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뚜까라스 언덕은 동네 뒷산 정자 수준이었다.
나무들이 울창해서 뷰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언덕 한 귀퉁이에 현지인 아저씨들이 한량짓을 하고 있다.
나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건 좋았다.
돗자리 깔고 삼겹살 궈먹으면 딱 좋을, 어른 취향의 장소다.
최근 몇 년 사이, 인니 전역의 관광지마다 저렇게 지명을 간판처럼 세우는 게 유행이 됐다.
좋은 풍경보다 '자기 자신이 어디에 갔었다'는 증거사진을 찍는 걸 더욱 중시하는 인니인들의 성향 때문이지 않나 싶다.
마침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내가 사진 찍으려는 앵글에 들어와서다.
비키니 입은 금발 서양인도 있었는데, 괜히 도촬하는 거라고 오해받기 싫어서 손을 흔들었다.
내가 아무리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일방적인 오해가 진실이 되는 세상이다.
오해를 한 사람은 잘못 없고, 오해 받을 행동을 한 사람이 죄인이라는 시절이다.
누구든 간첩이라고 신고 당하면 일단 잡혀가서 취조 당하던 옛날처럼.
다이빙 하기 딱 좋은 나뭇가지
나무 밑둥 반쯤은 허공에 떠 있다.
절벽 밑이 무너졌는데, 나무가 악착같이 바위를 붙들고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정자 안에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방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좋았다.
라니 민호
이민호 팬이 낙서한듯. ㅋㅋ
바뚜까라스 언덕 계단
오후 3시경,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하다.
하긴, 가뜩이나 금식기간인데 이 땡볕에 돌아다닐 체력이 없겠지.
땅이나 집 판다고 써붙인 곳이 여기저기 보인다.
점점 관광지로서 알려지면서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외부의 자본이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넓은 앞마당을 가진 고급 맨션이다.
잠시 휴식
숙소 앞에 넓은 이파리 식물로 화단을 꾸민 센스가 돋보인다.
적당히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도 삭막하지 않아서 좋다.
의외로 바람도 솔솔 불어와서, 책 읽으며 빈둥 거리기에 딱이다.
저녁 뭐 먹을까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 봤다.
솔트 카페나 베이뷰 씨푸드 레스토랑 Bayview Seafood Restaurant 이 괜찮은데, 약간 비싼 편이랜다.
가게는 좀 허름하지만 음식도 잘하고 가격도 저렴한 곳이라며 끄다이 미니 바뚜까라스 Kedai Mini Batukaras 를 추천해 주셨다.
* kedai : 조그마한 가게, 노점
사다띠 홈스테이까지 배달도 해준다며 메뉴판을 주신다. ㅋㅋ
그리고, 모기가 좀 있을테니 방에 뿌리라며 모기약도 주셨다.
한 뼘 크기도 안되는 저 모기약 스프레이는 'One Push'라고 써있듯, 왠만한 크기의 방에는 딱 한 번만 칙 뿌리면, 아니 반드시 한 번만 뿌려야 한다.
워낙 독하게 농축시킨 거라, 일반 모기약 뿌리듯 뿌렸다가는 1시간 동안 환기 시켜도 방에 들어가면 기침과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독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일전에 어떤 독일인 여성 투숙객이 그랬다가 약에 취해서 마치 마약이라도 한듯 헤롱헤롱 거렸었다는 얘기를 해주신다.
식당 안쪽에서 클래식 재즈 음악이 흘러 나온다.
말 안하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은은하게 들릴 정도의 소리다.
딱 좋다.
Cortex Cam 이라는 유료앱으로 찍은 사진이 확실히 퀄리티가 좋다.
현지인 관광객 상대의 음식점들도 다 문을 열었지만 한산하다.
인니 현지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인데, 아무래도 금식 기간에는 여행을 삼간다.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는 이미 현지화가 되셨기 때문에 비싸게 느끼시는듯.
(아, 숙소 주인 아주머니는 인니에 산지 20년이 넘었다.)
아얌 바까르 Ayam Bakar (ayam 닭 bakar 굽다)
아주 실한 닭다리 하나가 나온다.
라임을 살짝 뿌려 먹으면, 고기에 바른 양념과 불맛(탄맛)이 어우러져 아주 신기하게 맛있는 맛이다.
굳이 라임을 같이 내어오는 깊은 뜻이 있었다.
사떼 아얌 Sate Ayam, 닭꼬치도 맛있다.
원래 맛이 느끼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뭔가 다른 게 들어갔는지 여기 땅콩 소스는 그리 느끼하지 않았다.
발라 발라 Bala-bala
한국의 노점에서 파는 야채튀김과 거의 똑같은 맛이다.
메뉴판에 2만 루피아라고 적혔길레 대충 2~3개 정도 나오나보다 했는데, 어른 손바닥보다 큰 튀김이 5개나 나와서 깜짝 놀랐다.
내 경우 저거 3개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고, 4개면 배 불러서 더 못먹는다.
뭔가 허전해서 숙소에 돌아와 피자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정말로 30분 정도 지나 음식이 도착했다.
마르가리따 피자 중간 사이즈 3만 루피아
세금 따로 안붙는다! +_+b
모양도 그저 그렇고, 도우도 직접 반죽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시중에서 파는 거다.
주인 아주머니가 여기 추천하면서, 화덕 피자가 아니라 전자렌지에 돌려서 만드는 그냥 그런 피자인데, 맛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기억에 남았는데, 먹어보니 정말 '그럭저럭' 괜찮다!
희안하게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표현 말고 딱히 다른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딱히 굉장히 맛있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맛없지는 않고, 도우도 부들부들하니 딱히 맛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굳이 판정하자면 맛있는 편인데, 딱 잘라 '우와~ 맛있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또 사먹으라면 굳이 싫다고 하지는 않을 그런 맛.
글을 쓰는 지금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맛있긴 한데 요상한 뭐 그런 느낌이다.
아, 물론 바뚜까라스에 다시 간다면 꼭 다시 시켜 먹어볼 거다.
그땐 다른 피자를.
9년 전 롬복 처음 갔을 때 은하수를 본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은하수를 봤다.
아직은 시골마을이다 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와글와글 잘 보인다.
사진 찍어 봤지만 휴대폰 카메라로는 무리다.
겨우 사진 가운데 쯤 하얀 점 두 개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