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19] 1/3. 음식

명랑쾌활 2020. 1. 20. 10:28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글들은 거의 대부분 몇 달, 간혹 1년 넘게 묵혔다가 올립니다.

일필휘지로 글을 완성시키는 재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래 글도 2019년 초에 방문했었을 때 사진들입니다.

한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별것도 아니겠습니다만, 인니에 살면서는 접하기 힘든 음식이 뭐가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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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는 세계 최대의 섬나라인데, 인니 한식당의 활어회 메뉴는 비싸다.

회를 먹지 않는 식문화, 그에 따라 활어회용 어류 양식을 하지 않는 점, 그리고 유통 인프라 후진성, 이 3박자가 겹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활어회용 어류 양식을 하지 않으니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 받을 수 없고, 횟감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싱싱한 생선을 공급 받으려면 따로 유통망을 구축해야 하니 비용이 더 들 수 밖에 없다.

덕분에 모든 활어회는 당연히 자연산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양식과 자연산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입맛이 예민한 것도 아니니 의미 없다.


사실 난 양식 어류가 자연산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육 환경, 먹이가 다르니 맛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게 반드시 어느 쪽이 낫고 어느 쪽이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연산의 맛을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과 다른 걸 감점 요인으로 보는 건 애초에 우열의 비교가 아니다.

그건 마치 서양 문화와 에티켓을 '기준'으로 삼고, 그와 다른 풍습을 미개하다고 하는 거나 다름 없다.

단순히 '가둬 키웠다는 점'이 감점 요인이라는 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비료 따위 없이 야생에서 자란 쌀이나 과일이 더 맛있어야 하고, 야생에서 자란 동물이 더 맛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야생 멧돼지 고기를 일반 돼지 고기보다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야생 멧돼지 특유의 맛과 향을 자주 접해 익숙하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생 멧돼지 고기를 접하면 질기고 노린내가 난다고 느낄 것이다.

자연산 생선을 자주 접하고, 자연산만의 맛과 풍미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호하는 건 동의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막연히 그저 자연산이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건 그저 섣부른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산이 비싼 이유는 더 맛있어서가 아니라 희소성 때문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세뇌되어 판단력이 흐려지기 쉬운 세상이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

...회 하나 갖고 별 생각을 다한다. ㅋㅋ


산낙지는 인니의 한식당에서는 흔한 메뉴가 아니다.

인니에서 잡히는 건 신선 유통이 어렵기 때문이고,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수산물은 꽁꽁 얼려야 하기 때문이다.


짝태는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비싸다.

한국 시세의 거의 세 배 이상을 받는다.


조개탕은 드물진 않은데, 이렇게 신선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개는 보기 어렵다.


자카르타 지역 몇 곳에서 시카고 피자를 취급하긴 하지만, 피자 하나 먹자고 편도 2시간 넘는 거리를 갈만큼 부지런하진 못하다.

인니는 낙농업이 아주아주 저개발 상태라 치즈 품질이 떨어지고 비싸다.

저정도 품질의 치즈는 수입을 해야 하고, 저정도로 풍부하게 쓰려면 한판에 원화로 3만원도 넘을 거다.


풍토가 다르니, 한국의 '막 끓인' 김치찌개 맛을 구현하기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중국산 김치일수도 있겠지만, 인니에서 중국은 멀다.


냉동으로 공수해오기 때문에 인니의 한식당에서는 꼬막찜도 대부분 양념해서 나온다.

아, 인니에도 꼬막 있다.

인니는 한국에서 잡히는 거의 모든 조개류가 있고, 한국에는 없는 조개류도 많다.

유통망이 취약할 뿐이다.


인니 한식당의 뼈다귀 감자탕은 살코기가 부실한 편이다.


이슬람 국가라 양고기가 흔할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 염소 고기를 먹는다.

정육 유통 수준이 낮은 편이라 이렇게 깔끔한 고기를 보기 어렵다.


인니에도 다슬기가 있다.

된장에 삶은 다슬기가 가끔 밑반찬으로 나오긴 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인심 좋게 넉넉히 나오진 않는다.


자판기 커피 역시 없다.

자판기 자체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데, 치안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일 거다.

인니는 아직도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 종료하면 셔터나 철창 덧문으로 문단속을 한다.


인니의 치안이 불안하다고 하면, 보통 한국인들은 무슨 밤만 되면 폭도들이 쇠파이프 들고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광경을 연상하는데, 설마 그렇기야 하겠나.

견물생심이라고, 문단속이 허술한 걸 보면 나쁜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 비해 치안이 좋지 않다는 건데, 한국의 치안 수준은 전세계 최정상급이다.


한국에 가지 않으면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집밥이다.

먼 나라에서 자식이 찾아왔다고 한 상 떡벌어지게 차린 음식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집밥.

한국에 살던 시절엔 매일매일 심상하게 먹었던 그 흔하디 흔한 집밥.


평범함은 흔해서 평범하다.

흔하지 않다면 귀해진다.

당신들의 그 지긋지긋하고 지루한, 반복되는 한국의 일상이란 게 내겐 그렇다.

별것도 아닌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케찹 복음, 밀폐용기에 보관하며 몇날 며칠 반찬 궁할 때 만만하게 먹는 살짝 구운 김 따위가 내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