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06. 사장의 재산과 급여의 상관관계

명랑쾌활 2014. 8. 27. 12:35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과연 돈 많은 사장이 월급을 더 많이 줄까?

얼핏 보면 많으면, 많이 줄 수 있으니까, 많이 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어느 정도 통찰력이 있다면,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많이 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물건이 됐든 인간이 됐든, 서구식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사는 사람의 부유함이 아니라 파는 물건(노동력)을 기준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자. 2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사는 사람의 부유함에 따라 똑같은 물건에 가격이 다르게 매겨지는게 보편적이었다. 바가지나 에누리가 그 흔적이다.)

사장 재산이 100억인 것과 그 사장 회사 직원 월급이 100만원인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뭐 여기까지 논할 거였다면 얘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예 상관 관계가 없을까?

어느 정도 상관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역설적으로, 사장 재산과 직원 급여는 반비례 관계일 수도 있다.

 

인간의 노동력도 재화 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급여는 일종의 상품 가격이다.

하지만 인간은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세는 있지만 기준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시골 장터 흥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흥정으로 비교해 본다.

 

결핍은 흥정의 원동력이다.

흥정은 팔 필요가 있는 사람과 살 필요가 있는 사람 간의 협의 과정이다.

팔 필요가 강하면 가격은 떨어지고, 살 필요가 강하면 가격은 올라간다.

보통은 어느 한 쪽이 극단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다.

사는 사람도 살 필요가 있으니까 장터에 나왔지만, 파는 사람도 팔 필요가 있으니까 장터에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극단적으로 우위에 있다면 어떨까?

가령, 파는 사람은 많은데 사는 사람은 그게 필요하긴 해도 굳이 꼭 그거 안사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면 어떨까?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르고, 안팔거면 말라고 하면 그만이다.

흥정의 기술로서 배짱을 부리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안팔거면 말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흥정은 와해된다.

결핍이 없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많고, 직원 뽑겠다는 회사는 적다.

그렇다고 직원을 안뽑고는 회사를 유지할 수 없기에 (필요하기 때문에) 급여 수준이 낮아도 최저선은 있다.

하지만 가령, 지금 당장 회사 닫아 버려도 사장 가족 3대가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재산이 있다는 회사가 있다면 어떨까?

흥정은 결렬이다.

급여 수준을 정하고, 수긍하는 직원이 있으면 뽑고 아니면 말면 그만이다.

오히려, 사업체를 운영해야만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사장의 회사가 차라리 급여 수준이 높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이런 테크닉으로 직원들을 다룬다.

'나 먹고 살 만큼은 벌어 놨다. 정 아니면 까짓거 회사 접지 뭐. 자꾸 골치 아프게 한다면 뭐하러 아등바등 이 짓을 해.'

농담을 빙자한 협박이지만, 아주 근거 없는 공갈은 아니다.

실제로 사장들은, '어떻게 하면 회사 잘 꾸려 나갈까' 만큼 '어떻게 하면 회사를 잘 접을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들은 그런 상황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겠지만, 사실이다.

뭘 만들어 본 사람은 또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걸 부술수도 있는 법이다.

물론 회사를 접는다는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자의적인 실행을 하는 사장은 드물지만, 사장의 회사와 관련 없는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의 균형이 더 쏠릴 수 밖에 없다.

 

사장 재산이 많은게 득이 있으면 있지 굳이 해 될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약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상대가 강한 이유를 자각해야 헛꿈에 휘둘리는 일이 줄어들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