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

BIPA 졸업식 2009.12.12

명랑쾌활 2010. 2. 17. 00:17
어느덧 졸업식입니다.
ABCD도 모르고 들어와서, ABCD는 할 줄 알게 됐네요.
졸업식 초대장이 한 장 왔길레 가족에게 주는 건가 보다 했는데, 그게 자기 거였더군요.
아마도 음식이 한정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ㅂ-

저기 주욱 늘어선 사람들은 상급 졸업자들입니다.
돈만 내면 들어오는 일개 어학당입니다만, 상급을 졸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상급 졸업자에게는 인도네시아 최고 국립대학인 UI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등록금은 다 내야죠.)
게다가 속어까지는 몰라도, 정식 언어로서의 인도네시아어 문법이나 문장은 어지간한 현지인보다 나은 수준일 겁니다.
참고로, BIPA는 합격 기준에 미달되면 가차없이 낙제입니다.
중급 졸업 시험 떨어져서 다시 듣는 사람들 드물지 않습니다.

초급 1~3등 수상자 시상식

초급, 중급, 상급 반에서 각각 1~3 등까지가 시상됩니다.
내심 저도 노렸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올A가 아니면 안됩니다.
전 B+ 하나 있군요. (은근 자랑질 ㅋㅋㅋ)

초급반 1등은 일본인, 2등은 한국인, 3등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초급반 수상은 사실 불공평한 면이 있습니다.
중급 들어도 될 만한 수준도 얼마든지 초급 코스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초급 학생들의 실력은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같은 반에도, 왜 초급을 들을까? 싶을 정도로 학기 초반부터 발군인 학생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만 한 것이 예전에 여기서 살았다거나, 오래 사귄 현지인 남자친구가 있다거나 하듯이, 잘 할 만한 이유들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사진 속에 폼잡으며 소감 발표하는 저 1등인 일본인 친구는 그런 변명을 한 방에 날려 버립니다.
미쯔비시 다니는 친구인데, 학기 초에는 발음 엉망에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거든요.
1등 소감 발표하는데 그 유창함에 정말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친구의 1등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미쯔비시는 인니에 파견오는 직원을 무조건 BIPA에 다니게 하는데, 1등을 하지 못하면 원만한 직장생활은 힘들다고 합니다.
처음 BIPA를 다녔던 지부장이 1등을 한 이래로 전통이래나 뭐래나...
역대로 BIPA 1등은 거의 일본인이며, 미쯔비시는 들어왔다 하면 거의 1등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확인에 필요한 표본은 적습니다만, 지금껏 BIPA 졸업 선배에게 들은바 그렇습니다.)

중급 수상자 시상식
중급은 1,2등이 일본인, 3등은 네덜란드인입니다.
1,2등이야 안면이 없어서 모르겠고, 저 네덜란드인 친구는 원래 초급에 우리 반으로 온 친구죠.
2주 정도 수업 듣다가, 수준이 낮다고 테스트를 거쳐 중급으로 편입한 친구입니다.
그런데도 당당히 3등을 하다니... @_@
키 크고, 잘 생기고, 착하고, 똑똑하고, 검소하고,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한 훈남입니다.
결점이라면 이미 현지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 정도?(부인은 이 당시 임신 8개월).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처가에 얹혀 살고 있고, 어서 빨리 취직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말하던 얼굴이 선하네요.
제가 중급을 듣는 지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중급까지만 딱 듣고 그만 둔 모양입니다.
모쪼록 지금쯤 취직해서 여엿한 가장이 되어 있길 바랍니다. :)

한가지 특이한 것은, 제가 만난 네덜란드인들은 최소 3개 국어는 하더군요.
(보통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는 약간 다름.)
어학에 뛰어난 국가라고나 할까요?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선생님의 책 내용에 따르면, 국가 형성 때부터 일치감치 무역으로 국가의 수입을 창출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졸업식의 하일라이트 상급 수상자 시상식
1~2등은 일본인, 3등은 한국인입니다.
3등 수상한 김진호 씨는 (좋은 일이니 이름 밝혀도 되겠지요) BIPA 비공식 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던 친구입니다.
다행히 한국인의 체면을 살렸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급우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사람에게 주는 공로상도 수상했지요. :)

