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집을 연장했습니다.
낡은 집이라 싸게 계약할 수 있었지만, 처음 지을 때 정성들여 지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한 집이었지요.
다만 에어컨은 정말 문제였습니다.
10년 이상은 됐는지 냉방도 시원찮고, 전기도 많이 먹더군요.
반년 전에 고장이 났었을 때 관리인 아줌마(집주인 대행인)에게 고쳐달라고 했는데, 기술자가 와서 워낙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 찾기 어렵다고 했었지요.
(집을 임대하면서 에어컨도 포함됐기 때문에, 고장나면 집 주인이 고쳐야 합니다.)
새 것으로 교체한다면 보증금을 더 달라고 하길레 동의했었습니다만, 그 후로도 차일피일 미뤄서 무려 5주 동안 고장난 채로 지낸 끝에 부품을 찾았다며 다시 기술자를 보냈습니다.
참 지독한 사람들이지요. ㅎㅎ
기술자는 고치고 나서, 만약 다시 고장난다면 새로 사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 문제도 문제지만, 이미 너무 낡아서 거의 못쓴다고요.
관리인 아줌마도 알았다고 했습니다.
연장 계약할 즈음에 에어컨 상태가 다시 오락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쥐고 있을 때 요구를 하는 게 인니의 비즈니스 요령입니다. (마침 잘 된 일이지요!)
사실 돈을 쥐고 있든 아니든 의무와 권리를 준수하는 게 맞습니다만, 인니는 그런 쪽의 윤리 의식이 보다 야생적이니까요.
연장 계약을 할테니 에어컨을 고쳐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아줌마는 일단 에어컨의 상태를 보자고 그러더군요.
예상했던 바입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치려는 속셈일 겁니다.
저도 두 가지 흥정 포인트를 준비해뒀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번에 왔던 기술자와 다른 기술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일단 아줌마에게 전기세를 공략하고 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 댁 전기세는 한달에 얼마 정도 해요?"
"우리집은 방 4개에 에어컨 3대고... 어쩌고 저쩌고... 한 70만 정도 하죠."
"우리집은 100만 조금 더 나와요. 평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기 쓰는 거 없고, 밤에도 에어컨 1대만 틀거든요. 이상하지 않나요?"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전 아무래도 에어컨 같아요. 우리집 전자제품들은 다 새것이거든요."
그런데 난데없이 기술자가 얘기에 난입합니다.
"그럴수도 있어요. 우리집은 방 2개에 에어컨 1대인데, 전기세가 100만이에요."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황당하기도 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다른 거 없고요? 기계나 공구 같은 거 안쓰고, 그냥 에어컨 1대만 있는데 100만이요?"
"네, 에어컨 1대하고 TV가 다예요."
2층집 사는 중류층 가정도 한 달 전기세 100만 루피아를 넘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리고, 전기세가 한 달에 100만 루피아씩 나온다는 건 중산층 수준의 가계에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기술자 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닙니다만, 기술자 아저씨가 자기 집 전기세 한달 100만 루피아를 감당할 만큼 여유로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니보다 전기세가 훨씬 비싼 한국에서도 전기세 10만원 나오는 집이 드물지요.
이 아저씨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어쨋든 이제 에어컨 기술자는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고용인 편에 서서 약삭빠르게 돕고, 자기 일감 잡으려 꾀바르게 군 소득이 없어진거죠.
관리인 아줌마 인정사정 없더군요.
"기술자 양반, 이 에어컨 중고로 사면 얼마 줄 수 있어요?"
"아, 그게... 글쎄요..."
"얼마든지 고친다면서요? 고쳐다 되팔면 되겠네."
"..."
기술자는 어물어물 말을 못하고, 관리인 아줌마는 그런 기술자에게 깔끔하게 그럼 이제 가보라고 합니다.
기술자 양반의 꾀바른 처신 덕택에 기술자도 낙동강 오리알이 됐고, 저도 생돈 날렸습니다.
자리에 없던 집주인만 득을 본 셈이구요.
관리인 아줌마는 기술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에어컨 청소와 가스 충전을 이 기술자에게 의뢰하라고 권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가정집 전기세 월 100만 루피아를 감당하시는 기술자를 모시기에는 제 집이 너무 누추하지요.
이제 새 에어컨 쓰고 있는데, 냉방 빵빵하고 전기세도 줄어서 좋습니다.
그럼 된 거예요.
인니에서 산다는 게 이런 겁니다.
여행이나 주재원으로 잠깐 왔다 가는 사람들은 절대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