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나도 그렇게 같잖아 보였을까?

명랑쾌활 2019. 4. 22. 10:52



갑인 거래처의 서른도 안된 신입직원의 눈빛이 참 좋다.

봉제업계가 워낙 센 사람들만 살아남는 거친 판이다 보니, 직장상사가 얕보이지 말라고 단단히 잡도리를 했을 거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주어진 업무를 자기 인생이라도 걸린듯 아등바등 하며, 회사에서의 위치가 곧 자기 자신의 위치라도 된 듯, 충성심으로 불타 오르고 있다.

한국과 달리 부하직원들을 통솔하는 관리자 역할이 시작부터 주어지다 보니, 어깨가 무거워져서 그런지 상체가 점점 뒤로 젖혀지고 있다.

관리자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부하직원의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지 않는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한다.

수습 기간 3개월까지 합쳐, 갓입사한지 이제 5개월된 신입직원이.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다.

몸담은 조직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성향 따위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 당연하게 요구되던 거라 대단할 것도 없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마음가짐이다.

저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일체화 하여, 조직을 위해 자신의 양심마저도 내려놓고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이 바라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저 나이쯤, 저 지랄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를 상대하던 을업체의 과장에게도 내가 그렇게 같잖아 보였을까?

그 후로 난 모종의 일을 겪은 덕분에, 회사 직급을 간판으로 단 나는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전혀 별개라는 걸 깨닫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됐지만, 보통은 회사에서 헌신짝처럼 걷어차이고 예전에 을이었던 사람들이 헌신짝 대하듯 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다.

아마도, 눈빛이 좋은 저 신입직원도 저대로 계속 경력을 쌓아 나가다 보면 높은 확률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의 확신을 갖고 약자를 깔아 뭉개는, 봉제업계의 훌륭한 일꾼이 될 거다.

혹시나 잘못되어 을 위치의 업계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면, 자기가 강한게 아니라 회사가 강한 거고, 눌리는 약자가 자기를 무서워해서 참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겠고.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르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내 언행들을 10년 쯤 뒤의 내가 민망해 하지 않도록, 나나 똑바로 하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언행이야 아직 젊어서 그랬다는 핑계 정도는 우길 수 있지만, 이제는 적당한 핑계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