매우 매우 유창하게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1등 일본인.
역시나 미쯔비시 회사원입니다.
교수들과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지, 호응이 대단하더군요.
우연한 기회에 말 섞을 기회가 있었는데, 약간 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우웅... 내가 최고! 일본 최고! 천황 폐하 만세! 뭐 이런 느낌?
친해보자고 말 건 것도 아니었고, 지가 잘나던 거만하던 별 관심도 없었기 땜시 기분 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ㅋㅋ

의외로 건방진 사람들 많습니다.
미국인은 태생적으로 거만하구요, 한국인 중에도 좋은 회사 다닌다고 무지 거만한 사람들 있지요.
무슨 하청 관계도 아니고, 지가 잘나봤자 나랑 쥐톨 만큼도 상관 없는데 깝짝 거리는 한국인들 보면 무지 같잖습니다.
결정적으로, 전 그 사람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서 비벼서 그 사람이 나 한 자리 준다고 노력해봤자, 그 사람 회사 취직할 스펙도 안되기 땜시 관심 조차도 없거든요. (자랑은 아닙니다. 씁쓸하네요. ㅋㅋ)
확 한 대 쥐어박아 봤자, 고소하는 것 이외에 나한테 엿 먹일 방법도 없으면서 뭘 그리 거만한지... ㅉㅉ

반둥 여행 편에 등장했던 일본인 친구 히데키.
차암 맘에 들어라 하는 친구입니다.
여행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재수 없다는 쪽발이 스타일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일본 친구들은 선량하고 좋습니다.
깊게 사귀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의라는 선을 긋고 사귄다면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낫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열에 아홉은 경우가 없는 허접들인데, 일본인들은 허접 조차도 기본적으로 경우를 안다고나 할까요?

묘한 옷을 입고 행사 진행 보조를 하고 있더군요.
자원한거냐고 물으니 제안 받았다고 대답합니다.
흠... 저한테는 왜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요?
어차피 거절하겠지만, 그래도 제안이 없으니 그건 그거대로 서운하군요. ㅋㅋ

졸업 축하 아룸바 공연
악기는 전통 악기입니다만, 곡은 의외로 마이클 잭슨의 Beat It 이라던가 현대곡이어서 즐겁게 들었습니다.
지금 보컬을 하고 있는 청년은 한국인인데, 현지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인 학생입니다.
떠도는 얘기 중엔, 시급 4만 루피아가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과외 잘하는 여학생이, 이 친국가 과외 받는다고 하니까 3만으로 깎아 줬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ㅋㅋ
비니를 쓸 때도 있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에서!) 패션 감각도 뛰어나고, 요리도 잘하고, 인니어도 잘하고, 잘난척 나대지도 않는 갠춘한 청년입니다.

다만 공연 도중에 노래를 부르면서 객석의 친한 친구들을 데려다 개인적인 기념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는 좀 민망하더군요.
개인 콘서트도 아닌 공식 행사에, 동료들은 묵묵히 반주하고 있는 상황에서요.
빛나는 젊음의 자유분방함에 제가 너무 고리타분한 걸까요?
하지만, 적어도 객석의 반응도 저 순간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뒤를 이어 가믈란 공연
초급 3등을 한 일본인 친구가 돋보이던 공연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타악기 연주를 했었다던데, 제법 근사하더군요.

그나마 현대적인 감각의 아룸바에는 한국인들이 많은 편이지만, 인니의 전통 문화와 관계된 특별 활동에는 일본인들이 많았습니다.
하나 비뚤게 보면 나머지도 비뚤어 보이는 걸까요?
전 이런 사실 조차도, 인니에 오는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지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본 여자들은 제법 있습니다만, 한국 여자는 (적어도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전혀 글로벌하지 않아요.

뒤를 이어 가믈란 반주에 맞춘 전통 춤 공연
여기서는 상급 1등을 한 일본인 친구가 돋보였습니다.
춤 자체는 뭔가 흥미를 찾을 수 없는... 그냥 원주민 춤이었습니다.

