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흥정 3

여행 중 재래시장에서 흥정해서 정말로 싸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여행 중 재래시장에서 흥정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까지는 뭐 괜찮다.하지만, 많이 깎아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는 건 호구질 당하면서 좋아하는 거나 다름 없다. 흥정은 기본적으로, '부르는 게 값'이던 옛시절의 잔재다.지역마다 물품의 값어치가 다르던 시절엔 가격이란 형성되는 것이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늘 꾸준히 사주는 단골에게는 싸게 팔았고, 단골이 아닌 사람에겐 좀더 비싸게 팔았다.제 값이란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됐다.뜨내기 외지인에게는 사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바가지를 씌워도 괜찮았다.그 시절엔 지역마다 '폐쇄적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었다. 정찰제가 아닌 흥정에서는, 구조적으로 사는 사람이 절대로 파는 사람을..

단상 2020.07.10

상대방 이득만 따지는 흥정

이사 갈 집에는 에어컨이 두 대 있었다.하나는 집주인, 다른 하나는 전 세입자 것이었다.전 세입자는 자카르타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했다.세들어 사는 삶이라 이사가 잦기 때문에 짐 느는 것도 부담이고, 설치하랴 해체하랴 복잡한 것도 귀찮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새로 사고 싶지 않았다.아마 전 세입자 입장에서도 해체하느라 돈 들고, 그 거 또 이삿짐으로 날라야 하는 것도 부담일 터였다.집주인을 통해 전 세입자의 에어컨을 내가 사면 어떻겠냐는 뜻을 전했더니, 전 세입자는 250만 루피아라는 값을 제시했다. 가장 작은 출력에 2년 중고인 이름도 잘 모르는 브랜드의 에어컨이 250만 루피아라...새 제품 가격이 300만 루피아일 거다. 그것도 2년 동안 물가 오른 거 감안해서 그렇다.전 세입자는 2년 전 자신이 구입했..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06. 사장의 재산과 급여의 상관관계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과연 돈 많은 사장이 월급을 더 많이 줄까? 얼핏 보면 많으면, 많이 줄 수 있으니까, 많이 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어느 정도 통찰력이 있다면,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많이 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물건이 됐든 인간이 됐든, 서구식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사는 사람의 부유함이 아니라 파는 물건(노동력)을 기준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자. 2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사는 사람의 부유함에 따라 똑같은 물건에 가격이 다르게 매겨지는게 보편적이었다. 바가지나 에누리가 그 흔적이다.) 사장 재산이 100억인 것과 그 사장 회사 직원 월급이 100만..

단상 201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