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

몰래 술값 혼자 계산하는게 꼭 좋은 일일까?

명랑쾌활 2010. 4. 22. 02:36

골프에서 처음 필드에 나가는 것을 '머리 올린다'라고 한다.
기생스러운 용어지만 골프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이미 속어로서 정착된 모양이다.
처음 골프장에 데려가 준 사람, 그러니까 '머리 올려준 사람'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며, 라운딩이 끝나면 술 한 잔 대접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아직은 잘 치지 못해서 모르겠는데, 잘 치는 사람이 골프 생초보와 라운딩을 한다는 것은 그리 기꺼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당구 300이 30이랑 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H군은 골프에 있어서 첫 스승과 같은 존재다.
싱글의 실력에 교과서적인 폼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가 연습장에서 스윙을 할 때면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는 했다.
스스로도 골프를 매우 좋아하여, 본업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 자격을 따볼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의당 골프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듯, 아직 까마득한 초보인 내게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마음가짐이나 느낌 같은 부분을 점잖게 알려주는 사람부터, 폼 하나 하나까지 일일히 지적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스윙할 때 공과 몸이 멀면 멀수록 좋다고 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은 가까울 수록 좋다고 했던 경우도 있다.
(둘 다 폼은 정석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신체에 체화된 폼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 닥치기 전에, H군에게 골프를 배우게 된 것은 내게 작지 않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정석의 폼을 구사하고 있었으며, 가장 실력이 좋았다.
그가 말한 이론과 실전의 가르침과 다른 사람의 그것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나중에 찾아보면 그의 가르침이 항상 옳았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적다하여, 대충 가르친 적이 없었으며 가르칠 때 만큼은 진지하고 매서웠다.
그는 자신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형처럼 게으른 제자를 가르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옳다. 인정한다.
그의 골프에 대한 애정이나 그 진지한 자세에 비하여, 난 그렇게까지 골프가 재미있지도 끌리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멀고먼 이곳 인니에서 어쩌다 보니 가까워지게 된 사이가, 그와 나의 사제관계를 맺게 한 작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마토아 골프장.

UI 대학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에 있어서, BIPA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과 인연을 맺고 있다.
난이도는 낮은 편.

내 골프의 첫 스승 H군.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머리를 올려 줬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이미 머리를 올렸다.
UI에서 가장 가까운 Matoa 골프장이라는 곳에서, H군과 L이 머리를 올려줬다.
그때 머리를 올린 사람은 나 이외에 C씨 한 명이 더 있다.

라운딩이 끝난 후, 간단하게 저녁 먹으며 술 한 잔 할겸 자카르타 시내로 나갔다.
머리를 올린 C씨와 나의 그린피와 팁은 관례대로 머리를 올려준 H군과 L이 부담하였다.
원래는 거하게 사야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저녁만 사라는 얘기에 혹시 몰라 챙겨온 해외 신용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남자들 술자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니까.
술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우선 넷이서 한 잔 하고 있었고, 나중에 모은행 자카르타 지사에 파견온 두 명이 합류했다.
2차는 어디로 갈까 얘기하고 있는데, 나중에 합류한 은행원 둘이, 집에 괜찮은 술이 있다고 간단한 안주만 사서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먹자고 한다.
그 얘기에 C씨가 건너편의 복집 요리가 괜찮으니 사오겠다며 냉큼 나섰다.
이윽고 C씨가 포장 봉다리를 들고 돌아왔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C씨에게 계산하자 얘기하는데, 그는 모두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자기가 다 계산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공치사가 그에게 쏟아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람 머리 쓴 건가? 하며 그냥 씁쓸하게만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혹여 단란주점이라도 가게 되면 꼼짝없이 내가 낼 판이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남자들 술자리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런 모임에서는, 겉으로는 대범함과 호의가 오고 가는 듯 하지만, 사실 어느 때보다 계산에 정확해야 한다.
다들 술 얼큰하게 먹었다고 설렁설렁 행동하지만, 누가 계산해야 하며 누가 했는가는 누구나 은근히 체크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한 두 차례 넘어 갈 수도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친분이 형성된 관계일 때 얘기고, 이런 첫 자리에서는 어설피 넘어갔다가는 그대로 쪼잔한 놈으로 찍히는 일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대접하기로 되어있는 있는 두 사람 중 하나다.
안내고 넘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과용하는 것까지 각오는 해뒀지만, 의외로 술 자리는 은행원들 집에서 마시는 것을 끝으로 파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C씨가 계산한 것들을 반분하여 내가 주어야 마땅하다.
돌아오는 길에 (나와 H군, C씨는 같은 아파트에 산다) 지금 바로 계산해야 하나, 나중에 계산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이미 밤이 깊어 껌껌한 차 안이나 아파트 복도에서 얼마냐 물어보고 암산으로 반가르고 하는 것도 너무 빡빡해 보일까봐, 내일 줘야겠다 하고 생각해 버렸다.
이게 첫 번째 실수였다.
그런 고민이 들었을 때, 난 말이라도 먼저 꺼냈어야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 H군이 한 마디 툭 던진다.
" 형님, C가 계산한 거 형님도 반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 역시 그걸 염두해 두고 있었고, 내가 언제 그 얘기를 꺼내나 지켜보고 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내가 아무 언급없자 한 마디 한 것이다.
입맛이 썼다.
그가 내게 그 말을 던졌다는 것은, 이미 그는 내가 그 돈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인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사람이 상대방 됨됨이 규정하는 것은 참으로 미묘하고도 속절없는 면이 있다.
이미 그렇게 그에게 생각되어진 이상, 거기다 대고 내가 ' 나 그런 인간 아니다'라고 하는 거야 말로 정말 모양 빠지는 일이다.
어쩌랴, 그간 그가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지를 보인 내 탓일 밖에.

