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재래시장에서 흥정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까지는 뭐 괜찮다.
하지만, 많이 깎아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는 건 호구질 당하면서 좋아하는 거나 다름 없다.
흥정은 기본적으로, '부르는 게 값'이던 옛시절의 잔재다.
지역마다 물품의 값어치가 다르던 시절엔 가격이란 형성되는 것이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늘 꾸준히 사주는 단골에게는 싸게 팔았고, 단골이 아닌 사람에겐 좀더 비싸게 팔았다.
제 값이란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됐다.
뜨내기 외지인에게는 사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바가지를 씌워도 괜찮았다.
그 시절엔 지역마다 '폐쇄적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었다.
정찰제가 아닌 흥정에서는, 구조적으로 사는 사람이 절대로 파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사는 사람이 애교나 읍소 등등 별의 별 지랄을 해도, 파는 사람이 안팔면 그만이다.
손해 보면서 파는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날 안팔면 폐기되는 물건이라면 흥정에 성공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사꾼은 바보가 아니다.
그날 팔 만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몇년, 몇십년을 장사하면서 이미 알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외지인(관광객) 상대로 팔 만큼 물건을 더 들여놓을리가 없다.
외지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절대 제값 주고는 못 산다.
흔히 말하는 여행지 시장에서 흥정하는 재미라는 것의 실체는 사실, 얼마나 덜 바가지 쓰나를 갖고 재미있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싸게 샀다고 좋아하고 그러지는 말자.
어디까지나 재미로 즐기고, 자신이 생각한 그 물건의 값어치보다 싸게 샀다는 정도로만 넘어가는 편이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