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V

상대방 이득만 따지는 흥정

명랑쾌활 2019. 4. 19. 09:56

이사 갈 집에는 에어컨이 두 대 있었다.

하나는 집주인, 다른 하나는 전 세입자 것이었다.

전 세입자는 자카르타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했다.

세들어 사는 삶이라 이사가 잦기 때문에 짐 느는 것도 부담이고, 설치하랴 해체하랴 복잡한 것도 귀찮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새로 사고 싶지 않았다.

아마 전 세입자 입장에서도 해체하느라 돈 들고, 그 거 또 이삿짐으로 날라야 하는 것도 부담일 터였다.

집주인을 통해 전 세입자의 에어컨을 내가 사면 어떻겠냐는 뜻을 전했더니, 전 세입자는 250만 루피아라는 값을 제시했다.


가장 작은 출력에 2년 중고인 이름도 잘 모르는 브랜드의 에어컨이 250만 루피아라...

새 제품 가격이 300만 루피아일 거다. 그것도 2년 동안 물가 오른 거 감안해서 그렇다.

전 세입자는 2년 전 자신이 구입했던 가격과 거의 비슷한 가격을 부른 것이다.

자기 딴에는 '2년 썼으면 아직 새 거고, 내 것 사면 설치비도 따로 들지 않으니 너한테 이득 아니냐.'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자기가 에어컨 떼는데 드는 공임이나 운반비 이득 보는 건 전혀 안중에도 없는 거고.

'나는 별 생각 없는데, 당신이 아쉬워서 요청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형편 어려운 것도 아니고, 국영기업 뿌르따미나에 다닌답시고 자기들이 공무원이라도 된 양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인간이 그 모양인 거 보면, 인니인들의 보편적인 태도인 것 같다.


깎아달라 말라 흥정할 마음도 안들어서, 그냥 새로 살테니 관두라고 했다.

기본도 안되어 있는 상대와 거래하려 해봐야 좋은 꼴 볼 일도 없다.

흥정하려 하면 할 수록 나만 안달복달 하고, 상대만 기고만장하는 모양새가 된다.

설치비까지 350만 루피아 들여서 새 에어컨을 달았다.

다시 이사가느라 집을 비우게 됐을 때, 집주인에게 250만 루피아에 사라고 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새로 산 에어컨

카트로 운반하는 게 여의치 않자, 핸드 리프트에 실은 채로 쇼핑몰을 가로질러 주차장까지 운반해 주는 패기를 즐겼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