그런데 난 거기서 한 가지 실수를 더 해 버렸다.
" 응, 그러게. 지금 잔돈이 없으니 내 다음에 C씨에게 챙겨 줄게."
라고 대꾸한 것이다.
나야 정말로 잔돈이 없었고, H군가 그 얘기 했다고 냉큼 꺼내서 주는 것도 왠지 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대꾸했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잔돈이 없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서는 '돈이 없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받아 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 마자 그 자리에서, 정확히 절반을 주느라 잔돈 계산하느니 자투리 정도는 그냥 큰걸로 퉁쳐 주고서, 자투리는 줄 필요 없다고 했어야 했다.
거기다 H군에게 ' 어련히 알아서 줄까봐 그런 소릴 하냐. 날 그런 인간으로 본 거 같아 기분 나쁘다.'고 따끔하게 쏘아 주었어야 했다.
어차피 H군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낸 이상, 어떻게 행동하던 돌이키긴 힘들테지만 존심이라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려 그렇게 화를 낼 기회는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고, 난 H군에게 그런 인간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으로 그 날의 만남은 끝이 났다.


다음 날 나는 로비에서 C씨에게 전화를 해서 만났다.
그는 영수증을 보여줬다.
영수증에는 한국돈으로 14만원 정도가 찍혀 있었다.
20,30만원도 아니고 고작 7만원 정도의 돈에 나는 그런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절반에 조금 넘는 돈을 주니, C씨는 한국돈으로 10원 단위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다시 돌려주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다는 C씨...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갑에서 영수증을 꺼내어 내게 내미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하는 품이 애초부 혼자 부담할 마음은 절대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인간은 왜 자기가 혼자 몰래 계산해 버리고 다들 있는 자리에서 그 얘길 했을까? 설마 이런 저런 계산 하에 그런 행동을 한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정말 경계해야 할 인간이며, 고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나를 배려하지 않은 무신경한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어쨌든 난 이번 일로, 술자리 계산을 몰래 혼자 해버리는 행동이, 상황에 따라서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모은행의 부장, 과장급인 두 사람과 C씨가 가깝게 어울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으며, 그들이 내게는 뭔가 벽을 세우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뒷배가 낮은 사람과는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 그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나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들은 모대기업 파견 정도가 아니면 말도 잘 섞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C씨에게와는 달리, 그들이 내게 골프를 같이 치자는 제의를 하는 일도 없다.
소탈한 성격의 동갑인 L만 가끔 내게 제의를 하곤 한다.

그렇다.
C씨는 눈치껏 알아서 혼자 계산하고 안주도 선뜻 나서서 챙기는 싹싹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나는 정확히 절반의 비용을 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나는 그 때의 등장인물들을 일일히 찾아가서 나도 다 계산했다고 해명하고 다녀야 할까?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드라마에만 있는게 아니다.
C씨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어떨지 몰라도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관점에서는, 그의 그 아름다운 행동은 나의 평판을 속절없이 강탈해간 강도질일 뿐인 것이다.
별 의도가 없어도 서로 관계되는 자체가 악연인 존재는 그리 드물지 않은가 보다.
세상이 다 그런거다.
왜 오해가 생겼는지 뻔히 앎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삭이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저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할 밖에.

그 후로도, C씨와는 여전히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이다.
악의 없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볼 때 마다, 난 아직도 궁금해진다.
그의 행동은 계산된 것이었을까...?


에필로그 1.
내 골프의 첫 스승 H군은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대기업에 특채로 입사하여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박사 학위에 능숙한 영어 실력, 의사소통은 무리 없을 정도의 인니어 실력을 갖추고 대인관계에도 요령있는 그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젠가 그가 출장 겸 인니에 온 적이 있었다.
인니에 온 사실, C씨와 골프약속이 있는데 골프장비가 없다며 빌려 주었으면 한다는 얘기들은 모두, 한 번도 통화한 적 없었던 C씨의 전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빌려 주었지만, 난 H군에게 고맙다는 전화 한 통화 받지 못했다.
(C씨와의 통화 때 H군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저 빌려 갔다가 다시 가져다 준 C씨가 말해준, '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라.'는 얘기가 전부였다.
만약, 그런 일이 또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H군이 다음에 또 C씨를 통해 빌려달라고 하면, 아마도 난 또 빌려 줄 것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 내가 그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갚는 일이다.
내가 씁쓸하게 느끼는 것은, 나는 그에게 바라는 것이 없고, 오히려 그저 그에게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쁘게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다는 마음 뿐이라는 것을, 그가 알 리도 없고 그에게 알릴 기회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인생의 셈법과 나의 인생의 셈법은 다르니까.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내가 그에게 뭔가 갚을 기회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별 필요도 없는 호의 억지로 떠넘기고서, 이제 갚았다고 자위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ㅋㅋ
이런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