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19] 2/3. 거리

명랑쾌활 2020. 1. 27. 10:03

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글들은 거의 대부분 몇 달, 간혹 1년 넘게 묵혔다가 올립니다.

일필휘지로 글을 완성시키는 재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래 글도 2019년 초에 방문했었을 때 사진들인데, 그 중 한국... 하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리워 하는 거리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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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니 이제 본가라고 해야 할 곳이 있는 아파트 북쪽

밤사이 살짝 내린 싸락눈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여름 즈음이면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펜스


한국에 가면 거의 매일 저녁 출근하다시피 하는 철산 상업지구

80년대엔 배추밭이었던 곳이다.

지각할 것 같으면 밭을 가로질러 뛰어 갔던 기억이 난다.


주공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에 '상업용 건물 허가 지역'으로 구획한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 다른 유명한 음식점 밀집 지역이 종로3가라던가, 피맛골, 장충동, 신림 오거리, 연신내 등등 거리나 동네 이름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 곳은 '철산 상업지구'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름 그대로 구획 지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상권이다.

그 후 구로공단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속속 주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다 안양천 건너 구로공단이 가동할 당시, 구로동과 가리봉동, 신림동에 밀집한 열악한 주거 환경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양호한 방을 찾아 온 미혼의 공장 근로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상권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리고, 압구정에 식상한 오렌지족 일부가 상대적으로 촌스러우면서도 젊고 활기찬 이 곳에 찾아 오면서 상권이 확 떴다.

뭐 좀 적나라하게 말해, 미혼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많은 곳에 자연스럽게 남자들도 꼬이는 게 수순이고, 대개 그런 곳은 남자들이 짝짓기 구애 춤이라도 추듯 미친듯이 돈지롤을 하게 마련인데, 철산 상업지구가 그런 케이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조로 흥했을 당시의 철산 상업지구는 회식하러 떼를 지어 다니는 직장인들, 퇴근 후 가족과 외식하러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젊은 부부, 시골에서 갓올라와 아직은 풋풋한 20세 언저리의 청년들 등이 어우러진 건강한 분위기였다.


이후 구로공단 업체들이 시화안산 공단으로 점차 옮겨 가면서 사양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 군데나 있었던 나이트장(클럽)은 점점 줄어드는 젊은 고객층을 대신해 중년 고객층을 끌어 들이려 스탠드빠로 전환했다.

거기에 과도하게 올라간 임대료와 맛물려 젊은 층 상대의 싸고 맛있는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철산 상업지구는 밤이 되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기에 어쩐지 꺼려질 정도로 요상하고 천박한 분위기가 되어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다.


이제 다시 서서히 회복되어 분위기도 더 이상 칙칙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될 정도로 괜찮아졌다.

원래부터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구획된 지역이라 멀리서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급격히 빠져도 기본 수요는 받쳐주는 곳이다.

다만, 한 번 올랐던 임대료 거품이 빠지긴 어렵기 때문에 예전의 저렴한 원조 맛집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 자리를 거의 대부분 프랜차이즈 업소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초창기부터 같은 자리를 지킨 가게는 이제 단 한 곳, 주차장 2층 야구장이 유일하다.


딱히 예전의 최고조로 흥했던 때로 돌아가길 바라진 않는다.

너무 흥하면 또다시 무차별 자본이 쏟아져 들어와 모든 걸 망가뜨릴 게 뻔하다.

지금 정도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2차 3차 거나하게 걸치고 집에 갈 때면 이 곳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다들 휴대폰 들여다 보느라 고개를 수그린 광경을 보면 좀 이상하다.

외로운 사람들이다.


매일 흔하게 지나다니지만, 아마 여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일상과 상관 없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치는 공항 버스가 내겐 각별하다.
한국에 오면 타고 돌아갈 때 타는, 내 한국 체류의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그래서 공항 버스가 눈에 띄면, 한국에 잠시 다녀가는 내 상황을 자각하게 된다.

12시가 넘어 차량이 뜸해지면,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예전엔 그런 광경을 보면 '이유도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욕하곤 했다.

마치 내가 법의 수호자라도 되는 양, 저 사람이 법규를 어기는 것이 내게 피해라도 되는 양.

국민 교육을 빙자한 세뇌가 그렇게 무섭다.

지금은 그냥 '인간적인 광경'이라는 느낌이다.

전국민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언제 어떤 상황이든 법규를 칼 같이 지키는 사회라니, 그거야 말로 끔찍한 세상이다.


밤 12시 반이지만 아직 버스가 있다.
서울 노선 버스의 종점이 광명시에 있는 덕이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은 한국대로 점점 변해가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광명 사거리에서 친구 만나고 돌아가는 길

광명시에서 가장 전통적인 상권이라면 역시 광명 사거리다.
한때 이 근처 사람들도 철산 상업지구로 왔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숨은 맛집들이 많은 곳으로 왕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철산 상업지구는 인위적으로 구획을 나누고 조성한 곳이지만, 광명 사거리는 안양, 인천, 안산, 서울로 통하는 길이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자연스러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진가가 드러난다.
거스르는 곳은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계속 투입되어야 하지만, 자연스러운 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
광명 사거리가 철산 상업지구에 비해 나은 점 또 하나는 구획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다.
상업지구는 아파트 단지 바다 한가운데의 섬같은 곳이라 그 경계를 벗어나면 극단적으로 상권 가치가 급락하지만, 광명 사거리는 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아 약간 더 외곽으로 외곽으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대안이 있기 때문에 중심 상권이라 하더라도 임대료를 무식하게 올릴 수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걸어가는 길

보름달이 밝게 빛난다.

인니에서 가끔 보름달을 볼 때면 한국의 우리 동네에 뜬 보름달을 떠올리듯, 한국의 우리 동네에 뜬 보름달을 보니 인니에서 본 보름달이 떠오른다.

이 당시는 플로레스 여행 다녀온지 얼마 안된 때라, 플로레스에서 봤던 보름달이 떠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을 연상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광경이다.

여기쯤까지 오면, '아, 집에 다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내겐 우리집... 아니 본가 베란다가 어디인지 한눈에 보인다.


멋대가리 없는 평범한 사각형의 벌통 중 한 칸이지만, 멀리 떠나 인생의 망망대해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내게는 세상 유일한 좌표의 기준점이 되는 곳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제외하고, '돌아간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전우주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더이상 그렇지 않게 될 곳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