아들 심리 분석,
뭔 소릴 갖다 놔봤자 단칼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강력한 단어인 '개꿈' 등등.
왜 이런 개나 낮잠자다 꿀 만한 시답잖은 꿈을 쓰느냐...
이별 장면(?)에서 정말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설랬다.

공주, 나, 시녀 아줌마가 있는 자리에서 이별했다. (아으, 상투적이다. ㅋㅋ)
글썽글썽한 공주의 두 손을 맞잡고 시녀 아줌마에게 내가 물었다.
" 이 나라에서는 공주가 결혼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결혼을 선택할 수 있냐는 질문이 아닌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시녀 아줌마는, 이내 곧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가능합니다."
나는 다시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럼 됐습니다."
" ..."
공주도 나를 처다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 그럼 됐어요."

잠에서 깨었을 때, 가슴이 월렁월렁 했던 자취가 남아있었다.
이런 짠하고 애잔하면서 자아도취 과잉인 기분 좋은 상태 오랜만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진실을 받아들인 이후로 이런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아왔다.
(유일한 경우는, 한국 갔다가 돌아 오느라 엄마와 헤어질 때다.)
오랜만에 느꼈는데, 역시나 참 사람 뭔가 홀리게 만드는 상태다 싶다.
이 강력한 감정의 마약에 도취되어, 밤새 걸어 그녀의 방 창 가 밑에 가는 미친 짓도 행복하게 하고, 그를 위해 개도 안물어갈 목도리 장갑 짜주느라 낑낑 대면서 실실 웃는구나 새삼 기억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런거 이제는 못느끼나 싶었다.

다행이다.
" 딱히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데, 굳이 나서서 찾고 싶지는 않다. 걍 열심히 살다가 만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걍 혼자 살지 뭐." 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결혼을 하기에는 마음도 많이 무뎌졌고, 인간 본성을 너무 알아 버려서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연애를 하려면 무책임한 개뻥은 필수인데, 이제 난 그런거 하기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 솔직히 말해서, 현재 상황이 이렇고, 나중 상황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그런 부분을 100%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은 못하겠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고 저쩌고..." 라는 남자와 연애에 빠질 미친 특이한 여자가
어디 있겠나?
(특별한 상황에 같이 처하게 되면 가능하긴 하다. 가령 조난이라던가, 고립이라던가...)
별 조또 없는 주제에 " 나만 믿어!" 라는 허세에서 대부분의 연애가 시작되는 법이다.
연애감정은 상대방에 의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환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환상과는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침대봉소하면서 타협하는 상태면 일반 연애,
자신의 환상을 자동적으로 수정하여 '원래 저걸 원했다'는 정신 상태면 이른바, 콩깍지에 안구가 덮침 당한 상태고...
그렇다고 남자가 사기치는 것이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상태가 되면 자기가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상태가 아니더라도 본능적으로 여자가 원하는 말을 뱉어내는 사람이 바람둥이, 의도적으로 그 말을 뱉어내는 사람이 제비)
그런데 이번 꿈에서 깨달았다.
싫다고는 하지만, 그런 감정 상태가 되면 나도 결국 존나게 무책임한 개뻥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을.
조또 없는 평민 주제에 공주한테,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 결혼 다 거절하고 수절하고 기다리라는 되도않는 소리를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무책임한 객기가 아직 남았다는 것을.
그럼 됐다.
나로 하여금 오토매틱으로 그런 개뻥을 치게 만들만한 상대를 아직 못만났을뿐, 만나기만 하면 언제든 사기칠 마음이 죽지는 않았으니까.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되겠다.
그래도 너무 기다리게 하면 미안하니까, 외국 여행 계획을 좀 서둘러야 겠다. ㅋㅋ

브루나이 공주.
결혼 했댄다. -_-;

브루나이 공주
...일단 공주긴 하다. -_-;;

태국 공주
...아... -_-;;;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갔던 곳이 브루나이나 태국은 아닌 모양이다.
...혹시 중동 지방...?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