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풍경들과 추억들] 2.

명랑쾌활 2020. 12. 7. 10:52

잔업이 없는 날은 찌까랑에 가서 지인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퇴근을 해도 공장 내 기숙사로 출근을 해야 하는 답답한 생활에, 고작 두어 시간 만나려 왕복 3시간 거리를 달리는 일을 감수하곤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궁하면 뭐든 어떻게든 하게 마련입니다.


퇴근길 정체를 피해 강가 따라 이어진 샛길로 다녔지요.

덕분에 시골 마을 아름다운 풍경을 참 징하게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봉제 공장이 들어선 깡시골은 출퇴근 시간엔 일대 교통이 마비됩니다.

출퇴근 시간을 30분 단위로 세 번 나누어 조정했다 해도, 좁은 시골길이 한 번에 몇 천 명씩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감당할 수 있을리 만무합니다.


풍경이 좋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좌판도 들어섰습니다.

오후 3시쯤 열었다가 저녁 6시면 철수합니다.

가로등도 없어서 해 떨어지면 깜깜해지거든요.


한가로운 풍경을 보면 낭만적으로 보입니다만, 돈도 없고 갈 데도 마땅치 않아서 이런 곳에 있는 겁니다.

여행자의 시선과 주민의 시선은 다른 법이지요.

그나마도 젊은 남녀가 해 떨어지고 나서도 연애질을 한다고 해서 단속반이 돌아다녀 이런 풍경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원래는 이대로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다시 공장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 처지가 우울합니다.


그 후로도, 공장 내 기숙사로 퇴근했다가 나와서 올려다 본 하늘 풍경들은 우라지게 멋집니다.

감옥살이를 하면 더 자주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후 더 이상 이 풍경을 볼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오게 됐거든요.

다른 자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정말 손톱만큼도 없었습니다.

기쁜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귀국 비행기에서 본 대만 상공의 번개. 시간상으로 아마도 펑후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귀국길엔 별 고민 없었습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정도 곤란없이 지낼 정도로 저금은 꽤 해뒀거든요.

한국에서 여유있게 몇 달 쉬고 부모님 얼굴도 실컷 뵙고, 다시 인니에 취업해서 나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버릇이 들었는지 한국에서도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 봤습니다.

이렇게 높고 푸른 하늘은 인니에서는 본 적 없습니다.

인니의 하늘은 낮고 넓은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