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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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1. 만남

케빈을 처음 만났던 건 10년 전, 리뽀 찌까랑의 한 이자까야에서였다.평소 아주 가깝게 지내는 선배형과 둘이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자리였는데, 선배형이 케빈을 데려왔다.똑똑한 친구인데 일이 잘 안풀려서 좀 어렵게 지내고 있다며, 서로 알아두면 도움이 될까 해서 불렀다고 했다.선배형은 성격이 까칠했고, 명석하지 못하거나 셩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사적으로 벽을 세우는 사람이다. 나와는 마음이 맞아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시간 맞으면 두세 번일 정도로 자주 만났지만, 모르는 사람을 소개시킨다고 데려온 적은 처음이었다.꽤 마음에 들었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캐빈과 인사를 나눴다. 케빈은 친화력이 매우 뛰어났다. 나보다 세 살 밑이었는데,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말을 놓지 않는 내가 처음 만난 그 날 호형호..

소오~설 2024.10.13

인니 주택 임대 계약할 때 에어컨과 온수기 팁

한국인이 살았던 집이 아니라면 에어컨이 부족하거나 온수기가 설치되지 않은 집이 꽤 많다.그럼 흥정 과정에서 집주인에게 설치를 요구하는데, 간혹 설치해주는 대신 집세를 조금 더 올려 받겠다는 집주인도 있게 마련이다.1년치 집세는 백만 단위에서 많게는 천만 단위이다 보니, 올려 받겠다는 집세도 보통 20~50만원 정도 한다.50만원을 12개월로 나누면 4만원 정도 하니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2년 이상 살 거라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임대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손해는 더 커진다. 그럴 경우 직접 구매해서 설치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에어컨은 30~50만원, 온수기도 비슷한 가격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 살 수 있다.사는 동안 잘 사용해서 본전 뽑았고 이사하는데 짐 늘어나는 거 귀찮으면 그냥 두..

대학 간판과 선입견

좋은 대학이 아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이다.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시설 좀 후지고, 교수진 구려도, 간판 그럴듯해 보이는 곳이다.전국 탑 클라스 학과가 아닌 이상, 대학 공부라는 건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난 제법 유명한 대학의 그럴듯한 학과를 나왔다.원서를 넣고 합격한 대학들 중 끌리는 곳은 모대학 컴공과였는데, 거긴 사람들 인식에 수준이 떨어지는 대학이었다.제법 유명한 대학엔 원서 써넣긴 했지만 된다는 생각 안했었다.예비합격 400번대 받았는데 그게 되버렸다. 젠장...안유명한 대학 컴공과는 내 점수보다 예상 커트라인이 40점 낮았으니 당연히 합격했다.컴공과 가려했는데 부모님이 유우명한 대학 가는 게 어떻겠냐 권하셨다.그래서 유명한 대학 갔다. 당시 난 진로에 대한 자기 확신이 흐릿했..

단상 2024.10.07

사람 냄새고 뭐고 재래시장 싫을 수도 있지 뭐

재래시장은 흥정이 기본이다.단골이나 흥정 잘하는 사람에게 싸게 파는 만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비싸게 받아서 충당해야 한다.그게 당연한 구조다. 재래시장은 그러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 간보는 것도 당연하고, 만만하면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나쁘다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구조고, 그래서 그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재래시장 상인들에겐 그게 그냥 당연한 거다.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은 거고 써붙인 가격이 원래 가격이고, 그보다 싸게 팔아서 손해 보는 건 장사꾼 마음이다?싸게 팔면 손해고 비싸게 팔면 이득인 건 장사가 아니다.싸게 팔아도 이득이어야 하고, 비싸게 팔면 큰 이득인 게 장사다.재고 떨이가 아닌 이상, 손해보고 팔 이유가 없다. 안팔고 말지.써붙인 가격은 원래 가격이 아니고, 비싸게 파는 가격일 뿐이다..

단상 2024.10.02

흙을 밟을 일이 없으니 구두닦이가 사라졌다

아주 예전엔 구두닦이가 그리 드물지 않았다.비교적 최근까지도 구두 수선점이란 이름의 조그마한 가건물이 길가에 드문드문 있었다.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인건비 상승, 저렴하고 품질 좋은 기성화의 보편화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길이 좋아졌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싶다.어디 잘못 밟아서 망가질 일도 적고, 흙길이 없다 보니 먼지나 진흙으로 심각하게 더러워질 일도 거의 없어서 급히 구두를 닦아야 할 경우가 없는 거다.

