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가치관 3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능가.

1960년대까지 결혼식에서 애국가 부르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 남자 장발은 걸리면 바리깡으로 밀었고, 미니스커트도 단속했다. 관련 법령은 1988년 12월31일까지 존재했다 1980~81년엔 사람들 마구 잡아다가 삼청교육대에 집어 넣었다. 1981년까지 0시부터 4시까지 밖에 다니면 경찰서 유치장에 갖혔다. 1988년까지 단순 관광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지도 못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군대에서 딱히 간부 눈치를 보지 않고 하급자 구타나 가혹행위를 했다. 1994년까지 비행기나 버스 안에서 흡연 가능했다. 1997년 IMF 이전에는 직장 상사가 형, 삼촌, 사장이 아버지와 같다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회사를 가족처럼', '직원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같은 드립의 근본이 이 때였다. 1..

시사 2023.12.29

한국인 생각, 인니인 생각

순전히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주관적인 글입니다.몇 십년을 산 한국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가 많은데, 고작 10년 산 걸로 인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그냥 웃자고 써봤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합니다.인니 사람 다 그렇다는 거 아니고, 한국 사람 안그렇다는 것도 아니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당연해도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더 좋을듯 하여 적어둡니다.공감하시고 웃음 짓는 분들이 몇 분이라도 계시면 그 걸로 좋고, 사실과 전혀 다른 새빨간 모함이라고 지적하신다면 그 것도 달게 받겠습니다. 한국 :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질책하는 건 너무하지만, 내가 잘못한 건 맞지.인니 :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질책하는 건 너무하지. 한국 : 미안하다고 하면 될 걸 이깟 돈 몇 푼으로 떼우..

어느 70세 노인의 친일, 반공, 데모, 그리고 박정희에 대한 가치관

어느 70세 노인이 있다. 그는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된 다음 해 태어났다.그의 나이 5살 때 발발한 625 전쟁은 8살이 되던 해 끝났다.나라는 잿더미가 됐고, 미국의 원조품으로 끼니를 연명하던 시절이었다.친일 문제는 반공 사상으로 덮였고, 빨갱이로 몰리면 곧 죽음이던 시절이었다.어쩌면 그게 그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소유한 정미소에서 일하던 솜씨 좋기로 유명한 기술자였고, 해방 이후 정미소 주인인 일본인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면 정미소 기계 다룰 사람이 없다면서 정미소를 그의 아버지에게 넘기고 갔다.그 시절이 그랬다.일본 강점기를 지나 해방 때까지 살아 남은 조선인들은 소수의 독립운동가와 소수의 반민족 매국친일파를 제외한 대부분이 소극적 일본 부역자였다.반공 ..

단상 2017.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