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

명랑쾌활 2019. 3. 29. 10:17


어렸을 적부터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딱히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의 것 빼앗아서 득보려고 한 적은 없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어버버~ 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정도 머리가 여물고, 입도 제법 잘 놀리게 되고 나서는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줄기차게 항변을 했었다.

남이 피해 보든 말든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기주의자고, 나는 남에게 피해 안끼치는 한도 안에서 남 신경 안쓰고 자기식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개인주의자라고.

구구절절 옳은 소리니 딱히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납득하는 반응 따위는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

웃으며 끄덕이는 표정 너머로 '아유~ 그 새끼 친구 말은 참 잘하네~' 하는 듯한 눈빛은 종종 봤다.


세상 물정 좀 알 나이가 되어서야 왜 내가 이기주의자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애초에 이기주의자가 아닌 그들과 이기주의자라고 불리는 나는 서로 관점이 달랐던 거였다.

바꿔 말해, 이기주의자의 기준이 서로 달랐던 거였다.

사전적 의미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 관점에서, 전체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따로 노는 사람은 전부 이기주의자였다.

그들이 굳이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를 구분한다면, '나쁜 이기주의자'와 '덜 나쁜 이기주의자'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공동체와 같이 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 보기에는, 공동체와 따로 놀려는 인간 자체가 배신자이거나, 단물만 빼먹고 쓴물은 피하는 약삭빠른 무임승차자로 볼 수도 있을 거다.
인간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하니까.


더 나이가 들어 자립했고, 지갑이 좀 두툼해졌다.

공동체와 어울리려는 생각은 굳건히 없지만, 공동체를 위해 지갑은 제법 여는 편이다.

공동체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는 걸 받아 들였고, 미움 받지 않기 위한 비용 지불이라고 납득했다. (지갑이 얇아지면 가차없이 안하겠지만)

이제 이기주의자라는 소리는 거의 안듣는다.

그 오랜 시간, 내가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개인주의자라는 걸 줄기차게 고민했던 건 무슨 뻘짓이었던 걸까?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지금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있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니가 뭐라 말하든 걔네들은 절대 이해 못하는 문제니까, 그냥 신경 꺼. 정 신경이 쓰이면 그들에게 설명을 하려 하지 말고, 이득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