단상 2024.09.29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무시한 죄

맞선임이 군복 다려주고 군화 불광내주는 전통이 있었다.정말로 괜찮으니, 해주지 말라고 했다.군인은 뭔 짓을 해도 군인일 뿐이고, 군복도 뭔 짓을 해도 군복일 뿐이다.어떻게든 꾸며 보려는 게 너무 찌질하게 느껴졌다.다리지 않은 군복, 구둣솔로 슥슥 문지른 군화 신고 첫 휴가 나갔고, 집에 가자마자 벗어 던졌다.정말 괜찮냐고 몇 번 더 물어보던 맞선임의 표정이 기억난다.안해줘도 되니 좋다는 표정은 분명히 아니었다.내가 얼마나 재수없었을까. 맞후임에게도 마찬가지였다.무슨 짓을 해도 군바라리고. 나도 그냥 나갔다고 했다.내가 얼마나 괴상한 놈으로 보였을까. 허접쓰레기 하찮은 거라도, 누군가에겐 엄청 대단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그걸 하찮게 취급했으니, 얼마나 재수없었을까.하지만 난 도저히 그걸 참을 수 없었다. ..

단상 2024.09.26

Shin Ramyun Spicy Chiken 치킨 신라면

닭육수 베이스 신라면. 1,600원 정도.멀쩡히 잘 팔리는 라면을 닭육수 버전으로 냈다는 건 무슬림을 타겟으로 잡았다는 의미일테니, 당연히 할랄 Halal (이슬람 교리 상 허용) 마크가 찍혀 있다.그 옆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찍혀 있지만 포장지엔 태국 문자가 가득한 것으로 보아, 중국이나 태국 공장에서 제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농심에서 제조했다고 찍혀 있는데... 어째 곧이 곧대로 믿어지지 않는다.그 농심이? 제조 비용 쎈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전세계에 뿌리는 신라면 대부분이 중국 공장에서 나오는데?뭐 딱히 중요하진 않은 문제다. 신라면 오리지널과 같이 스프는 두 개.근데 뜬금없이 일본어가 찍혀있다.포장지는 태국어, 스프는 일본어. 멋진 혼종이다.건더기 스프는 콩고기 알, 당근과 시금치 비스..

고작 노력 따위로 성공할 수 있다니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사람 한두 명 볼 적에,열심히 살았는데 실패한 사람은 수두룩하게 봤다. 실패해도 끊임없이 도전해서 결국 성공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실해해도 끊임없이 도전해서 주변 사람까지 다 거덜낸 사람이 훨씬 흔하다. 복권을 사지 않는 사람은 당첨될 수 없듯,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맞는 말이다.그 잘난 성공이 복권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세상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닌가.고작 노력 따위로 성공할 수 있다니. 운이 드럽게 좋으면 노력 안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운이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

단상 2024.09.19

Nissin Irvins Salted Egg 볶음면

그럴듯한 포장 디자인, 실패 거의 없는 가성비 브랜드 닛신, 달걀 엄청 좋아하는 취향이 겹쳐서 샀다.가격은 600원 가량.사전 지식 없이 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어빈스 Irvins 가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생선 껍질 튀김 브랜드라고 한다.생선 껍질 튀김이라니... 알았다면 안샀을듯. 베이스 시즈닝, 향미유, Salted Egg 토핑면은 납작면이다. 맛있다.비린내 우려했는데 전혀 없다.살짝 태운 명태포의 훈연향 비슷한 향이 은은하게 나는데 Salted Egg의 감칠맛과 기가막히게 잘 어울린다.이런 식으로 맛있을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약간 짠편이지만 감칠맛이 워낙 좋아서 덮어진다. 5점 만점에 5점오랜만에 일부러라도 살만한 베스트 제품이 추가됐다.호불호 '거의' 없을 맛이니 추천.기회가 되면 어빈스 생선 껍..

뭘 자꾸 끄적이는 이유

내 안에 있을 적엔 분리할 수 없었던 것이 글로 쓰면 분리가 됩니다. 내 안의 것을 보다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다보면 생각도 정리됩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글 속의 나는 절반 쯤은 나고, 나머지는 남입니다. 글 속의 인간 군상,기쁨, 슬픔, 분노, 실망은 내게는 특별하지만, 세상 널리고 널린 흔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찬찬히 읽다 보면 지우거나 고치고 싶은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스스로 대견한 부분입니다. 지워도 좋고, 강조해도 좋습니다. 어차피 나는 들여다봤고, 그렇다는 걸 압니다.글을 마치면 한결 낫습니다.상황은 해결된 것 없지만, 있지도 않은데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것은 정리가 됐습니다. 마침내 남들도 볼 수 있게 ..

단상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