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내 여유를 네 여유로 착각하지 말았으면 해.

명랑쾌활 2017. 7. 27. 11:57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거의 항상 여유는 있어.

돈으로 거의 대부분을 살 수 있는 세상에서, 금전적 여유는 곧 마음의 여유니까.

그런 의미에서 돈을 빌려줄 여유도 늘 있는 셈이지.

여유 한도 내에서는 군말 없이 빌려주는 편이야.

친분이 있는 사람이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됐을 때, 내가 빌려줄 수 있다는 것도 기분 괜찮은 일이니까.

어차피 여윳돈에서 빌려주는 거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떼먹힐까봐 걱정하는 스트레스가 큰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말야, 이유 묻지 않고 선뜻 빌려주다 보면, 빌리고 갚는 일이 잦아지는 사람이 꼭 나오더라고.

처음에는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묻다가 나중에는 별 부담없는 표정으로 "빌려주세요"라고 한단 말이지.

아마도, '당신 여유 있는 거 알아요. 저 빌리면 꼬박꼬박 잘 갚는 거 그동안 보여 드렸으니 믿으시잖아요'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거 심각한 착각이야.

그런 건 은행 거래에서나 해당하는 신뢰 계산법이야.

돈 빌리고 잘 갚는 사람이 은행에게는 좋은 고객이니까.

은행에서 사용하는 신뢰라는 용어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라고. (보통 이자라고 그러더만.)

개인 친분관계에서는 빌리고 제때 잘 갚는다고 신뢰가 커지진 않아.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줄어들지.

갚는 건 당연한 거라 고려대상이 안돼.

갚는 것과는 상관 없이, 빌리는 행위 자체가 이미 본인의 금전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타인에 대한 폐일 뿐이야.

어쩌다 한 번 쯤은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살다보면 딱딱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자주, 점점, 당연하다는듯이 그러는 건 안좋지.

그건, 자신의 가용한 금전 운용 범위에 내 여유까지 포함했다는 뜻이야.

(간단히 말해, 내 지갑을 자기 비상금 지갑으로 생각한다는 거지)

그건 큰 실례야.

내가 내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내 생활을 미리 조절하고 통제하기 때문이야.

큰 지출이 발생하면 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외식 두 번 할 거 한 번 하고, 저렴한 거 먹고 하는 식으로 말야.

내가 네 삶을 통제할 수 없는데, 어떻게 네 사정까지 감안해서 내 여유를 계산하고 유지할 수 있겠니?

너와 내가 아무리 친하다 해도, 내 여유는 내 여유일 뿐이야.

내 여유를 네 여유로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너 자신만을 위한 모든 편의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단다.

빌리는 행위는 갚는 행위로 없던 게 되지 않아.

효도한다해서 부모의 은혜가 없던 일이 되지 않듯, 네가 빌렸던 일은 내가 네게 똑같이 빌리지 않는 한 상쇄될 수 없어.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너 편할대로 생각하지 마렴.