아하하... 중급 3등을 한 네덜란드 청년 바스티앙입니다.
사진을 잘못 찍은 관계로 무슨 식인귀처럼 나왔습니다만, 자알 생긴 훈남입니다. ^^;
수줍으면서도 진지한 그 표정,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초급 때 우리 반 가르쳤던 교수님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Ibu Lia.
명랑한 에너지와 명석함 덕택에 과목 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문법 시간이 즐거웠었습니다.
제가 원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티나게 호감을 표시하는 편인데요, 그 때문에 같은 반 몇몇 분이 괜스리 이어주려는 시도를 했었지요.
묘한 것이, 전 이 교수님 처음 봤을 때부터 이미 결혼했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느꼈었기 때문에, (예쁜데 착하고, 귀엽고 명랑한 아가씨는, 원래 일찌감치 그 빛나는 부분을 알아보는 남자가 있게 마련이죠. ^_^) 괜히 헛물 켜서 분위기 묘해지는 상황 없이 적당히 무난하게 넘어갔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요.
남녀 관계라고 해서 꼭 둘 만의 어떤 특정한 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말입니다.
(제가 이상한 걸까요? ^^;)
...그래도 현지인 아가씨를 사귀게 된다면, Ibu Lia 같은 아가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

지금 중급 과정에서는, 우리 반 Kosa Kata를 담당하게 되어 다시 만나 즐겁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요. :)

인니의 행사 음식은 대부분 Prasmanan 입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부페 형식이라고 할까요? (부페가 우리 말이라고 보기엔 그렇습니다만. ^^:)
의외로 질도 좋고 맛도 좋았습니다.
방문학습 때도 느낀 거지만, 외국인 상대라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흡족한 수준의 음식들이었습니다.
다만, 나름 인니에서는 신경 쓴 수준인 저 비닐 봉다리 중국 귤은 당최 별로더군요.
역시 오렌지나 귤 종류는 우리나라 감귤이 최곱니다.
한 번인가 장 보러 가끔 가는 Detos의 대형마켓에 제주 감귤이 나왔었는데, 역시나! 정말 맛있었습니다.


BIPA의 총 재학생 중 한국인의 비율은 이미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다른 수치는 그리 비례하지 않는군요.
9명의 수상자 중 일본인 6명, 한국인 2명, 네덜란드인 1명.
아룸바, 가믈란, 전통 춤 공연 등에 출연하는 사람들 역시 외국인에 비해 한국인이 현격히 적습니다.
BIPA 상급 졸업생 국가 비율 역시 그렇구요.
그러는 저도 이런 수치에 그닥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아니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사고는 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미니 스커트, 반바지 입었다 하면 한국 사람, 어깨 드러나는 상의 입었다 하면 한국 사람, 남자가 나시티 입었다 해도 한국 사람, 모자 쓰고 수업 받는 것도 한국 사람...
다들 오리엔테이션 때 삼가하라고 공지하는 복장입니다.
외국 여자들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죠?
가슴 파인 옷은 입을지언정, 입지 말라는 옷은 안입습니다. (가슴 파인 옷 금지 조항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국가 호감도는 한국이 훨씬 높습니다.
일본은 적대적인 편이구요. (인니도 3년 정도 정복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겪었던 현지인들의 인식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습니다.
저부터도 같은 한국인인게 부끄러운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며칠 전 등교길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저 앞에 완전 핫팬츠보다 아주 약간 긴 반바지를 입은 여학생이 걷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제법 시선 좀 쏠릴만할 정도로 과격하게 짧았습니다.
하얀 피부의 다 드러난 허벅지는 인니에서는 참으로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지나가는 뒤편으로 세탁소 앞에 담배 피우며 앉아 있던 현지인 남자가, 그야말로 뼈채 씹어먹을 듯한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군요.
절대로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밤에 인적만 드물었으면 사고 쳤어도 몇 번을 쳤을듯한 눈초리와 표정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냐고.
패션은 자기표현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도대체 현지 남자들이 도대체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쪼록 BIPA 수강생 과반수 이상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랍니다만...
글쎄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