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문화의 차이 - 누구 책임일까?

명랑쾌활 2020. 12. 16. 09:25

회사 담장 바깥쪽에 자란 대나무들이 옆으로 늘어지면서, 담장이 파손되었습니다.

담장 바깥쪽은 사유지인 논입니다.


인니는 이런 경우, 논 주인에게 담장 수리비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법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서법일 뿐이지만, 만약 재판을 건다 해도 그렇게 판결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회사 맘대로 대나무의 넘어온 부분을 자를 수도 없습니다.

맘대로 자르면 논 주인의 재산을 파손한 셈이 됩니다.

반드시 논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 잘라야 합니다. 그것도 피해자인 회사가요.

개인 대 개인이라면 쌍방이 좋게 좋게 서로 도우며 자를 수도 있지만, 회사 대 개인은 무조건 회사가 양보해야 합니다.


'양해'를 구하는데, 상대방이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

회사 담장 너머 옆집 마당에 있는 바나나 나무가 웃자라, 마른 잎이 회사 구역에 자꾸 떨어져서 지저분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나나 잎이 떨어진 것도 낙엽이라는 표현이 맞긴 한데, 어째 좀 어색하다.


그래서, 현지인 총무에게 옆집 주인에게 저거 해결하라고 컴플레인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후쯤 되어 청소 담당 직원들이 옆집에 가서 바나나 나뭇잎을 쳐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나중에 총무가 와서 제게 슬쩍 얘기합니다.

"사실은 집주인이 저거 쳐내는 거 동의해주는 대신 돈을 요구해서 제 사비로 20만 루피아 줬습니다. 그 돈 달라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그냥 알려만 드리는 거예요."

그 당시의 전 인니 생활 초기라, 한국식 사고방식이 당연히 옳은 기준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시기였습니다. 

전 황당해서 되물었습니다.

"자기 바나나 나무가 우리 쪽에 피해를 준 건데 돈을 달라고요? 인니는 원래 그런 거예요?"

"아니요. 보통은 잘 말하면 그냥 동의해 줍니다. 근데 나이 많은 시골 사람은 종종 그러기도 해요."

"아니 그게 허락 받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잖아요? 당연한 거잖아요, 피해를 줬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 인니는 그렇게 하는 게 예의예요."

예의라니까 납득은 갔습니다. 서로 기분 상하지 말라고 있는 게 예의니까요.

"그래도, 돈 달라는 건 좀 너무하네요,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명분은 있어야 할 거 아녜요.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던데요?"

"그냥 '나는 돈이 없다' 그랬습니다." (가난하다는 뜻)

그 상황이 황당했는지 총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저도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돈을 줬어요."

저도 참 황당하긴 했는데, 화가 나기 보다는 웃겼습니다.

"뭐 저라도 방법이 없겠네요. 시골 할아버지가, 자기는 돈이 없으니 돈을 달라라고 하면..."

그렇게 웃으며 헤프닝으로 넘겼고, 총무가 사비로 지불한 합의금(?)은 당연히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무의식적으로 한국식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인식했던 고정관념이 깨어져 갑니다.

20~30년을 살아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고정관념이란 건 너무 당연해서 생각할 필요조차도 없다고 여기는 심리이기 때문에, 돌이켜 생각해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런 인니인은 후안무치하고 경우를 모르는 사람이겠지요.

한국의 정서나 문화로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긴 인니입니다.

이 나라에는 이황의 주기론, 이이의 주리론도 없고, 오성과 감나무 이야기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