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난 꽤 불행한 사람이었다.
뭐든 비관적 미래를 예측하고 걱정하고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때는 별로 없었다.
내일 학교 준비물 살 돈 몇백원도 없을 때가 많을 정도로 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어쨌든, 미래의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대책 없어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라고 괴로움 모르는 바보냐고 항변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다음날 밥 사먹을 돈을 오늘 써버리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다음날이 되면 어제 돈 쓴 걸 후회하지만, 금새 잊어 버렸다.
어차피 주변에 도움 청하는데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소위 말해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불행했던 당시엔 그가 미웠다.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없음에도 팔자 좋아 보이는 그 모습이 미웠다.
그렇게 대책 없으면 큰 불행에 빠져야 '사필귀정'인데, 용케 그럭저럭 해결되고 여전히 팔자 좋게 지내는 게 미웠다.
이제와 생각하니, 아마도 난 그의 행복한 모습을 시기했던 거 같다.
난 이토록 미래를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를 해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데, 그는 이미 행복해 보였으니까.
어차피 세상이란게 절대 '사필귀정'도 아니고, 공평하지도 않고, 부조리로 가득찼다는 걸 받아들인 지금은 이해한다.
미움은 다른 의미의 관심이었다.
난 그저 그의 행복이 부러웠던 거다.
어차피 오지도 않은 불행에 대비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지금은 나도 꽤 행복한 편이다.
대책이 없는 일에 대책을 마련하려 고심하느니, 그저 무대책인 편이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비할 수 있는 것만 대비하고, 나머지는 내버려두면 되는 거였다.
그 때 그 행복했던 사람이 지금도 여전히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게 내 행복과는 상관없고, 그의 행복이나 불행에 내가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건 가짜 행복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